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 골목, 그곳에는 첫눈에 보기에도 몹시 허름하고 보잘것없고 초라해 보이는 작은 병원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은 원장 한 사람, 그리고 간호사 한 명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일이 딸리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의 발걸음이 그만큼 뜸했기 때문에 오히려 두 사람 모두가 너무 한가롭고 심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병원 문은 절대로 닫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버티어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저 병원은 늘 저렇게 한가하니 저 병원 원장은 도대체 어떻게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는지 용하단 말이야.”
“집세만 해도 상당할 텐데 보나 마나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을걸!”
병원이 돌아가고 있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병원을 바라볼 띠마다 혀를 차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원 원장은 어떻게 하면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늘 밤낮으로 의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원장은 아침부터 온종일 원장실 책상 앞에 앉아 두툼한 의학 서적을 뒤적거리며 공부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간호사를 불렀습니다.
“김 간호사! 지금까지 몇 달 치가 밀렸지?”
느닷없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간호사는 그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원장을 바라보며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하였습니다.
“원장님, 뭐가 밀렸다는 말씀이신지……?”
”내 말은 김 간호사한테 줘야 할 월급이 그동안 얼마나 밀렸느냐 이 말이야.”
원장의 설명을 듣고 난 간호사는 그제야 우물쭈물하다가 간신히 대답했습니다.
“아마, 석 달쯤 될 것 같습니다.”
“아, 알았어요. 지금까지 견디어 주어서 고마워요. 힘이 든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어요. 나한테 좋은 계획이 있으니까 아마 앞으로는 잘 될 거 같아요. 그러니 기왕 참았던 김에 조금만 더 참아 주면 고맙겠어요.”
의사는 무슨 알인지 이렇게 설명하고는 여전히 답답하다는 듯 초조한 기색이 되어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만 연거푸 빨아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인기가 없는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훌륭한 의사가 될 자격이 없는 모양이야!‘
의사는 그동안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및 번씩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눈만 뜨고나면 더욱 그런 생각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마음이 그렇게 약해질 때마다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며 병원 일을 계속할 것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그의 아내였습니다.
"여보, 지금까지 힘들게 잘 참아왔는데 힘은 좀 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보세요. 당신은 의사로서 반드시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저는 꼭 믿고 있어요.”
"여보, 고마워. 그러나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 아니야? 여기서 어떻게 더 참으라는 말이요? 이대로 나가다가는 성공은커녕 얼마 안 가서 빚더미가 되어 길거리로 나가서 주저앉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니겠소?“
원장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불안하고 답답해서 금방이라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 듯이 안절부절을 못하곤 하였습니다.
사실 원장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가 되어 보겠다는 큰 꿈을 간직하고 오랜 세월을 보내며 병원을 차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와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두 시간을 잘 때 한 시간을 자면서 오직 의학 공부에만 몰두했던 그였습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이나 입고 싶은 것도 되도록이면 줄여 가면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지금까지 젊음을 불태웠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어려운 의사로서의 꿈이 이루어진 지금, 의사의 가슴속은 말할 수 없이 불안하고 허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토록 자신의 실력을 몰라 주는 세상 사람들이 한없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진즉에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그 많은 돈을 투자해가면서 그 어려운 의학 공부에 매달렸던 과거를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의 세월을 어렵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아하! 내가 왜 그 방법을 여태까지 몰랐었지! 방법은 바로 그거야. 그거란 말이야!“
원장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밤이 이슥하도록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썼다가는 지우고, 또 썼다가는 고치는 일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원장의 책상 밑에는 몇 번이고 쓰다가는 찢고, 또 쓰다가 찢어버린 종잇장들이 어지럽게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좀처럼 책상 앞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여전히 무언가를 쓰고 또 쓰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니 얼른 주무시지 않고 밤늦게까지 무슨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계세요?”
남편 걱정에 당달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아내가 찻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오며 물었습니다.
“자, 잠깐만 조용히 해요. 조금만 더하면 일이 완성될 것 같아요.”
원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렇게 대꾸하며 여전히 하던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그러자 원장이 쓰고 있는 원고를 슬금슬금 살펴보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이건 우리 병원 광고문 아니에요? 당신도 신문이나 방송에 병원 광고를 내시려고요?”
그러자 원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힘이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난들 어쩌겠소. 이렇게 해서라도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매스컴 등에 우리 병원 소개를 대대적으로 해볼 생각이오. 그래야 우리도 밥을 좀 먹고 살 수 있을 게 아니요?“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실망의 빛이 가득한 표정이 되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광고와 선전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당신까지……?”
아내는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나의 진실을 알아주기 전에 나 자신이 나를 먼저 지나치게 광고를 해야만 통하는 이 세상이 새삼 추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값진 것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진실이란 걸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아암, 알고말고. 하지만 어쩌겠소. 다른 병원들도 다 이렇게 해서 환자들을 끌어들이면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니요?”
“하지만, 진실이란 나 자신이 먼저 나서서 내 입으로 알리는 것보다 남들이 저절로 그 진실을 알아냈을 때 더욱 값지다는 것을 왜 모르세요? ”
“아암, 그건 나도 알고 있다니까.”
“난 당신이 처음부터 훌륭한 의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당신의 진실을 굳게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비록 가난하고 어려운 살림살이긴 하지만 꾹 참으며 견디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게 될 것을 믿으면서 여태까지 그날을 기다리며 참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 스스로 광고를 하겠다는 걸 보고는 정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으흐흑…….”
아내는 이렇게 말하고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게 된 원장의 표정은 금세 실망과 후회의 빛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여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그동안 너무 어리석고 비겁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소. 이런 비겁한 모습을 당신한테까지 보여주게 되어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소.”
원장은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열심히 작성하고 있던 광고문들을 두 손으로 움켜쥐더니 북북 찢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의 어깨를 두 손으로 덥석 껴안았습니다.
“아아, 내 마음을 이렇게 쉽게 이해해 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당신은 지금도 아주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에요.”
아내도 오랜만에 남편의 품에 안기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떳떳한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두 사람만의 아주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