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국민들의 생활 형편이 점점 윤택해지면서 도시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가구나 생활용품 등을 함부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멀쩡해서 쓸만한 물건들이지만 마구 버렸습니다. 그렇게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덕이 된 것처럼 조금만 유행이 지난 물건들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마구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쓰레기장에 쌓여가는 쓰레기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산더미처럼 어머어마하게 불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 한쪽 구석에는 아주 귀엽고 앙징맞게 생긴 검정색 구두 한 짝도 처박혀 있었습니다.
”흐흐흑,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으면 난 애시당초부터 구두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거야, 흐흐흑…….“
버려진 모든 물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쓰레기장에 버려진 멀쩡한 물건들 중의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슬픔 속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쓰레기장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물건들 중에서도 가장 슬픔에 잠긴 채 매일 흐느끼게 된 것은 아주 예쁘고 앙증맞게 생긴 여학생용 구두 한 짝이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그 검정 구두는 굉장히 잘 사는 부잣집 현관 신발장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이 고급스러운 부잣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 쓰레기 버리는 날이 언제지? 전에 아빠가 사준 구두 말이야. 그 구두 신발장만 차자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버리는 게 좋겠어.”
미나가 갑자기 생각인 난 듯 엄마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미나는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입니다. 마음씨도 곱고 얼굴도 퍽 예쁘고 귀엽게 생긴 이 집 외동딸입니다.
신발장에서 지금 한창 낮잠을 즐기고 있던 구두는 미나의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아니, 뭐라고? 나를 팔아 버리겠다고?“
검정 구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소린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미나의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 구두가 얼마나 비싼 구두인데 왜 벌써 버리겠다고 이 야단이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더 신고 다니란 말이야. 더구나 그건 아빠가 특별히 선물로 사다준 비싼 구두인데 버리긴 왜 버리니?”
엄마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못마땅해진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자 미나도 답답하다는 듯 툴툴거리며 지지 않고 다시 소리쳤습니다.
"차이, 엄마는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래. 지금 그 구두보다 멋진 운동화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데, 요즈음 누가 그런 촌스럽고 멋대가리 없는 구두를 신고 다니고 있는지 잘 보란 말이야.“
"허이구, 얘 말하는 것좀 보게. 네 말대로 유행도 좋지만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우선 물건 귀한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군소리 하지 말고 신고 다녀.”
"그럼, 그 구식 구두를 나중에 또 신고 다니라고?“
“아암, 더 신고 다녀야 하고말고. 너 그 구두 신고 다녀본 게 열흘도 채 되지 않았지 않니?”
"싫어요. 열흘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난 창피해서 더 이상 안 신을 거야.“
"싫다니? 그럼 그렇게 멀쩡한 구두를 갖다 버린단 말이야?”
미나와 엄마가 한참 시끄럽게 주고받는 이야기를 숨을 죽이며 듣고 있던 구두는 갑자기 자기 자신이 처량하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미나가 자신을 그렇게 쉽게 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검정 고급 구두가 미나의 집으로 오게 된 것은 약 1년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빠가 미나의 생일 선물로 특별히 비싼 값을 주고 맞춰 준 고급 구두였습니다.
생일 선물로 구두를 받게 된 미나는 처음에는 너무 마음에 든다며 펄쩍 뛰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은근히 자랑까지 하며 구두가 다 닳아빠질 때까지 신고 다닐 것처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난데없이 갖가지 고급스러운 운동화들이 시중에 쏟아져 나오면서 데모라도 하듯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신고 다니던 구두를 아무 미련 없이 훌훌 벗어던지고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마음에 맞는 운동화를 사서 신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건 미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두보다 더 비싼 운동화가 유행을 하면서 구두는 그날부터 신발장에서 잠을 자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검정색 구두는 여태까지 어떻게 된 영문을 까맣게 모른 채 지금까지 신발장에서 지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미나가 구두를 아껴 신기 위해, 그리고 오래오래 신기 위해 신발장에 소중히 간직해 두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는 마침내 미나네 쓰레기통에 비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다시 더러운 쓰레기들이 잔뜩 쌓인 쓰레기차에 실려 이 어마어마하게 큰 쓰레기 매립장에 비려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흐흑, 하루 아침에 내 신세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다니, 으흐흑…….“
구두는 생각할수록 미나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이렇게 모든 것이 흔해진 세상이 더욱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검정 구두가 고약한 냄새를 참아가면서 한참 훌쩍이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니, 넌 누군데 매일 그렇게 시끄럽게 찔찔 짜고 있니?”
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것은 냉장고였습니다. 냉장고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습니다. 그러자 구두는 마치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냉장고를 향해 톡 쏘아붙였습니다.
“눈이 있으면 보란 말이에요. 이렇게 멀쩡한 새 구두가 신지도 않고 쓰레기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 억울하지 않고요? 그리고 더구나 난 이 쓰레기장으로 올 때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짝하고도 헤어지고 지금은 혼자 외톨이가 되었단 말예요.“
그러자 냉장고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다시 나무라듯 입을 열었습니다.
“야, 그까짓 걸 가지고 뭘 그러니? 나에 비하면 넌 값이나 적게 나가지. 난 어느 집에서 구입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장이 났거든. 그런데 나를 수리하는 값이 많이 든다고 조금만 수리하면 될 텐데도 수리하기가 귀찮다고 이렇게 버림을 받았단 말이야.”
“…….“
냉장고의 자초지종을 듣게 된 구두는 그만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쓰레기장 여기저기에서는 너도나도 원망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참 간사하단 말이야. 나는 소리가 좀 요란하다고 이렇게 멀쩡한데도 버림을 받았는걸.”
이렇게 투덜대고 있는 것은 청소기와 믹서기, 그리고 드라이기 같은 물건들이었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참 까다롭기도 하고 인정머리도 없단 말이야. 처음엔 마음에 들어서 좋다고 천 년 만 년 같이 살 것처럼 하다가도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정사정없이 내다 버리곤 하거든.”
“맞아. 나도 처음엔 너무 예쁘다고 언제까지나 같이 살 것처럼 하더니 어느 날은 갑자기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나 뭐라나 하면서 하루 아침에 마음이 싹 변해서 이렇게 버림을 받았는걸.”
쓰레기장에 버려진 물건들의 불편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손목시계, 벽시계, 텔레비전, 선풍기, 꽃병, 화분 등, 그들의 불평과 울음 소리는 하루 종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
"그만! 그만! 이 모두가 사람들이 너무 잘살게 되어서 그런 거란 말이야!”
검정색 구두는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조차 싫다는 듯 이렇게 소리 지르고는 두 귀를 꼭 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