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겨울의 아침입니다. 할아버지가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담요를 무릎에 두른 채 추위에 떨며 혹시나 하고 밖을 자주 내다봅니다.
“덜컹, 덜커덩~~~”
한 쪽문만 조금 열어놓고 모두 닫아 둔 가게 문이 겨울 바람에 자주 덜거덩거리며 심한 엄살을 부립니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혹시나 꼬마들이 물건을 사러 오는 줄 알고 문에 붙인 손바닥만한 유리 조각을 통해 밖을 내다보곤 합니다.
“헛허흠-- 이번에도 또 저눔의 바람한테 속앗지비. 헛허흐음---”
할아버지는 번번히 속을 것을 알면서도 바람에 문이 흔들릴 때마다 밖을 내다보고는 연신 헛기침만을 하고 있습니다.
“뎅그렁~~ 뎅그렁~~~”
그때,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면서 긴 여운을 남기곤 합니다. 일요일의 예배시간이 된 것입니다. 종소리가 울리자,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느새 어둡고 쓸쓸한 어두움이 번지고 이마에 패인 주름살이 더욱 깊어집니다.
지금 할아버지는 이 가게에 혼자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족을 잃고 이렇게 혼자 외롭게 살게 된 것은 그 모두가 공산당들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북한입니다. 6.25 때 피란을 하다가 그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 할아버지는 70년이 가깝도록 홀로 외롭고 쓸쓸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지금이라도 당장 통일이 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운 아내와 자식들을 꼭 만나보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헐벗고 굶주림에 떨며 놈들의 채찍질을 맞으며 살아가도 괜찮습니다. 그저 그렇게라도 가족들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밤에 잠을 잘 때마다 꿈을 자주 꾸곤 합니다. 그 꿈들은 모두 북한에 두고 온 그리운 식구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꾸다가 깬 할아버지의 눈엔 어김없이 구슬 같은 이슬이 맺히곤 합니다. 그리고는 지난날 식구들과의 단란하고 행복했던 추억을 더듬곤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몸부림을 치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지낼 때 낚시질을 자주 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낚시철에는 가끔 가게 문을 닫고 하루종일 낚시를 하는 재미에 빠져 해가 가는 줄 모르고 어두워질 무렵에야 습관적으로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낚시질을 즐기고 있지만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는 어린아이들도 몹시 좋아합니다. 할아버지에겐 그 아이들이 모두 고향에 두고 온 아들딸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전에 차린 구멍가게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기 때문에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할아버지의 구멍가게 단골이 되었습니다. 학용품을 사러 오거나, 먹을 것을 사러 온 꼬마들에게 인심 좋은 할아버지가 사탕이든 과자든 한 가지씩은 덤으로 더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몇 명만 모이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잘해 줍니다. 그래서 꼬마들은 틈만 있으면 할아버지네 가게로 쪼르르 몰려와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옛날 이이기를 듣거나 저희들끼리 재미있는 놀이를 하다가 가곤 합니다.
그들 중에서도 할아버지를 가장 잘 따르고 그래서 할아버지와 더욱 가까워진 것은 파란 대문집 정란이와 쌀가게 집 순희였습니다.
“후유우~~~”
할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고 나서 다시 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이번에도 얼른 밖을 내다봅니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학용품을 사러 오거나 놀러 오는 꼬마 손님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짓궂은 겨울 바람만이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비? 하다못해 정란이나 순희라도 놀러 올 법도 한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으니 워언.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기다림에 지친 듯 그리고 등살까지 발른 듯 주먹으로 등을 몇 번 두드리고는 이번에는 아예 아랫목에 몸을 바짝 웅크리고 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추위와 외로움과 그리움만이 더욱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가곤 하는 일에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리에 누운 채 멍하니 천정을 바라봅니다. 천장에 바른 주홍빛 천장 무늬들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빙글빙글 맴을 돌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 무늬들은 어느새 동네 아이들의 얼굴이 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모습은 금세 고향에 두고 온 아들과 딸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동네 아이들의 얼굴 모습과 함께 조용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할아버지가 틈이 나는 대로 다니던 호수의 낚시터가 되어 잔물결을 일으키며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느 틈에 호숫가에 앉아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찌의 움직임만 유심히 살피고 있었습니다. 맑은 호수 속에는 아름다운 산이 그림자처럼 비추고 그 옆에는 하얀 뭉게구름 몇 덩이가 바람을 타고 천천히 북쪽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낚시질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스럽게 흘러가는 커다란 뭉게구름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그러던 할아버지에게 문득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이룰 수도 없는 엉뚱한 욕심이 우러나게 되었습니다.
“아하, 저 구름장을 타구서리 앉아 있으문 데절루 내 고향을 가볼 수 있겠지비!”
이렇게 생각한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마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서슴지 않고 호수 속에 떠가는 구름장을 향해 힘껏 뛰어들었습니다.
“첨벙!”
아!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물속에 떠가고 있는 구름장을 향해 천천히 가라앉고 있지만 호수의 물은 조금도 차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구름을 타고 물속을 떠가고 있는데도 숨이 막히거나 답답하지도 않았습니다. 답답하기는커녕 그렇게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뭉게구름 중에도 가장 크고 푹신하게 생긴 뭉게구름 위로 사뿐히 올라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를 태운 커다란 뭉게구름은 바람이 부는 대로 할아버지가 그토옥 그리워하던 북쪽을 향해 천천히 기분 좋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틈에 할아버지를 태운 구름장은 임진강을 건너더니 비무장지대 위를 유유히 흘러갑니다. 차츰 눈에 익은 산천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한 시라도 더 급히 그동안 그리웠던 식구들을 얼른 만나보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흘러왔을까? 한동안 이런저런 갖가지 생각에 잠겨있던 할아버지는 눈 아래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습니다.
“쫏쯧쯧, 저런 죽일 놈들 같으니라구.”
그것은 북녘땅 어느 농장에서 벌어진 광경이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비지땀을 흘리며 힘에 겨운 일을 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 그 중간중간마다 누런 군복을 입은 공산당들이 채찍이나 총개머리로 힘겹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참히 때리며 감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여기저기 주저앉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퀭한 눈으로 배고픔을 이겨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 소나 말처럼 쟁기를 끌다가 지쳐 쓰러지는 사람, 그야말로 생지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놈들은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사람이 지쳐 쓰러질 때마다 쫓아가서 사정없이 매질을 하며 윽박지르곤 하였습니다.
“망할 놈들 같으니, 데놈들은 그래 부모 형데도 없나보디?”
할아버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만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구름은 여전히 흐르고 흘러 어느새 살인 집단 농장을 지나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제발 고향에 있는 자기 식구들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면서 얼마쯤 왔을 때입니다. 또다시 들려오는 신음과 비명 소리에 할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아아! 그곳에도 차마 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강제노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터 옆에는 수없이 많은 책보와 책가방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가 학생들이 노력 동원에 끌려와서 노동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신을 벗었거나 신었다 해도 밑바닥이 다 해진 신을 신고 힘겨운 일을 하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다 해져빠진 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지게질을 하는 학생들, 무엇인가 잔뜩 채운 가마니를 운반하기 위해 두 명씩 짝을 지어 쩔쩔매는 어린 여학생들, 그리고 삽과 곡괭이로 흙을 파거나 돌을 캐내고 있는 어린 남학생들의 불쌍한 모습들, 그야말로 하나같이 처참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쯧쯧쯧, 허구한 날 더짓거리들일테니 공부는 언제 어드렇게 시킨담!”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어디서 갑자기 여학생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여학생이 들고 가던 가마니를 잠깐 땅바닥에 내려놓았다고 심한 채찍에 얻어맞았던 것입니다.
여학생의 목과 뺨에는 금방 피가 흐르고 공산당은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어서 들고 가라고 윽박지르고 있었습니다. 여학생은 이를 악물고 몸을 뒤틀면서 가마니를 다시 들어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워낙 힘이 빠지고 지쳐서 이제는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이 종간나우 새끼가 이제는 점점 꾀를 다 부릴줄 아는구나, 앙?”
공산당은 독사 같은 눈을 부라리며 또 한 번 여학생의 등을 채찍으로 후려갈겼습니다. 여학생이 아픔에 못 이겨 그 자리에 뒹굴자 이번엔 쓰러진 여학생을 군화를 신은 발로 걷어차며 더욱 성이 나서 호통을 치고 있었습니다.
여학생은 이제 비명을 지를 힘도 없는지 몸을 뒤틀며 가느다란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런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런 광경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깜짝 놀라며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매를 맞고 있던 그 어린 여학생, 그 여학생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할아버지가 자나 깨나 보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던 할아버지의 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숙아! 영숙아!”
할아버지는 구름 위에서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며 딸의 이름을 미친 듯이 목청껏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순간 영숙이도 신음을 그치고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더니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할아버지를 바라봅니다.
“영숙아! 내다 내. 너거 아버디라구, 으흐흑…….”
영숙이도 아버지임을 알아차리자 기쁨에 넘쳐 허공에 팔을 벌린 채 아버지를 부르며 발버둥칩니다.
“아버디! 내래 여기선 못 살겠우다래. 날 좀 데려가 주시오 예? 으흐흑…….”
할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발을 구르며 구름장이 아래로 내려가게 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어쩐 일인지 구름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떠있을 뿐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이번에는 구름장에 배를 대고 엎드려서 딸의 손을 잡아보려고 손을 밑으로 뻗치고 허우적거려봅니다. 영숙이도 발뒤꿈치를 번쩍 치켜들고 힐아버지의 손을 집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런 반동 새끼들 같으니, 어디 맛좀 보라우."
지금까지 어리둥절하고 있던 공산당 놈들이 일제히 할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누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모든 일은 끝나고 말았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하고 두 눈을 꼭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탕! 타당탕!“
요란한 총소리와 나기가 무섭게 할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할아버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영숙이는 이미 놈들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영숙아아---! 영숙아----!”
할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 놈들은 여전히 할아버지를 향해 총을 쏘아 대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총알은 모두 구름장에 박힐 뿐 할아버지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영숙아아---! 영숙아----!”
할아버지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소리는 온 산천을 뒤흔들며 처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할아버지 주무시는 거여요?”
“이제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셔요.”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번쩍 떴습니다.
“어엉? 너희들이 언제 와 있었구나. 냘씨가 몹시 추우니 어서 이 아랫목으로 와 앉거라, 어서!”
어느새 들어왔는지 파란 대문집 정란이와 쌀집 순희가 들어와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우습다는 듯 내려다보며 할아버지를 깨우고 있었습니다.
“내래 꿈을 꾼 것은 아닐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일어나 앉아서도 여전히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좀 전에 너무나 끔찍한 광경을 분명히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오늘도 옛날이야기 좀 해주셔요. 아주 재미있고 긴 걸로요.”
“응, 기래. 해주고 말고…… 내래 잠을 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무슨 까탄(까닭)이지비?”
할아버지가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본 아이들의 두 눈이 우습다는 듯 둥그렇게 됩니다.
“옛날이야기 좀 해 달라니까 왜 자꾸 딴 소리만 하셔요, 네?”
“응, 그래, 그래. 내래 정신이 나갔구만, 옛날, 옛날에 말이지.”
“네.”
“옛날에 말이야.
“그래서요?”
“그래서……그래서 말이지…….”
오늘따라 할아버지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똑같은 말만 자꾸 되풀이합니다. 그런 할아버지의 눈에는 어느 틈에 그렁그렁 이슬이 맺히고 초점 잃은 눈으로 멀거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란이와 순희는 이상하다는 듯, 그리고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쁩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그래도 둑기 전에는 만나볼 수 있겠다!”
할아버지의 얼굴엔 다시 어두움의 그림자가 짙게 번집니다. 그러면서 외로움과 쓸쓸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덜컹, 덜커덩~~~”
가게 문 흔들리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욱 요란스럽게 들리는 것을 보면 아마 바깥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