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에서 조금 떨어진 대한민국 땅에 은영네 마을이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은영이네 마을 서북쪽으로는 임진강이 훤히 내다보이고 마을 바로 앞으로는 서울과 판문점을 잇는 통일로가 오늘도 조용히 길게 누워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은영인 식구들 몰래 살그머니 일찍 일어나 통일로에 나갈 채비를 하고 살며시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니, 너 벌써 또 청소하러 가는 거니?”
은영인 할머니의 물음에 찔끔 놀라 열었던 방문을 도로 닫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할머니의 단잠을 깨울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도 벌써 알아차린 걸 보면 할머니의 잠귀는 정말 귀신도 못 속일 것만 같았습니다.
“저 자동차 다니는 소릴 좀 들어보세요. 벌써 날이 밝아온 걸요.”
“원, 녀석도 부지런하긴. 그럼 바깥 날씨가 몹시 찬 모양이니 기왕에 나갈 거라면 옷이나 단단히 껴입고 나가려무나.”
“네, 그건 걱정 마세요. 그런 걱정은 말고 할머닌 좀 더 주무시기나 하셔요. 옷을 이렇게 잔뜩 껴입은 걸요.”
은영인 제가 입은 두툼한 쉐터 자락과 털장갑을 낀 손을 들어보이고는 다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동차 조심 좀 하고 응?”
“네, 걱정 마시라니까요.”
은영인 할머니의 걱정 소리를 등 뒤로 느끼면서 싸리빗자루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12월 중순으로 접어든 겨울의 새벽 날씨는 뼛속 깊은 곳까지 싸늘한 냉기를 무섭게 쑤셔대고 있었습니다.
몸을 바짝 웅크린 은영인 통일로를 향해 힘껏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따금 노오란 빛으로 두눈을 부릅뜨고 통일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오고 갈뿐, 거리에 나온 사람이라고는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통일로에 다다른 은영인 여느 때처럼, 마을 이정표가 걸린 간판이 있는 곳에서부터 도로를 쓸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간판이 있는 곳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5백 미터 떨어진 곳에는 조그마한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까지가 늘 은영이가 하고 있는 청소구역이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임진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은영이의 뺨을 사정없이 할퀴곤 합니다. 그래도 은영인 어금니를 꽉 깨물고 추위와 싸우면서 싸리 빗자루로 열심히 쓸고 있습니다.
조금 뒤부터는 손끝이 아려옵니다. 아리다 못해 손가락 끝마다 마치 송곳으로 쑤시는 듯 아프기도 합니다. 은영인 할 수 없이 빗자루를 내려놓고 두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불어봅니다. 은영이가 이렇게 추위와 싸우면서 쩔쩔 매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얘, 은영아, 네가 몹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알겠다만, 조금만 더 참고 열심히 통일로를 좀 가꾸어다오. 그래서 이 할애빌 좀 살려다오, 응? ”
어디서 어렴풋이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가련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그 소리, 그 목소리는 분명히 은영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틀림없었습니다.
“앗! 할아버지 어디 계셔요. 네?”
은영인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란 열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새벽의 엷은 어두움만이 사방에 덮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보아 온 인자하신 할아버지, 그렇게도 할머니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음성을 은영인 지금 듣게 된 것입니다.
은영인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한동안 어쩔 바를 모르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두 번 다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은영인 추위조차 잊은 듯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통일로를 쓸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의 측은하면서도 가엾은 목소리가 자꾸만 들려올 것만 같은 느낌에 지금까지 없었던 힘이 다시 불끈 솟아오릅니다.
그러나 임진강의 사나운 바람은 여전히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와 은영이의 몸뚱이를 모질게 후려갈깁니다. 은영인 그런 무서운 강바람에 맞서며 지지 않고 더욱 빨리 비질을 계속합니다. 그러자 다시 손끝이 몹시 아려옵니다. 이번엔 발까지 시리고 아려옵니다. 온몸이 자꾸만 얼어붙게 되자 이번엔 은영일 비웃던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들려옵니다.
“치, 제까짓 게 공부나 잘하고 교육장 상만 타면 단가 뭐?”
“누가 아니래.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제까짓 게 저 외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야.”
은영인 그런 말들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아까보다 더욱 빨리 쓰레질을 합니다.
사실 은영인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합니다. 그래서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줄곧 1등이나 2등만을 해 왔습니다.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닙니다. 품행도 매우 아름답고 착합니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은 물론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해 오고 있는 은영이입니다.
그렇게 칭찬을 받다 보니 마치 눈엣가시처럼 은영이를 미워하던 몇몇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친구들한테 더욱 미움을 받게 된 것은 통일로가 완공된 뒤부터의 일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보기에 지나칠 정도로 통일로 가꾸기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통일로를 가꾸고 돌보는 일은 은영이 혼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영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과 모든 학생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다 함께 정성껏 가꾸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영이가 통일로를 보살피고 가꾸는 정성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봄이면 통일로 변에 화단 만들기와 꽃씨 뿌리기로 틈만 나면 통일로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또한, 여름이면 화초에 물줄기와 김매기로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꽃씨 받기와 시든 꽃의 뒷정리를 하고 겨울이면 날마다 쉬지 않고 청소를 해온 것입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애쓰고 고생한 보람이 있어 은영인 교육장님의 상장과 상품을 푸짐하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은영이가 다니는 학교도 꽃길 가꾸기 우수 학교로 표창을 받는가 하면 또한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칭찬을 받을 기회란 다름 아닌 자유의 다리 옆에 새로 임진각이란 관광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임진각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씩의 많은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습니다. 국내 손님은 물론 멀리 외국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구경을 하러 오기도 하였습니다.
이 손님들이 임진각에 다녀갈 때는 누구나 으레 은영이네 마을 앞에 놓여진 통일로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히야! 저 길가에 코스모스 만발한 것 좀 봐, "
"야! 마치 천국에라도 온 느낌이 드는 걸. 허허허……."
“맨드라미, 과꽃 봉숭아, 사르비아……. 히야! 저 많은 꽃들을 누가 저렇게 정성껏 가꾸었을까? 고생깨나 했겠는 걸.”
통일로를 처음 지나는 손님들은 누구나 이렇게 한마디씩 하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런 칭찬과 감탄은 관광객들뿐이 아닙니다. 북한 적십자사 대표가 이 길을 통해 우리나라에 올 때나 돌아갈 때에도 쉴 새 없이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어림도 없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게 꽃으로 정성을 다해 가꾼 아름다운 길은커녕 어딘지 어딜 가나 을씨년스럽고 삭막한 길들만 뻗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북한 적십자대표들은 이 아름다운 통일로의 풍경을 보면서도 마음속으로만 감탄하고 놀랄 뿐 겉으로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은영이는 가끔 남모르는 마음의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통일로 가꾸기에 유난을 떨고 있다고 반 아이들의 비웃음을 받을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왜 은영이가 통일로를 고생을 하면서 가꾸고 있는지를 몰라부는 친구들이 그저 가슴만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은영인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고 싶어서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런 고생을 무릅쓰고 오직 통일로 가꾸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쏟다 보면 언젠가는 할머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 )
- 꿈꾸는 통일로 1회분. 70년대 초 신아일보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