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네 집을 다녀온 할머니는 몹시 언짢은 기색이 뚜렸하였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보자 할아버지는 몹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멈, 무슨 일이라도 있었수? 그래 아들놈은 소문대로 잘 살기나 하고 있습디까?”
“…….”
할아버지가 궁금하고 답답하여 몇 번이고 물어 보았지만, 할머니는 계속해서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나 원 이렇게 답답한 일이 또 있나. 아니, 이 할망구야, 무슨 일인지 속 시원히 말이나 좀 해 보라니까.”
할아버지가 끈질기게 자꾸만 다그치는 바람에, 할머니는 그제야 너무나 분하다는 듯 어깨까지 들먹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아, 글쎄 그놈이…….“
"오올치 그래, 그 놈이 도대체 뭘 어떻게 했다는 게야?”
너무나 분하고 야속하다는 듯, 할머니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아, 글쎄 그놈이 나한테 돈을 내놓고 가라는구려.”
“아니 돈을 내놓으라니 뜬금 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아 글쎄 내가 그 놈네 집에 묵고 있는 동안 먹은 밥값이며 재워준 값, 그리고 심지어는 빨래해준 값까지 내고 가라고 나를 꼭 붙잡고 놓아 주질 않지 뭐예요.”
“아니, 뭐라구?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구, 그래, 어떻게 했소?”
할아버지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그래, 그 천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놈을 그냥 두고 왔단 말이야?”
“그럼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중에 값겠다고 하고 주민등록증만 맡겨 놓고 왔다우.”
"주민등록증이라니? 그건 또 왜?“
“그거라도 맡겨 놓았다가 돈이 생기면 그때 다시 와서 찾아가라고 눈을 부라리는데 낸들 별수가 있어야지요.”
할아버지는 정말 너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저런 저런, 죽일 놈을 봤나?”
약 10여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고약하기 짝이 없는 아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버리고 훌쩍 집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할아버지네 집은 늘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잘 자라기를 기대하며 그런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일을 할 만큼 크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일할 생각은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나쁜 버릇 때문이었습니다.
옛말에 아랫목에서 밥을 먹고, 윗목에서 똥을 싸는 게으름뱅이가 있다더니, 바로 이 할아버지네 아들이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결국, 큰 일이 나고 말겠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을 좀 해보라고 매일 달래도 보고 타일러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런 잔소리조차 몹시 귀찮게 여긴 나머지 결국은 집을 뛰쳐나가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다 하는 말 한마디 없이 아들이 훌쩍 집을 나가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시 자식 걱정 때문에 매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보,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동안 괜히 그 녀석한테 잔소리를 했나 봐요. 안 그러우?"
"그러게나 말이야. 그렇게 게을러빠진 녀석인데 어디서 굶어 죽지나 않았는지 워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일 이렇게 아들 걱정 때문에 세상을 살아나갈 재미조차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뜻밖에도 아주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자나 깨나 늘 걱정을 하던 아들이 서울에 가서 큰 부지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영감, 그 녀석이 글쎄 잘 살고 있다지 뭐예요. 그것도 아주 큰 부자가 되어서 떵떵거리면서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마치 춤이라도 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들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그 길로 부리나케 아들네 집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어이구, 네가 이렇게 살아 있었다니 이게 정말 꿈이냐, 생시냐!”
할머니는 너무나 반갑고 기쁜 마음에 아들을 얼싸안고 그만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은 아주 으리으리하면서도 굉장히 큰 호텔의 어엿한 주인이 되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틈에 결혼도 하여 제법 크게 자란 자식까지 둘이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이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재주가 좋아 재산이 많은 부잣집 딸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 전에 저한테 일을 안 한다고 늘 잔소리를 하고 구박만 하셨죠? 그러나 보세요. 일을 안 해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그렇게 저를 들볶으셨습니까?”
아들의 표정과 태도는 호텔 사장답게 매우 거만스럽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거만스러운 태도와는 달리 할머니를 정성껏 공경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정성은 매우 극진하였습니다.
특별히 깨끗한 방을 따로 주고 매일 끼니 때마다 값진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였습니다. 빨래도 수시로 말끔히 해 주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도 자주 대접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그래서 정말 생전 처음으로 아들을 잘 둔 덕분에 분에 넘치는 호강을 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열흘이나 묵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뜻밖의 난처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들이 요구하는 돈을 모두 갚으려면 그나마 손바닥만 한 땅뙈기를 모두 팔아 바쳐야 할 엄청난 거액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감, 세상천지에 십 년 만에 만난 에미한테 호텔비와 밥값을 따져시 내놓으라는 자식이 어디 또 있을까요?"
할머니는 너무나 분하고 야속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무슨 결심이라도 한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니, 갑자기 어딜 가시려고요?”
“못된 자식 같으니라구. 부모의 은공을 그렇게 모르는 놈은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아야 해요. 감히 열흘 동안 묵은 호탤비를 달라고? 흥, 천하에 못된 놈 같으니라구. 우리가 그 녀석을 이십오 년 동안이나 기르면서 든 밥값, 옷값, 재워 준 값, 그리고 길러 준 값을 제까짓 놈이 갚으려면 아마 그 호텔을 팔아도 모자랄 걸!”
“…….”
화가 잔뜩 난 할아버지는 그 길로 집을 떠나 부리나케 아들네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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