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꿈꾸는 통일로 (2)

by 겨울나무

은영이 할머니의 고향은 북한입니다.


할머니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매일 저녁만 되면 임진강이 훤히 보이는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할머니 혼자 올라갈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어린 은영이를 데리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산에 오른 할머니는 으레 조그만 잔에 술을 부어 놓고 북쪽을 향해 큰절을 세 번이나 올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북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정성껏 빌곤 하였습니다.


“영감! 당신이 늘 그렇게도 즐기시던 약주를 가져왔으니 어서 한잔 드세요.”

그럴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목이 메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두 눈에는 어느 틈에 굵은 이슬이 맺히고 그 이슬방울은 뺨을 흘러내립니다.


은영인 그 때마다 덩달아 따라 훌쩍이면서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끌며 울지 말라고 칭얼거립니다. 은영이가 그러면 그럴수록 할머니의 흐느낌은 차츰 더 커지면서 마침내는 큰소리로 통곡을 하는 할머니였습니다.

은영이는 나중에 철이 좀 들어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할머니는 6. 25때 피란을 다니다가 북한 땅에서 그만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부터 할머니는 소식조차 모르는 할이비지 생각에 잠시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신꼭대기에라도 올라가서 술을 부어 놓고 부디 할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비는 것만이 할머니의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할머니를 누구보다도 불쌍하게 생각해 주는 것은 은영이었습니다.


그런 은영이었기에 할머니는 은영잉를 끔찍이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영이 없이는 못살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몇 해가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학교에서 돌아온 은영이가 급히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뛰어들어 오면서 할머니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은영이의 일굴은 몹시 흥분된 듯 시근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늘따라 웬일로 이렇게 수선이니 수선이?”


할머니가 놀란 듯 눈이 둥그렇게 되어 은영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할머니 말이지, 할머니 으음, 말이지?”

“이러언, 자식도 참, 어서 말해 보렴. 여자가 너무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 못쓰는 거라니까 그러네. 쯧쯧쯧 …….”


할머니는 그런 은영이가 한편으로는 몹시 귀여워 못 배기겠다는 듯 가볍게 눈을 흘겼습니다.

“호호호……. 글쎄 할머닌 잠자코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어쩌면 말이죠. 할머니도 할아버지 소식을 듣게 될 수도 있대요”

“아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은영이의 뜻밖의 말에 할머닌 이리둥절한 눈이 되면서 안색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이제 남북한 적십자 회담을 열게 되는데 이 일이 잘 되면 그동안 헤어져서 지내던 남한과 북한의 식구들을 서로 만나 볼 수도 있게 된대요.”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어디 다시 한번 자세히 말해 보렴.”


할머닌 더욱 궁금한 듯 은영이 얼굴만 바라봅니다. 은영인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은영이의 설명을 듣기가 무섭게 급히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은영이의 말이 맞는 말인지 아닌지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이장 아저씨를 만나거 간 것입니다.

한참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이번에는 어깨춤까지 덩실덩실 추면서 좋아했습니다. 이장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은영이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얘, 애비야! 그리고 어멈아! 이제야 난 결국 우리 영감을 만나보게 될 것 같더구나.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더니, 그래서 옛날 사람들 말이 조금도 틀림없거든.”

할머닌 마치 어린이이가 된 것처럼 창피한 것도 모르고 어린애처럼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며칠 뒤, 마침내 남북 적십자 회담이 처음으로 벌어지게 될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통일로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판문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대한 적십자 대표들을 보자 손을 힘껏 흔들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


그리고 할머니는 북한 적십자 대표가 서울로 올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뜻에서 이번에도 손을 힘껏 흔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꼭 이루어지기만을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그렇게 애타게 빌고 또 빌었지만 그 모두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북한 적십자 대표들이 서울에 왔을 때, 결국 그들의 속셈은 이산가족 상봉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으로 틀어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암,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놈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니라구. 망할 놈의 자식들 같으니라구! 가만히 보니까 지금까지 바람만 잔뜩 불어넣고 말았잖아.”

아침부터 초조하고 애타는 가슴을 달래며 라디오 곁에만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던 할머니의 입에서는 그만 긴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하다는 듯 그리고 그놈들에게 또 속고야 말았다는 듯 억울한 마음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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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한 적십자 대표들의 속셈은 처음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회담을 핑계로 우리 자유 대한민국의 요구를 완전히 묵살해버리고 어처구니없게도 김일성의 우상화와 공산당의 선전만을 실컷 늘어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정말 죽일 놈들 같으니라구, 쯧쯧…….”


분에 못이긴 할머니는 그만 그들에게 욕설을 연신 퍼부으며 혀를 끌끌 차고 있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은영이의 마음도 몹시 언짢았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난 뒤부터 할머닌 그나마 조금씩 드시던 식사도 제대로 드시질 않고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여위어 가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은영이와 재미있는 말씀도 잘 해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게 없습니다. 말 수도 부쩍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은영인 이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 드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남북한 적십자 회담이 없었던 게 훨씬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공연히 고생을 해가면서 통일로 가꾸기를 했다는 후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 언젠가는 할아버지를 꼭 만나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시고 그 날이 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세요, 네?”


매일 너무 상심만 하면서 풀이 죽어 있는 할머니를 보다 못한 은영이가 이렇게 할머니를 달래드렸습니다.


“아암, 그렇고 말고, 난 할아버질 만나보기 전엔 절대로 이 두 눈을 감지 않을 거란다. 참, 너희학교 학생들 요즈음에도 통일로를 정성껏 가꾸고 있니?”

“그럼요. 요즈음에도 공부가 끝나면 매일 통일로를 나가는걸요.”

'아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언젠가는 그 통일로를 따라 우리 은영이 할아버지는 꼭 오실테니까 말이야.“


할머니의 목소리는 비록 작았지만,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게 된 뒤부터 은영인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는 길은 오직 통일로를 아름답게 가꾸고 깨끗이 청소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은영이는 어느새 다리가 있는 곳까지 말끔히 쓸었습니다. 그러자 먼동이 트면서 환하게 밝기 시작했습니다. 아까보다 강바람은 좀 기가 꺾이긴 하였지만, 날씨는 여전히 매섭게 춥기만 합니다.


은영인 그제야 허리를 펴고 손을 호호 불면서 은영이가 살고 있는 마을을 바라봅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마당도 쓸기도 하고 짐승들을 거두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통일로를 힘차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들마다 운전하던 아저씨들이 은행일 보자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럴 때마다 은영이도 환하게 웃으며 밝은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어주곤 합니다.


은영이가 이번에는 문득 고개를 돌려 북쪽으로 시원스럽게 끝없이 뻗어 있는 통일로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통일로가 길게 벋은 북녘 하늘에는 답답하리만큼 어두운 구름장들로 덮여 있습니다.


”언젠가는 통일이 오겠지! 그리고 그토록 원하고 있는 할머니의 소망도 이루어지고야 말겠지!“


은영인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답답한 듯 긴 한숨을 내쉽니다. 은영이의 간절한 이 꿈은 결코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추위를 이겨가면서 통일로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은영이의 온갖 정성이 듬뿍 깃들어 있으니까요.


“은영아~~~! 은영아~~~!”


그때 갑자기 은영일 크게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을 어귀에서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아마 그새 엄마가 아침밥을 다 지어 놓은 모양입니다.


"네에, 할머니 지금 곧 가요오~~!“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은영인 할머니를 향해 힘껏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신바람이 나서 달려갑니다. 칼날처럼 무서운 강바람이 다시 사납게 불어옵니다. 은영인 어느새 추위도 잊은 듯 말끔히 청소가 된 통일로를 따라 힘차게 달려가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통일은 반드시 오고 말 거야. 그리고 할머니의 소원도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고 말 거야!“


아마 지금 서울에서 임진각까지 말없이 길게 누워 있는 통일로도 은영이와 똑같은 꿈을 한장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



- 2회분 완. 70년대 초 신아일보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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