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무쇠라도 녹일 듯, 불볕이 뜨겁게 내리쏟는 어느 해 여름입니다.
시골의 들판에서는 크고 작은 논배미들이 옹기종기 모여 단비가 내리기를 벌써부터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중에도 다행히 들판 한쪽 구석에는 조그만 웅덩이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웅덩이에서는 사철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샘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샘물이 웅덩이 가득 찰찰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여름이지만 얼음처럼 차고 맑으며 시원한 샘물이었습니다.
“어휴 시원하다! 물맛 한번 기가 막히게 좋군, 가슴 속까지 온통 얼어붙는 것 같은걸.”
들판에서 일을 하던 농부들이 목이 마르면 으레 이 웅덩이로 찾아와서 정신없이 물을 마셔댑니다. 그리고는 누구나 한결같이 얼음장처럼 차디찬 물맛을 보고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날씨가 몹시 가물어 논바닥들이 온통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질 때에도 이곳 들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은 별로 걱정이 안 됩니다. 웬만한 가뭄에는 웅덩이의 샘물이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에게는 이 웅덩이가 몹시 고맙고 자랑스러운 보물처럼 여기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올 여름에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정이 아주 달라진 것입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달포가 넘도록 불볕이 무섭게 내리쬐자 웅덩이 속의 샘물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달이 지나자 마침내 샘물은 겨우 웅덩이 바닥에만 겨우 몇 모금 정도 고여 있었습니다.
“허, 이렇게 심한 가뭄은 보다보다 처음인걸."
“이대로 가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지."
“그러게 말이야.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우거지상이 된 농부들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저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의 거성은 조금도 아랑곳없다는 듯, 땡볕은 여전히 무섭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보다 몇 배나 더 안타깝고 비참하게 된 것은 이 웅덩이 속에서 살고 있던 물고기들이었습니다.
송사리, 붕어, 미꾸라지, 매기 등…….
샘물이 갑자기 마르기 시작하자 물고기들은 이제 살아갈 보금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논바닥에서 살던 물고기들은 물이 바짝 마르자 여기저기서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재빠르게 웅덩이 속으로 몸을 피한 물고기 몇 마리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가엾게 팔딱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웅덩이 속에 살아남은 물고기들도 죽을 날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웅덩이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바작바작 마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웅덩이 속에 남아 있는 물고기들의 건강은 보기만 해도 불쌍할 정도로 말이 아니었습니다. 물이 바작바작 마르는 바람에 몸과 몸이 서로 맞닿아 움직일 때마다 물고기들의 몸은 흙투성이로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숨을 가쁘게 할딱거리며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앗, 뜨거워. 하나님. 제발 비를 좀 내려 주셔주셔요. 헉헉…….”
마침내 붕어 한 마리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숨을 할딱이며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송사리도 몸을 뒤틀며 덩달아 입을 열었습니다.
“목이 말라 죽겠어요. 저에게 시원한 물을 한 모금이라도 좀 주세요.”
송사리의 목소리에 이어 지금까지 두 눈을 꼭 감은 채, 아무 말없이 엎드려 있던 메기도 정말 못견디겠다는 듯, 둔한 몸을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어이구, 숨이 차고 등이 익어가는 것 같아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는걸.”
물고기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가냘프고 애처롭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때 미꾸라지들 중에 한 마리도 끼어들었습니다. 미꾸라지의 목소리는 이렇게 다들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나마 제법 힘이 있고 자신이 있는 듯하였습니다.
“야! 이 바보 같은 친구들아, 그렇게 하늘만 쳐다보면서 한탄만 하면 어디서 물이 저절로 쏟아지니?”
미꾸라지의 얄밉도록 건방진 목소리를 들은 다른 물고기들은 그저 입만 벌리고 미꾸라지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제는 뭐라고 대꾸할 기운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미꾸라지는 여전히 얄밉고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야, 이 한심하고 멍청한 놈들아, 이렇게 물이 없을 때는 우리들처럼 땅바닥을 깊이 파고 그 속에 들어갈 줄 알란 말이야.”
말을 마친 미꾸라지들은 보란 듯이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꿈틀거리며 땅속 깊이 하나씩 둘씩 모두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물고기들은 땅을 팔 줄 아는 미꾸라지가 한엾이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물이 바짝 말랐가고 있을 때 땅속을 파고 들어가서 숨을 수 있는 재주를 가진 미꾸라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미꾸라지로 태어나지 못한 게 한스러워.”
송사리 한 마리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아, 작년 여름에도 고기를 잡으러 이 들판으로 왔던 아이들한테 다른 친구들은 모두 붙잡혀 갔지만 미꾸라지들은 별로 잡혀 가지 않았어."
붕어도 처량한한 목소리로 한마디 대꾸했습니다.
“그래, 미꾸라지들은 가늘고도 미끄러운 몸을 가졌기 때문에 그물이나 아이들의 손에 잡혔다가도 그때마다 미끄럽게 도망치면서 우리들을 보고 바보라고 흉을 보곤 하였지.”
메기도 게슴츠레한 눈을 껌벅이며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땡볕은 더욱 뜨겁게 내리쬐고 웅덩이의 물은 이제 조금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어디서 갑자기 삽과 양동이를 든 농부 한 사람이 웅덩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조금만 더 늦게 왔어도 모두 말라 죽을 뻔했구나!"
농부는 입이 헤 벌어진 채 웅덩이 바닥에서 죽어가며 나뒹굴고 있는 물고기들을 손으로 주워 양동이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양동이에 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허어, 이렇게 가뭄이 심해서야 어디 워언…….”
물고기들을 다 주워 담은 농부가 이번에는 삽으로 웅덩이 바닥을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해서 땅속을 파고 들어갔던 미꾸라지들이 무참히 삽에 찍힌 채 반 동강이 된 모습으로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오게 된 것은 바로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