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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15. 2020

어느 남매의 기구한 운명

[김성종의 추리소설 <어느 娼女의 죽음> 독서록]

젊어서는 한때 시나리오 창작에 몰입하다가 그 후부터는 지금까지 주로 창작동화를 써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그 많은 세계 걸작 소설들보다는 틈틈이 추리소설을 즐겨 읽고 있다. 해외 걸작 작품들보다는 국내 작가들이 쓴 소설이 오히려 내 취향과 정서에 맞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고많은 작가들의 추리소설 중에서도 특히 국내 추리소설 작가의 거장인 김성종 작가의 소설을 주로 애독해오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난 우연한 기회에 김성종 작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작가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재미와 스릴이 아슬아슬하게 반복 전개되는 이야기에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기도 하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 후부터는 그 작가의 소설이 나오기가 무섭게 지금까지도 모두 구입하여 읽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가 쓴 소설책을 모두 소중히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좁은 소견인지는 몰라도 그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그 어느 명작이나 걸작보다 작품성이 우수하다고 본다. 그래서 아주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해외 작가들의 걸작보다도 난 이 작가의 추리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읽고 있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소설 역시 그의 추리소설 중의 하나인 <어느 창녀의 죽음>이다. 그동안 수많은 그의 작품을 읽었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가장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두드러진 작품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이 소설을 읽어본 분이라면 누구나 아하! 그 작품, 하고 다시 우리 민족의 분단의 비극을 다시 한번 실감하기에 충분하리라.        
6. 25 동란으로 인한 두 남매의 기구하고도 비극적인 운명을 그려낸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분단된 조국의 비극을 그린 작품으로 두고두고 모든 이들의 가슴을 찢어지도록 아프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라 믿고 있다.       




             


-이 이야기는 종로 사창가(私娼街)가 폐지되기 전에 일어났던 한 비극적(悲劇的)인 사건(事件)을 다룬 것이다-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북한 특수부대 124군 소속) 31명이 1968년 1월 21일 밤 10시경,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까지 침입했다가 우리 군경과의 격렬한 전투 끝에 30명이 사살되었고, 이들 중 김신조는 한 명만이 생포되었다. 김신조에게 침투한 목적을 물어보니 “박정희 목을 따러 왔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던 사건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김신조가 무모하게 청와대 습격을 했던 바로 다음 해, 즉 1969년 1월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그해 1월은 유난히 추웠다. 눈도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 몹시 추운 1월의 어느 날 저녁 늦은 시간, 신문 배달 소년이 종로 3가의 돈화문 앞을 급히 뛰어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길가에 버려진 이상한 물체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길쭉하게 눕혀진 그 물체는 눈에 덮여 있었다. 소년은 호기심에 발로 툭 건드려 보았다. 그리고는 기절을 할 듯 놀라고 말았다.    

  

눈에 뎦여 있던 물건은 다름 아닌 죽은 여자의 시체였기 때문이었다. 신발도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인 여자의 시체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 여자의 시체는 즉시 종로 경찰서 뒤뜰로 옮겨졌다. 맨땅바닥에 거적만 하나 덮어준 채 눕혀 있었다.


일단 경찰서로 온 의문의 시체로 들어온 시체들은 경찰서에서 그대로 2,3일간 방치해 두었다가 그동안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바로 시에서 화장터로 보내지거나 헐값으로 대학 병원 실험용으로 팔려나가게 되어 있었다. 검시의의 검시 결과 그 여자는 음독자살로 확인되었다.

      

종로 경찰서 소속 오형사가 당직을 끝내고 아침에 일어나자 바로 경찰서 뒤뜰을 향해서 가게 된다. 그리고 눈으로 두텁게 덮여 있는 여자의 시체를 자세히 살펴본다. 죽은 젊은 여자는 여전히 맨발인 채로 눈을 맞으며 그곳에 누워 있었다. 오형사는 그 여자를 보자 갑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 뒤부터 오형사는 여자가 죽은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각방으로 돌아다니며 고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죽은 그 여자가 마침내 창녀였다는 것을 밝혀내게 된다. 오형사는 죽은 여자의 방에 가서 이것저것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찾아본다. 그러나 그 여자가 남긴 물건이라고는 달랑 허름하고 조그만 핸드백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 핸드백에서 나온 것은 달랑 남자들의 명함 다섯 장뿐이었는데 오형사는 그 명함을 가지고 한 사람씩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포주의 말을 들어보니 그 여자가 죽던 날 30대의 잘 생긴 어느 젊은 남자와 하룻밤을 잤는데 그 남자는 화대도 내지 않고 외상으로 잠을 잤다는 것이었다.      


이 바닥에서는 절대로 외상이라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외상으로 하룻밤을 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 잘 생긴 남자를 얼마나 좋아했기에 외상으로 하룻밤을 잤겠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일찍 그 남자가 나가고 난 뒤에 바로 여자도 따라서 나간 걸 보면 그 남자를 따라 도망을 간 게 틀림없다는 진술을 하고 있었다.      

오형사는 명함 다섯 장을 들고 부지런히 그들을 한 사람씩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명함 중의 한 사람을 찾아가 보니 그 사람은 시청 공무원이었는데 하필이면 어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은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이어서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기에 일단 제외되었다.    

 

또 한 사람은 가게 주인이었는데 당당히 돈을 주고 하룻밤을 잤다고 하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오형사를 보자 마침 상처를 당해서 외로워서 어쩔 수 없이 거길 가게 되었다며 한 번만 봐 달라고 봉투를 내밀기도 하였다.    

   

결국,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은 인천 부둣가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곳에서 근무하는 하역 조장이었다. 나이도 걸맞게 30대이며 잘 생긴 얼굴이었다. 이름은 백인탄이었다.      


오형사가 인천까지 그를 찾아가자 그는 단번에 내일이나 모레쯤 서울에 가는 길에 갚을 생각이었는데 그게 뭐 잘 못 된 게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면서 떳떳한 고자세로 나왔다.     


그러나 오형사가 외상값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가 죽었기 때문에 당신을 찾아오게 되었다느 말에 백인탄은 그제야 겁을 먹고 오형사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여기서 잘못했다가는 살인범으로 몰릴 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제야 그날 밤에 그 여자와 잤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죽기 바로 전날, 백인탄은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돈을 좀 빌리러 급히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돈은 빌리지 못한 채 날이 어둡고 말았다.


아직까지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그는 틈만 나면 불끈 솟아오르는 정력과 욕정이

늘 고역이었다. 그래서 가끔 자신의 육체적인 욕 해소하기 위해서는 창녀에게 가서 몸을 풀곤 하였는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그것도 뜻대로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도 주머니에 돈은 없었지만, 배짱 하나만 믿고 자신도 모르게 발길은 이미 종3 뒷골목을 향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단 예쁘게 생긴 창녀 한 사람을 만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창녀는 우선 방에 들어가자마자 화대를 요구했다. 백인탄은 돈이 없으니 외상으로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여자는 이곳에 외상이라고는 없다며 단번에 거절하였다. 그러자 백인천은 이처럼 아름다운 여자와 회포를 풀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그는 자신이 차고 있던 낡은 손목시계를 풀어주며 이걸 담보로 잡힐 테니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며 졸랐다. 그리고 이 시계는 허름해 뵈기는 해도 나에게는 너를 팔아도 살 수 없는 아주 소중하고 귀한 시계라는 말도 덧붙여 강조하였다.      


여자는 일단 화대를 다음에 꼭 받기로 약속을 하고 그 남자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백인천은 오랜만에 그 여자와 격렬한 몸짓과 테크닉으로 회포를 풀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여자와 욕정을 풀어보기는 낸생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매우 만족해 했다. 그리고 대화 도중에 남자가 여자에게 ’간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듣게 되자 고향이 어디냐고 여자가 묻게 되었다.     


남자는 평안북도 의주가 고향이라고 하였다. 여자가 다시 물었다. 시계는 너무 낡아보이는데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소중한 시계라고말을 강조하고 있느냐고 그러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난 평안북도 의주가 고향인데 1.4 후퇴 때 월남을 하다가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다고…….


그리고 아버지와 나, 그리고 여동생 그렇게 셋이서 월남을 하다가 아버지가 그만 헌병대에 붙잡혀 징용을 가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때 내 여동생은 5살이었고 난 14살이었는데 일단 아버지를 도로 찾아와야 된다면서 여동생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서 있으라고 하고 떠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백인천은 결국 아버지도 찾지 못하고 여동생이 있던 자리로 도로 와보니 동생도 이미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시계는 아버지와 헤어질 때 아버지가 마지막 유물로 남겨준 시계여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끝낸 백인탄은 네 고향은 어디냐고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전라도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 일찍 고향을 떠나서 그렇다고 얼른 대답했다.     

 

아아! 그 다음 순간, 여자의 안색이 점점 복잡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기구한 운명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남자는 분명히 자신의 오빠였던 것이다.

      

한동안 긴 이야기를 끝낸 백인탄은 목이 마르니 소주 한 병만 사다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여자가 소주를 사러 가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 백인탄은 소주 정도 살 돈은 있으니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괜찮다며 그대로 나가더니 소주와 안주가 될만한 과자와 과일 등을 한 아름 사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백인탄은 여자가 깎아주는 과일을 안주로 영자가 따라주는  소주를 맛있게 받아마시게 되었다.     

  

여자가 갈수록 친절하게 해주자 남자는 속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 이 여자가 나한테 단단히 반한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다면 몸도 외상으로 주더니 과일과 소주까지 제 돈으로 사다 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소주와 과일을 다 먹고 난 남자는 다시 용솟음치는 정욕을 참지 못하고 다시 여자를 바닥에 눕혔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남자가 하자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남자는

아, 이 여자가 나한테 반해도 단단히 반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혼자 좋아했다.      


여자를 껴안은 채 하룻밤을 자고 난

그다음 날 아침 백인탄은 여자와 헤어지면서 다시 부탁했다. 그 시계 잃어버리지 말고 내가 돈을 가지고 올 때까지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그러나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에게 시계를 도로 돌려주었다.    

  

남자가 한참 걸어가다가 뒤를 흘낏 바라보았더니 여자가 남자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울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생각했다. 저렇게 슬픈 표정으로 울기까지 하는 걸 보면 정말 나한테 마음이 쏠려있는 여자임에 틀림없다고…….     


여자는 그 길로 약방마다 돌아다니며 수면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리를 방황하면서 그 수면제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고 정처없이 걷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거리에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오형사는 백인탄을 만난 후 곧바로 인천 부둣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처얼썩, 철썩!“     


파도가 무서운 기세로 몰려왔다 가곤 하면서 방파제를 삼킬 듯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형사는 그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도가 더 심하게 쳐서 이 세상 모든 찌꺼기를 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으로 빌고 있었을 것이다. 분단으로 남겨진 이 땅의 비극들 모두가 파도로 말끔히 씻겨나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마음속으로 절규를 하고 있었으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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