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리모컨 쟁탈전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오늘 저녁에도 성길 씨와 아내가 리모컨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사이가 아주 놓은 부부이긴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프로를 보기 위해서는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글쎄, 리모컨 잠깐만 이리 줘봐요.”

“안 돼. 조금만 있으면 끝나니까 그때 줄게.”


아내는 일일 연속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성길 씨가 들고 있는 리모컨을 빼앗으려고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성길 씨는 성길 씨대로 지금 한창 방영하고 있는 스릴이 넘치는 액션 영화를 보기 위해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여보, 정말 이러기야? 드라마 다 끝나간다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영화도 얼마 안 있으면 끝난다니까. 자꾸만 그러네.”


“좋아요. 그럼 난 방으로 들어갈래요. 혼자 많이 보도록 해요.”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럼 내가 양보할게.”


아내가 약간 뽀로통해진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성길 씨가 얼른 리모컨을 아내에게 양보해 주고 말았다. 그제야 아내가 싱그레 웃으면서 금세 드라마 채널로 돌렸다.


성길 씨가 매우 아쉬운 표정으로 멋쩍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히야, 그 주인공 배우 주먹 참 무섭더라. 그저 상대편 적이 나타나는 대로 주먹으로 ①답새겨서 쓰러뜨리더라구.”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무참히 때리는 장면이 뭐가 좋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좀 잔인한 데가 있다니까.”


“아휴, 사람두 차암, 사람을 그렇게 ②어방치기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잖아.”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요. 남자들은 왜 그렇게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는지 난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 주인공의 주먹 한 대만 맞았다 하면 ③락자없이 나가자빠지더군. 허허, 그거 차암. 그나저나 당신 ④땅고집도 어지간하더군.“

아내가 성길 씨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드라마에 시선을 멈춘 채 물었다.


”뭐가 어지간하다는 건데요?“

”조금 전에 끝까지 리모컨을 달라고 쫓아다니는 걸 보니까 그렇다 이 말이야.“


”사돈 남말하네요. 당신은 어떻구?“

”허허허, 나도 그랬던가? 그럼 당신은 운동경기를 좋아하니까 하나만 물어볼게.“


”뭔데요?“


아내는 여전히 시선을 드라마에 집중한 채 건성으로 물었다.


”농구 경기에서 ⑤걸음어김이란 용어가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몰라요.“


”그럼 배구에서 ⑥살짝공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어?“

”아이고, 몰라요. 좀 조용히 해봐요. 드라마 좀 볼까 했더니 왜 하필이면 이련 때 그런 쓸데없는 걸 물어보고 이 야단인지 모르겠네.“


”아, 알았어요. 이제부터는 입 꼭 다물고 조용히 할게. 미안해. 허허허…….“

아내가 짜증스럽게 소리치는 바람에 성길 씨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아내가 보고 있는 드라마를 건성으로 따라서 보고 있었다. ( * )






※ 참고


① 세차게 때리다 ② 어림짐작 ③ 영락없다 ④ 옹고집 ⑤ 워킹반칙 ⑥ 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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