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박 이야기

by 겨울나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시골의 산기슭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마치 큰 버섯처럼 아담하게 생긴 오막살이 초가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이 집 바깥마당 처마 밑에는 언제 어떻게 싹이 텄는지 연두 색깔의 예쁘고도 귀엽게 생긴 두 그루의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그중 한 그루는 박 덩굴이었고, 다른 한 그루는 조롱박 덩굴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어머, 귀엽기도 해라! 요렇게 이쁜 녀석들이 어느새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자랐지?”

이 집에 사는 소녀가 마당에 나왔다가 우연히 두 그루의 새싹을 발견하고는 귀여워 못 배기겠다는 듯 한바탕 기쁨을 참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소녀는 작은 손으로 박과 조롱박의 잎을 사랑스럽다는 듯 조심스럽게 빈갈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너희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야 한다, 알았지?“


소녀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두 그루의 새싹이 잘 자라 주기를 마음속드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소녀는 그날부터 일 한 가지가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박과 조롱박에 정성껏 물을 주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러날이 흘렀습니다.


소녀가 바라던 내로 두 그루의 새싹은 소녀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제법 튼튼하게 자라더니 덩굴을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녀의 키만큼 자랐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소녀의 아빠가 세워 준 막대기와 새끼줄을 따라 마침내 지붕 위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소녀의 알뜰한 사랑을 받아가며 이만큼 크게 자란 박과 조롱박 덩굴은 이만저만 행복한 게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지금까지 낮은 곳에서만 답답하게 지내다가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온 둘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붕 밑으로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갑자기 우습게 여겨지고 자기들만이 제일인 것처럼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마냥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얘, 조롱박아! 내 몸에 달린 이 꽃들 좀 봐! 네가 보기에 어떠니? 너무너무 예쁘지 않니?”

박 덩굴이 갑자기 기쁨에 넘친 활짝 핀 표정이 되어 조롱박 덩굴을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이머, 말 예쁘다!"


박 덩굴이 소리치는 바람에 늦잠이 깬 조롱박 덩굴은 얼떨결에 이렇게 대꾸하며 박 덩굴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싱싱하고 건강하게 벋어나가고 있는 박 덩굴 여기저기에는 마치 새하얀 목화송이처럼 예쁘고 귀엽게 생긴 꽃송이들이 싱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롱박 덩굴은 그런 박 덩굴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날한시에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서 태어나서 박 덩굴만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샘이 나고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박 덩굴이 다시 조롱박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얘, 조롱박아! 너도 어느새 나와 똑같이 생긴 꽃을 피우고 있었구나!“


박 덩굴이 호들갑스럽게 소리치는 바람에 조롱박 덩굴은 그제야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꿈같은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두 눈이 둥그렇게 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어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틈에 내 몸에도 이렇게 귀엽고 예쁜 꽃들이 피었지?“


조롱박 덩굴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입이 크게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박 덩굴의 말대로 조롱박 덩굴에도 눈송이처럼 귀엽고 예쁘게 생긴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시 너와 나는 멋진 친구가 틀림없어. 그치?"


박 덩굴이 먼저 기쁜 목소리로 조롱박을 향해 말했습니다.


“아암, 그렇고말고. 너와 나는 생김새나 모습이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걸.”


조롱박 덩굴도 흐뭇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치며 손뼉을 쳤습니다.


“우리 이 우정 영원히 변치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아암, 그 우정 배신하면 역적이지. 끝까지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말고.”


조롱박과 박 덩굴은 그렇게 사이좋게 얽혀 가면서 오랫동안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조롱박 덩굴은 다시 한 가시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박 덩굴은 이미 마치 물동이만큼이나 크고 보름달처럼 큰 박이 여기저기 보기 좋게 커가고 있었지만 조롱박은 박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박이 모르게 박이 커지게 하기 위해 아무리 은근히 애를 써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허리가 잘록하면서도 볼품없게 생긴 열매들뿐 더이상 커지지를 않았습니다.


조롱박 덩굴은 자신도 박 덩굴처럼 큰 열매를 맺고 싶었습니다. 이니, 박보다도 더 큰 지구만큼 크고 둥그런 열매를 맺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조롱박 덩굴의 희망은 서서히 힘이 빠지면서 그 대신 실망만 크게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무서리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박 덩굴의 입에서는 마침내 뜻밖에도 서릿발처럼 싸늘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습니다. 우정을 변치 말자고 약속을 했던 박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미처 생각조차 못햇던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넌 아마 나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었나 봐. 아무 쓸모도 없는 무슨 열매가 그렇게도 작고 보기 싫게 생겼니?"

”……!?”


박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을 들은 조롱박은 그만 너무나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박의 입에서 나온 그 목소리,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조롱박 덩굴과 친구로 지니온 것이 억울하고 한심했다는 후회와 비웃음이 분명하였습니다.


조롱박 덩굴은 몹시 분하고 억울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참고 있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의 일이었습니다.


“엄마! 벌써 저렇게 서리가 하얗게 내렸으니 우리도 이제 박을 따야지?”


앞마당에 나와 양치질을 하고 있던 소녀가 지붕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소녀의 손에는 입을 헹구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일론 바가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엄마! 그런데 올해는 조롱박이 유난히도 많이 열렸어. 저 조롱박은 서울에 사는 언니가 오면 선물로 주면 좋아하겠지만 저까짓 박은 뭘 하지? 이렇게 단단한 플라스틱 바가지가 얼마든지 많은데 말이야.”

”……!?”


소녀의 뜬금없는 이야기 소리를 들은 조롱박 덩굴은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뜻인지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틈에 동산 위로 둥실 떠오른 해님이 소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조롱박 덩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