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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14. 2020

엿장수, 그리고 얼음과자 장수

[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

 “짤그랑! 짤그라랑!”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엿장수들이 많았다.  

    

그들은 으레 커다랗고 육중하게 생긴 가위를 하나를 손에 들고 연신 ‘짤그랑’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곤 하였다.      


엿장수 가위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엿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너도나도 우르르 모여들며 엿장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였다. 먹을 것과 주전부리라고는 전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배고픈 시절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엿장수는 대개 널빤지로 된 네모난 목판 위에 하얗고 길다란 먹음직스럽게 생긴 엿가락을 가지런히 정리해 가지고 지게에 지고 다니곤 하였다.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엿이었다.

        

엿을 살 때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돈도 귀했지만, 뭐든지 받고 엿과 바꾸어 주곤 하였다. 엿장수들이 주로 받던 것들은 고추씨, 낡은 고무신, 여자의 긴 머리카락, 깨진 유리 조각, 쇠붙이, 구리, 빈 병 등 닥치는 대로 다 받았다.    

  

혹시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엿과 바꿀 때마다 실랑이도 많이 벌어지곤 하였다. 왜 이렇게 엿을 조금 밖에 안 주느냐고 조금만 더 달라고 졸라대곤 하는 실랑이였다. 그러면 엿장수는 마지못해 크게 인심을 쓰는 척하고 엿장수 가위로 엿을 조금 더 잘라서 주곤 하였다. 아마 그래서 엿장수 마음 대로 란 말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일단 엿을 샀다고 해도 마음 편하게 안심을 하고 엿을 먹을 수는 없었다.     

 

곁에서 구경하고 있던 동네 아이들이 모두 달려들면서 군침을 삼키며 엿을 조금만 달라고 졸라대기 때문이었다. 마음씨가 착하고 어수룩한 아이는 아이들에게 엿을 조금씩 나누어 주다가 결국 제 몫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그만 으앙 소리를 내며 우는 일도 종종 벌어지곤 하였다.      


그런 때는 으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부모님이 쫓아 나오게 되고 아이들은 모두 줄행랑을 치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기운이 많고 성격이 못된 아이는 누군가가 엿을 사기가 무섭게 그 엿을 모두 매가 닭은 채가듯 순식간에 힘으로 낚아채서 뺑소니를 치기도 하였다.       

또 엿을 너무 먹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해프닝이 수시로 벌어지기도 하였다.   

   

어떤 아이는 엿을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차마, 못할 일도 서슴지 않았다. 조금 더 신어도 되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귀한 고무신을 갖다가 엿과 바꾸어 먹었다가 크게 야단을 맞거나 매를 맞는 일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고무신도 귀해서 해지면 꿰매 신던 시절이었으니 어쩌면 야단을 맞거나 매를 맞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고무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고무신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 가지가 문득 떠오른다. 


우리 마을에 살고 있는 어느 집 아이에게 부모님이 모처럼 고무신을 한 켤레 사다 주게 되었다. 지금까지 고무신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던 아이는 그렇게 신고 싶었던 새 고무신이 생기자 고무신을 그렇게 좋아하며 아낄 수가 없었다.        


고무신을 그렇게 아끼고 소중하게 여긴 그는 잠을 잘 때에도 항상 고무신을 옆에 끼고 자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낮에는 고무신을 신고 다니기는 하지만 고무신 바닥이 닳아버릴 것이 걱정이 되어 항상 조심스럽게 사뿐사뿐 걸음을 걸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혹시 학교를 가거나 어디를 갈 때에도 남들이 볼 때는 고무신을 신고 다니고,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는 고무신을 아끼기 위해 신지 않고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게 고무신이 소중했던 시절에 감히 부모님이 신던 고무신을 함부로 갖다가 엿과 바꾸어 먹었으니 부모님에게 심한 야단을 맞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엿을 너무나 먹고 싶었던 어떤 여자아이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엿과 바꾸어 먹는 아이들도 가끔 있었다. 부모 몰래 제 자신이 가위로 머리를 잘랐으니 머리 모양이 얼마나 꼴불견이었으랴. 그래서 가끔 어떤 여자아이들은 그 꼴불견이 된 머리를 감추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다니던 아이들도 가끔 보이기도 하였다.      


유리 조각도 마찬가지였다. 유리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어쩌다 낡아빠진 장롱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거울을 몰래 깨뜨려가면서 엿과 바꾸기도 하였다. 또한, 엄마가 소중히 쓰고 있는 경대에 붙어있는 거울도 안심을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모든 일들이 어쩌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오죽이나 배가 고프고 엿이 먹고 싶었으면 그런 짓까지 해가면서 엿과 바꾸어 먹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일이라 하겠다.    


   

아이스케이크, 얼음 과자!     


옛날 겨울철에 엿장수가 많았다면 여름철에는 이이스케이크 얼음과자 장수가 많았다.    

  

“아이스께끼이~~ 얼음 과자~~!”     


엿장수가 엿장수 가위를 쩔거렁거리며 아이들을 모았다 하면 아이스케이크 장수는 입으로 떠들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끈이 달린 커다란 네모로 생긴 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며 구성지게 소리소리 지르고 다녔다.  

    

그렇지 않아도 몹시 더워서 땀이 저절로 나는 여름철에 아이스케이크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선풍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으며 부채도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그 당시에 얼음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아이스케이크 장수 역시 돈도 받지만, 다행히도 엿장수처럼 아무것이나 다 받았다. 그래서 엿을 몰래 사 먹고 혼이 났을 때처럼 아이스케이크 역시 집안에 있던 아무것이나 갖다가 주고 야단을 맞는 아이들도 많았다.      


엿이든 아이스케이크이건, 오죽 배가 고프고 먹고 싶었으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야단을 맞을 각오를 하고 그런 짓을 했을까.      


그때의 아이들은 배고프고 어려운 시절에 참 불쌍한 하루하루를 용케 견디어 내며 살았다는 생각이 새삼 떠오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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