매거진 창작동화

이상한 안경

by 겨울나무

그날 넷째 시간은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뒷산으로 올라

왔습니다.


“자, 이 시간엔 가을의 경치를 마음껏 그려보기 위해서 경치 좋은 야외로 나왔어요. 그러니까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도 좋고, 또 단풍으로 곱게 단장한 산의 경치를 그려도 좋아요.”


“네, 알았어요.”

“히야, 신난다!”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모두 신바람이 나서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각기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성급한 아이들은 벌써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콧노래까지 부르며 그림 그리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따금 산들바람이 불어와 낙엽을 한 잎, 두 잎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뒤로 한 채 산들바람은 어느 틈에 벼 베기가 한창인 들판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선희는 늙은 소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혼자 앉아 이곳저곳을 천천히 살펴봅니다. 어떤 걸 그려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것입니다.


들판 논두렁에 드문드문 쌓아 놓은 볏단 무더기들은 마치 옛날 이집트의 피라밋을 생각나게 합니다. 지금 그 볏단 무더기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밥고리를 머리에 인 아주머니들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옵니다.


아주머니들의 뒤꽁무니마다 막걸리를 담은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낑낑 매며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아이들의 뒤에는 검둥개가 꼬리를 치고 따라가면서 가끔 날아다니는 벼메뚜기를 잡아 먹기에 한창입니다. 정말 정겨운 모습들입니다.


땀흘려 일하던 농부들이 급히 뛰어나와 밥고리를 내려주고는 어느새 빙 둘러앉아서 점심을 맛있게 먹기 시작합니다. 그모두가 정겹지 않은 모습이 없었습니다.


“아하! 바로 저 정겨운 모습들을 그려야 되겠구나!”


선희는 서둘러 화판을 무릎 위에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동안 그리다 보니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선희는 지금까지 그린 그림을 아무렇게나 구겨 버리고 새 도화지를 화판에 찝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어떤 것을 그릴까 망설입니다. 이때 조금 전에 들판으로 달려갔던 산들바람이 다시 선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더니 나뭇잎들을 골고루 찾아 다니면서 부드럽게 핥아주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들은 못마땅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어댑니다. 나무들은 아마 산들바람이 몹시 귀찮고 싫은 모양깁니다. 그러기에 고개를 흔들면서 산들바람이 핥아 준 잎이란 잎은 모두 떨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선희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산들바람이 지나간 뒷산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렇지, 가을 풍경은 역시 뭐니뭐니 해도 단풍잎으로 곱게 물든 산을 그려야 제맛이 날 거야!”


선희가 이번에는 단풍이 든 산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형형색색으로 곱게 단풍으로 물든 산, 그리고 여기저기 멋지게 깎아 세운 듯한 기암 바위, 또 위로는 티 없이 높고 맑은 새파란 하늘, 이 모두가 잘 조화된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크레파스를 쥔 선희의 손이 도화지 위를 열심히 달립니다. 노랑, 연두, 분홍, 빨강, 주홍, 검정……….


정말 선희 자신도 모르게 빠른 솜씨로 도화지 위엔 가을의 아름다운 경치가 삽시간에 옮겨지고 있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려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선회는 마치 화가라도 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그림을 이리저리 살펴 봅니니, 자신이 그리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렇게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론 실물도 아름답긴 하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풍경입니다. 아직까지 그림에서나 사진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야말로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다.

“나도 이런 멋진 풍경이 있는 곳에서 마음놓고 한번 살아봤으면……!”


선희는 그만 자신이 그린 그림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도화지에 그려진 빨간 단풍나무 밑으로는 수정처럼 맑은 샘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졸졸졸~~~”


그 물은 너무나 맑고 깨끗하여 마음씨 고운 산새들만이 노래를 부르다가 목이 마르면 가끔 찾아와서 아껴먹는 샘물이었습니다. 선희는 여전히 눈을 지그시 감은 재 그만 그림에 흠뻑 취하고 말았습니다.


맑은 샘물을 보자 금세 목이 말라진 선희는 조도 모르게 샘물 앞에 슬그머니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맑고 시원한 샘물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샘물맛은 어찌나 시원하고 맛이 좋은지 자꾸만 자꾸만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니, 웬 녀석이 여기까지 와서 샘물을 마시고 있지?"


웬 굵직한 아저씨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선희는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누가 함부로 샘물을 마시고 있느냐고 묻지 않니?“


아아! 지금 샘물을 따라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나이가 든 웬 아저씨, 그 아저씨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이상한 차림의 아저씨였습니다. 선희는 겁에 질려 얼른 도망치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니다. 도망갈 필요는 없다. 헛허허…….”


뜻밖에도 아저씨의 인자한 음성에 선희는 다소 안심이 된 듯, 그 자리에 선 채 아저씨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선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


아저씨의 물음에 선희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습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가 어떻게 벌써 이름을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선희는 자신도 모르게 얼른 가슴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명찰은 분명히 없습니다. 아침에 옷을 갈아입을 때 명찰을 다는 일을 깜빡 잊었으니까요.


선희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아저씨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알이 큰 안경을 쓴 아저씨의 파란 안경 속의 눈동자는 분명히 인자한 표정이었습니다.


“허허, 내가 네 명찰을 본 줄 알고? 그러나 그건 아니란다. 난 너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름도 다 알고 있단다. 그럼 이제부터 아저씨하고 이야기나 좀 나누어 보는 게 어떻겠니?”

“……?”


아저씨는 슬그머니 선희의 손을 잡고 이끌었습니다. 선희는 얼떨결에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널찍한 바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아저씨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경치를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가 먼저 물었습니다.


“어떠니? 이 산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지?”

“……아, 네.”


“사실 난 네가 여기 오기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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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둥그렇게 된 눈으로 아저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또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난 벌써부터 선희의 착하고 고운 마음을 잘 알고 있었거든.”

“네에? 어떻게 제 마음까지 아셨어요?”


“허허 그건 그렇고, 선희는 이 단풍 진 아름다운 산의 경치가 몹시 좋지?”

“네. 그건 그래요.”


“그리고 선희가 이 산의 경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지?”

“……?”


선희는 아저씨의 물음에 이번에는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럼 선희는 어젯밤에 어떤 꿈을 꾸었지?”

“……?”


선희는 여전히 눈을 깜빡거리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얼른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런 선희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넌 어젯밤 꿈에 무슨 기계를 열심히 만드는 꿈을 꾸다가 깨지 않았니?"


아아! 그러니까 이제 겨우 생각이 납니다. 아저씨의 말이 맞습니다. 그것은 선희가 생각하기에도 몹시 아쉽고도 안타까운 꿈이었습니다. 선희가 갑자기 생기가 나서 대답하였습니다.


”네, 맞았어요. 이제 생각이 났어요. 아저씨의 말씀처럼 그런 꿈을 꾸다가 깬 것 같아요.“

”이제야 생각이 나는 모양이구나. 그래, 그게 어떤 꿈이었지?“


”으음, 사람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계였던 것 같아요.“

”그래, 맞았다. 바로 그거였단 말이야.“


그러나 아저씨는 무슨 일인지 가슴이 답답한 듯 긴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는 먼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선희야.”


아저씨는 역시 하늘을 바라보면서 선희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네?”

“정말 그런 기계가 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지?”


“네, 그렇긴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인 걸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정말 그런 기계가 있다면 넌 어떻게 할 테냐?”


“그런 기계를 발명할 수만 있다면 아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죠.”

“누가 그런 나라를 만들지?”


"그렇게 할 사람이 없으면 저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그런 네 마음씨가 정말 고맙구나. 사실 그래서 난 너를 만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이 샘가에서 네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마침 네가 왔으니 이제야 마음 놓고 일을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자,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어서 일을 서둘러야지.


아저씨는 점점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말만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선희의 어깨를 깨를 힘껏 잡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


선희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선희는 벌써 오래전부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강도, 절도, 살인, 폭행, 살인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건들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나쁜 짓들을 밥먹듯이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희는 그래서 이웃끼리 서로 돕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사람마다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피어나는 믿음직스럽고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희가 평소에 바라고 있던 꿈의 전부였습니다.


그러기에 간밤에 꾸었던 선희의 꿈은 정말 아쉬운 꿈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계를 만들다가 거의 완성될 무렵에 아쉽게도 잠이 깬 것입니다.


선희는 그래서 아까 그림을 그릴 때에도 간밤의 꿈 생각을 하면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을 그리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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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선희야, 그럼 이제 그만 가 볼까?”

“가다니 어딜 가시려고요?"


“네가 바라던 대로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서 일을 서둘러야지. 자, 어서 가 보자꾸나."

아저씨가 선희의 손을 덥썩 잡으며 이끌었습니다.


선희는 아저씨에게 손을 잡힌 채 아저씨를 따라 산비탈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샘물 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마치 꿈이라도 꾸듯, 그리고 홀린 듯 사방의 경치는 어딜 보나 황홀하기만 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샘물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이따금 이름 모를 어여쁜 산새들이 내려와 앉아 물을 마시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햇솜과 같은 부드럽고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며 노래를 부릅니다.


마치 불이 붙은 듯 빨갛게 노랗게 단풍 진 아름드리나무마다엔 여전히 산들바람이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랑, 빨강, 주홍, 초컬릿 색깔의 낙엽들이 번갈아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나비처럼 땅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가의 주먹만큼이나 큰 알밤을 입에 문 다람쥐가 알밤을 빼앗길까 봐 기암 바위 틈으로 급히 몸을 숨깁니다. 곤히 낮잠을 즐기고 있던 산토끼가 깜짝 놀라 부끄러운 듯 콧잔등을 앞발로 쓱 문지르고는 숲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선희와 아저씨는 사그락 사그락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여전히 산을 오릅니다. 산은 좀 가파르긴 했지만 어쩐 일인지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기는커녕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이런 곳에 와서 마음씨 좋은 아저씨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절로 마냥 부풀어 오릅니다.


그렇게 한창 산을 오르다가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것이 바로 선희와 아저씨가 오늘부터 함께 일을 해야 할 집이란다.”

“어머, 정말 멋져요!”


선희는 금세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저씨가 가리키는 산비탈에는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과 같은 아담하게 지은 아름다운 집 한 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히야, 멋있어요. 저게 정말 아저씨 댁이라고요?”

“허허, 그렇게 좋아 보이니? 아저씨 집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비둘기들의 집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어울릴 거야. 우리 집엔 비둘기가 너무 많이 살고 있으니까.”


아저씨의 말대로 집 주위엔 하얀 비둘기 떼가 수없이 빙빙 맴을 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집 앞에 다다르자 비둘기 떼들은 아저씨에게로 날아와 빙빙 돌며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그래, 우리 평화의 천사들이여, 내가 그렇게 반가웠니? 자 오늘은 내가 이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으니 어서 인사들이나 하고 너희들끼리 가서 놀고 있으렴.”

“구우~~ 구우, 구구우~~”


비둘기들은 곧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듯 구구 소리를 내면서 모두 지붕 위로 날아가 앉았습니다. 선희는 그런 비둘기들의 행동이 너무나 신기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지붕 위와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는 비둘기들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귀엽지? 저놈들이 바로 오늘부터 아저씨와 선희의 일을 도와줄 심부름꾼들이란다. 허허,”


아저씨가 이번에는 선희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선희는 여전히 어리둥절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깨끗이 잘 정돈된 널찍한 방에 세간이라고는 별로 없었습니다. 말끔하게 놓인 책상과 책꽂이, 그리고 책상 옆에는 편지지와 편지 봉투가 잔뜩 담긴 상자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자, 여기까지 올라오느라고 너무 힘 들었지? 우선 앉아서 편히 쉬고 있으렴.”

“네, 그런데 식구는 아무도 안 계셔요?”


선희는 자리에 앉으면서 궁금하다는 듯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식구? 왜 비둘기가 저렇게 많지 않니? 허허허.”


선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웃으며 대답하고 있는 아저씨가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아저씨가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도 절대로 안경을 벗지 않았습니다. 안경알이 유난히도 크고 색깔이 파란 안경이었습니다.


그 날 저녁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마침내 그 궁금했던 안경을 드디어 처음으로 벗었습니다. 그리고는 선희에게 그 안경을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자, 이 안경을 좀 써 보렴, 그리고 나를 자세히 보렴.”


선희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얼른 안경을 받아 썼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를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크게 소리칠 뻔하였습니다. 급히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면서 아저씨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왜 이상하니? 그 안경이 바로 네가 어젯밤 꿈에 만들다가 깬 그 기계와 똑같은 구실을 하는 안경이란다. 그 안경만 쓰면 사람들이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거든. 자, 그런 다시 안경을 쓰고 뭐가 보이는지 나를 자세히 보렴.”


선희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다시 안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가슴 속에 파랗고 이상한 것들이 보였습니다. 선희는 그게 바로 사람의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다시 입을 열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보렴. 사람의 가슴 속엔 세 가지 색깔의 마음이 들어 있단다. 빨간마음, 파란마음, 노란 마음이 바로 그것들이란다.”

“네에, 그런데 아저씨의 가슴속은 모두 파란 빛깔이었어요.”


“그래, 잘 봤구나. 그 파란 마음이 바로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마음이란다.”

“그렇군요. 그럼 노랑 색이나 빨간 색깔은 어떤 마음일까요?”


“노란 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다시 말해서 아무 쓸모 없는 마음이지. 그런데 문제는 그 빨간 색깔이 큰 걱정 덩어리들이란다.”

“아니, 왜요?”


“그게 바로 이 세상에 나쁜 일이란 나쁜 일들을 모두 도맡아 하고 다니는 독하고 악한 마음이거든.”

“네에, 그렇군요.”


선희는 그제야 조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난 듯 다시 물었습니다.


“아저씬 그럼 제 마음도 보셨겠군요?”

“하하, 물론이지.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 놓고 같이 일을 해보자고 하는 게 아니겠니? 선희의 마음도 온통 파란 마음 뿐이거든. 자, 그럼 이번에는 이걸 좀 보렴.”


아저씨가 이번에는 커다란 책꽂이에 있는 두꺼운 책을 두 권이나 꺼내더니 선희 앞에 펼쳤습니다. 그 두꺼운 책에는 사람들의 주소와 이름이 꽉 차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름들마다에는 빨강, 노랑, 파랑색들로 각각 칠해져 있었습니다. 선희가 어리둥절해서 한동안 그 책들을 바라보고 있자 아저씨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게 내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밝혀낸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들이란다. 지금까지 손이 모자라 두 권 밖에 못했는데, 아직도 저렇게 할 일들이 많아서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선희는 아저씨가 가리키는 책꽂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그 책꽂이에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내지 못한 여러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아저씨, 그럼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 내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옳지, 그거 참 좋은 질문이다. 이 세상엔 빨간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나쁜 짓을 하게 마련이거든?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만 찾아내어 미리 경찰에 연락하면 그때부터는 끔찍스런 사건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마련이거든. 그래서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이룩되는 것이고.”


“아아, 그렇군요.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을 누가 무슨 수로 다 연락을 해요?”

“그건 조금도 염려할 일이 아니란다. 조금 전에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수많은 비둘기 떼들을 너도 봤지? 우리가 편지만 써서 주면 그놈들이 물고 가서 연락을 하게 되거든. 나는 내일부터 다시 이 안경을 쓰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 올 테니 내가 알아오는 대로 선희는 부지런히 쪽지를 써달란 말이야. 이제야 알겠니?”


“…….”


아저씨의 물음에 선희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아저씨가 어떤 일을 하는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희는 편지지와 봉투가 가득 든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내일부터 서둘러야 할 일에 대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너무나 벅찬 감격에 잠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선희야,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이렇게 오랫동안 여기 앉아있는 거지?”

“……?”


그 소리에 선희는 그만 흠칫 놀라 뒤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금 선희의 등 뒤에는 아이들이 그린 도화지를 걷어쥔 선생님이 웃는 낯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자, 이제 시간이 다 됐으니 선희가 그린 그림도 그만 내요. 어휴, 정말 멋지게 잘 그렸는걸!”


선희는 여전히 무릎 앞에 놓인 그림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넋이 빠진 표정으로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선희는 지금 빨간 마음이 없는 더 밝고 명랑하며 따뜻한 사회, 그리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속에 잠겨 마냥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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