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버림받은 명마

by 겨울나무

마치 무쇠라도 엿가락처럼 녹여버릴 듯한 불볕이 쏟아지던 며칠 전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내 잔등이에 수없이 많은 손님들을 번갈아 태우다가 쌓인 피로와 현기증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만 정신을 잃은 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쓰러지는 바람에 다리와 등뼈를 심하게 다친 나는 간신히 집에까지 죽을 힘을 다해 온 이후로 지금까지 마구간에 버려진 채 끙끙 앓고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 전처럼 일을 할 수 없을까요?”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더니 수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돌아온 주인아저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의사선생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아무 대꾸 없이 나의 몸뚱이를 이리저리 살피고 나더니 진찰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우선 이상한 기계를 손에 잡더니 눈꼽딱지가 더덕더덕 말라붙은 나의 눈을 까뒤집어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너무 아파서 아파서 고개를 흔들었지만 몇 번이고 그렇게 나의 눈을 까뒵집어보곤 하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청진기를 나의 등과 가슴에 번갈아가며 대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 말이 기운이 없어서 쓰러진 게 언제라고 하셨죠?"


”네, 그러니까 오늘까지 꼭 나흘째가 됩니다. 그동안 및 차례 좋다는 약을 사다가 모두 써 보았지만 이렇게 조금도 차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수의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고 나더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안타까운 말씀이 되겠습니다만, 말이 워낙 늙고 허약해져서 다시 건강을 되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말로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주인아저씨의 얼굴에는 금세 실망의 빛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뒤부터였습니다. 사람의 간사한 마음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돈 앞에서는 누구나 인정도 사정도 없이 눈이 먼다고 하더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주인아저씨의 구박이 날마다 더 심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인아저씨는 전처럼 정성껏 치료해 줄 생각은커녕, 비록 먹지는 못할망정 먹이도 제때에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하루 종일 밖으로만 쏘다니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나는 눈치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주인아저씨는 다시 젊고 건강한 말을 사기 위해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아니, 아침에 준 죽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그렇게 처먹기 싫거든 더 이상 속 좀 그만 썩이고 당장 뒈져버리란 말이야!“


어쩌다 밤늦게 들어와 구유를 들여다본 주인아저씨는 이제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그렇지 않아도 아픈 나의 궁둥이를 무자비하게 마구 걷어차곤 하였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나의 병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외롭고 슬프다는 생각만이 가슴속에 앙금처럼 깊숙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나를 아껴주던 주인아저씨였습니다. 마치 나를 자식보다 더 정성껏 키우고 보살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나에게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했던 주인아저씨였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주인아저씨가 내가 쓰러진 뒤부터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냉정하면서도 무자비한 사람으로 변하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고통과 슬픔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 옛날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젊은날의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몹시 그리워지곤 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늙고 병이 들어 버림을 받고 있는 불쌍한 꼴이 되고 말았지만, 옛날에는 그래도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던 유명한 기수들이 서로 다투어 탐을 내던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만큼 체격과 힘이 뛰어났으며, 하늘을 날을 듯 번개처럼 재빨랐던 게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약 10여 년간을 경마장에서 세월을 보낸 나는 어느 날 먼저 주인한테서 헌신짝처럼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나의 동작이 차츰 둔해져서 경마장에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나를 헐값으로 사서 데리고 온 것이 바로 지금의 주인아저씨였습니다.


'잘 뛰지도 못하는 나를 데려다 어떻게 하려는 걸까?‘


처음에 팔려올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느닷없이 나의 고삐를 잡더니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어느 유원지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 여기사 좋겠군!“

주인아저씨는 어느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온 커다란 광고글을 사람들이 잘 보이는 나무 기둥에 매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경주마>


아저씨가 이번에는 나의 귀에 입을 대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뭐라고 속삭이듯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저씨의 표정은 매우 만족한 듯 흐뭇한 표정이 가득하였습니다.


“힘이 좀 들긴 하겠지만 꾹 참고 견디어 주렴. 그렇게만 해준다면 돈이 저절로 쏟아지게 된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나는 주인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만 껌벅거리며 주인아저씨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히야! 그 말 한번 잘 생겼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경주마란 말이죠? 한번 타보는데 얼마죠?“

사람들은 저마다 신기한 표정으로 나의 잔등을 번갈아가며 올라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마다 주인아저씨한테 돈을 치렀습니다.


그렇게 주인아저씨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종일 편안히 앉아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돈은 주체를 못할 정도로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그제서야 주인아저씨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아저씨의 머리가 매우 영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 잔등에 탈 때마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또 너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서 내 잔등 위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힘이 들어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이를 악물면서 주인을 위해 꾹 참고 또 참으며 견뎌냈습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나 사시사철 오직 주인아저씨를 위해 고생한 덕분에 주인아저씨는 정말 많은 돈을 손아귀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며칠 전에는 마침내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불볕에 지쳐 나동그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옛날 나라 안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마가 하루아침에 이런 꼴이 되다니……. 주인 아저씨의 말대로 당장 죽어버리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할지도 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고통을 참고 있는 나의 눈에는 어느 새 진한 슬픔이 눈물과 함께 진한 응어리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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