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산토끼와 집토끼

by 겨울나무

하루 종일 소리 없이 눈이 평펑 내리고 있습니다.


아기의 주먹만큼이나 크고 탐스러운 함박눈입니다. 눈은 그렇게 벌써 며칠째 내리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유, 지겨워 죽겠네. 웬 놈의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린담.”


벌써 여러 날을 굴속에만 꼼짝없이 갇혀 있던 산토끼는 벌써부터 짜증이 나고 안달이 나서 못 배길 일이었습니다.


이제 산토끼가 살고 있는 이 깊은 산골짜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어디가 골짜기이고 어디가 산등성이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눈으로 덮여버린 것입니다.


산토끼는 날이 갈수록 정말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지난 가을에 그토록 열심히 모아 둔 알밤이랑 상수리들이 이제 거의 바닥이 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며칠만 더 가다가는 굶어죽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에이,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릴 줄 알았으면 양식이나 더 많이 모아 둘걸!”


산토끼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눈이 내리고 있는 잿빛 하늘만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눈은 여전히 쉬지 않고 자꾸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답답하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산토끼는 마침내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그동안 갇혀 지내던 굴속을 빠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언젠가 먼 발치에서 바라본 적이 있는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굴속에만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굶어 죽기 딱 안성맞춤이란 말이야.”

산토끼는 이렇게 중일거리면서 비탈길을 계속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나 눈이 많이 쌓였는지 걸음을 옯겨놓을 때마다 온몸이 눈 속에 푹푹 빠지는 바람에 쉽게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휴우, 이제야 마을이로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참을 고생한 끝에 산토끼는 마침내 마을에 도작하게 되었습니다.


”컹! 커엉, 컹컹!.“


가끔 멀리서 개 짖는 소리기 산토끼의 간을 바짝 오므라들게 하였습니다. 개짖는 소리가 나자 여기저기서 덩달아 따라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잠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산토끼는 마침내 어느 집 담 밑에 뚫린 수재 구멍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면서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삭, 아삭, 아삭……!“


수재 구멍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온 산토끼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산토끼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다가 토끼장 안에 있는 집토끼를 발견한 산토끼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아! 난 또 무슨 소린가 하고 겁을 잔뜩 먹었지 뭐야.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다.”


토끼장 안에 있는 집토끼를 발견한 산토끼는 반가움에 먼저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조금 전에 아삭거리던 그 소리는 집토끼가 맛있는 풀들을 한창 마음껏 먹고 있던 소리였습니다.


“어이쿠, 깜짝이야! 넌 산토끼 아니니? 그런데 이 밤중에 웬일이니?”


갑자기 나타난 산토끼를 본 집토끼도 깜짝 놀란 얼굴로 산토끼에게 물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산속에서는 양식을 구할 수가 없지 뭐니. 그래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내려온 거란다.“

배가 고프고 지친 산토끼는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집토끼가 몹시 부럽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넌 정말 좋겠다. 눈이나 비가 의도 양식 걱정이 없을 테니 말이야.“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산토끼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토끼장 안에는 먹음직한 칡덩굴이랑 싱싱한 고구마와 감자들이 그득하게 쌓여있었습니다. 산토끼의 이야기를 들은 집토끼는 산토끼가 몹시 가엾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 그랬었구나, 이 토끼장 안에 있는 음식들뿐만이 아니란다. 토끼장 바로 옆 바구니 속에도 먹을 것들이 얼마든지 많이 쌓여 있단다. 배가 고플 테니 우선 네 마음대로 골라서 실컷 먹으렴.”

집토끼의 말대로 큰 바구니 안에는 맛있는 풀들이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집토끼에게 먹이기 위해 이 집 주인이 여름과 가으내 미리 장만해 두었던 풀들이었습니다.


여러 날을 굶주린 산토끼는 염치 불구하고 오랜만에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맛있는 먹이들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배가 불룩 나오도록 실컷 먹은 산토끼가 집토끼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아주 잘 먹을 수 있었어. 그런데 난 생각할수록 네가 부러워서 못 견디겠어.”

“내가 부럽다니? 뭐가?”


"넌 가만히 이렇게 앉아 있기만 해도 먹을 것을 얼마든지 구해다 주는 주인이 있지 않니? 그리고 추위나 더위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고…….“


집토끼가 몹시 부러워진 산토끼는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건 네가 아직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뭐니뭐니 해도 우리 짐승들에게는 역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산이나 들이 가장 최고란 말이야. 물론 이런 저런 고생은 좀 많겠지만 난 오히려 그런 데서 살고 있는 너희들이 몹시 부러운걸.”

“……?“


그날 밤, 산토끼와 집토끼는 밤이 깊어가도록 서로 우기고 있었습니다.


산토끼는 아무 걱정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집토끼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우기고 있었습니다. 집토끼는 산과 들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는 산토끼가 오히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끝까지 우겨대고 있었습니다.


"아니야! 난 네가 부러운걸!"

"글세, 모르는 소리 그만 좀 하라니까. 네가 고생을 몰라 그런 소릴 하는 거라니까.”


산토끼와 집토끼의 입씨름은 밤이 깊었는데도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글쎄요. 과연 누가 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산토끼와 집토끼의 말대로 지금 바로 환경을 바꾸게 된다면 정말 행복하고 만족하게 될까요?


산토끼와 집토끼의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입씨름은 조금도 아랑곳없다는 듯

함박눈은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르고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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