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성황당 이야기

by 겨울나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성황당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언덕배기에 자리를 잡고 거만스럽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집채만큼이나 수북하게 쌓인 크고 작은 돌멩이 위에는 늙은 벚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그 벚나무 가지마다엔 색깔이 바랜 가지각색의 헝겊들이 매달린 채,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거리며 왠지 음산하고 흉측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두움이 안개처럼 밀려오면서 오늘도 언덕배기에는 또다시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는 듯 오늘도 어김없이 먼 산에서는 소쩍새와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저녁 이슬을 듬뿍 머금은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풀벌레들의 노래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달콤한 잠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헛허음, 어이구 피곤해라. 오늘 밤에도 광철이 엄마가 어김없이 또 나를 찾아오겠지?


그나저나 이번에는 꼭 광철이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그거 참 허허음…….“


밤이 제법 깊어지자 성황당 벚나무는 온몸을 늘어지게 뒤틀면서 마음껏 기지개를 겹니다. 그리고는 제법 거만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문득 광칠이 엄마의 생각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광철이 엄마는 벌써 두 달이 훨씬 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 열두 시만 되면 이곳 성황당을 찾아오는 단골손님입니다. 그리고 이곳 성황당을 찾아올 때마다 벚나무 바로 밑에 촛불을 밝혀 놓고 으레 큰 절을 세 번이나 정성껏 올립니다. 그리고는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주문을 외우곤 합니다.

“그저, 비나이다, 비나이다. 서낭님께 비나이다. 전지전능하신 서낭님께 비오나니, 죄도 많고 한도 많은 이 한 여인 굽어살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들 하나 소원이니, 삼신 님께 부탁하여 점지하여 주옵소서. 그저 비나이다. 서낭님께 비나이다…….“


광철이 엄마의 주문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광철이 엄마의 뺨엔 어느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광철이 엄마는 이제 이 세상일이 막바지에 다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겁을 많이 타던 광철이 엄마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는 한밤중에도 혼자 성황당에 오를 수 있는 무서운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광철이는 이제 겨우 세 살 된 여섯 째 딸의 이름입니다.


아주 오래전, 광철이 엄마는 지금의 남편인 삼대독자의 가정으로 출가해 왔습니다. 그리고 계속 딸만 세 명 낳게 되자 주위 사람들은 딸의 이름을 사내 이름으로 지어 보라고 성화였습니다. 그래야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애가 타서 야단들이었습니다.

정말 속이 바작바작 타는 건 광철이 엄마인데 주위 사람들이 광철이 엄마보다 더 안절부절을 못하며 극성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셋째딸부터는 낳는 대로 줄줄이 사내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그리고 여섯 번째도 모두 딸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아들 하나를 낳기 위한 광철이 엄마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칫하면 이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애가 탈 대로 탄 광철이 엄마는 지금까지 오직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일이라면 물과 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광철이 엄마에게 삼신할머니는 너무나 무정하고 가혹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가 탈대로 탄 광철이 엄마는 너무나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또다시 아주 용하다고 이름이 난 점쟁이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다닌 것도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허어, 이거 삼신할머니가 크게 노하셨구먼!“

“아니, 삼신할머니께서 노하시니뇨?"


"자네 정성이 부족했어, 정성이!“

“아니, 그만 빌었는데도 정성이 부족했다면 그럼 더이상 어떻게……?”


“듣기 싫다! 여기가 감히 어느 앞인 줄 알고 겁도 없이 함부로 그런 토를 달고 있는 게냐?”

"예예, 알겠습니다. 그저 시기는 대로 할 테니 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이 죄많은 여인의 마지막 소원이니 부디 아들만 하니 낳게 해 주십시오.”


"걱정할 것 없어. 오늘 밤부터 밤마다 정확히 열두 시가 되면 성황당에 올라가 정성껏 백일기도를 지성껏 드리면 이번엔 틀림이 없을 거야.“

"네에? 그게 정말일까요?“


“무임하도다. 여기가 감히 어느 앞인데 그런 방정맞은 입을 놀리고 있느냐!”

“예예, 그저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그 뒤부터 광철이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밤 열두 시만 되면 어김없이 성황당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면서 어느 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극성맞게 울어대던 산짐승들의 울음소리도 이제는 목이 쉬고 지쳤는지 조금 전보다 점점 약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휴우우-- 이번만큼은 꼭 아들을 낳아야 할 텐데…….”


성황당 벚나무는 아직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광철이 엄마 걱정으로 함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올라와서 열심히 빌고 있는 광철이 엄마의 노력과 지성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불쌍하고 애석하게까지 느껴지는 성황당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철이 엄마의 소원만큼은 꼭 이루게 해 주고 싶은 성황당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성황당을 찾아와 빌곤 하였습니다.


부자가 되어 잘 살고 싶은 시람, 병을 낫게 해 달라는 사림, 시험에 꼭 합격하게 해 달라는 사람, 이기를 낳게 해달라는 사람 등등……, 성황당을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소원을 열심히 빌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성황당을 찾아올 때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먹음직스런 떡시루를 통채로 갖다 놓고, 비는가 하면, 돼지나 소의 머리를 갖다 놓고 빌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먹고살기가 어려운 세상이라해도 성황당은 언제나 음식과 돈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풍족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성황당은 그렇게 흐뭇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황당이 된 것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황당을 찾아와서 빌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사실 성황당은 자신이 생각해도 사람들이 빌고 있는 일을 해결해 줄 아무 능력이나 힘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마다 정말 신비스러운 힘이라도 있는 줄 알고 빌곤 하는 것이 어리석고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황당에 찾아와서 열심히 빌었던 사람들 중에는 정말 자기의 소원을 이룬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성황님이 영검을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성황당을 더욱 신주 위하듯 떠받들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그 책임을 돌리곤 하였습니다.


성황당은 그런 이야기들을 소문을 통해 들었을 때마다 혼자 쓴웃음을 짓곤 합니다. 미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용하고 신비로운 힘이 전혀 없다는 것을 성황당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바보 같은 동물은 역시 사람들이란 말이야. 그토록 땀을 흘려가며 마련해 놓은 음식이나 돈을 조금도 아까운 줄 모르고 나한테 바치고 빌면 뭐가 어떻게 된다고 그따위 쓸데없는 짓들을 하고 있는지, 워언…….”


성황당이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또다시 문득 광철이 엄마의 생각을 떠올립니다. 생각 같아서는 밤마다 굳이 애쓰고 찾아와 봐야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고 귀띔을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황당의 마음은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과 재주가 없는 성황당이긴 하지만 광철이 엄마만은 꼭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성황당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멀리에서 고무신을 끌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성황당은 이제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곧 광철이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성황당에 다다른 광철이 엄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촛불을 밝혀 놓고 큰 절을 올린 다음 공손히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서낭님께 비나이다. 이 이 죄많은 여인한테 죄가 있다면 두루두루 용서하시고, 그저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아들 하나만을 점지해 주시옵소서!”


촛불빛에 선명하게 드러난 광철이 엄마의 안색은 그 어느 날보다도 해쓱하게 야위어 보였습니다. 광철이 엄마의 뺨에는 어느새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저런, 쯧쯧쯧……. 불쌍하고 가엾기도 해라. 그래 삼신할머니인지 뭐시깽인지는 어쩌자고 저렇게 착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고 모르는 체하고 있담!”


광철이 엄마의 불쌍한 모습을 본 성황당은 덩달아 속이 타고 안타까웠지만, 어쩌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몇 달이 훌쩍 흘러갔습니다. 이제 광철이 엄마의 백 일 기도를 모두 마친 지도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성황당은 무엇보다도 발길이 끊어진 광철이 엄마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뿐, 사뿐…….”


저 발자국 소리! 그것은 오랫동안 발길이 끊어졌던 광철이 엄마가 고무신을 신고 걸어오는 발자국소리였습니다. 성황당은 몹시 반가웠습니다.


광철이 엄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광철이 엄마의 품에는 고추를 달고 있는 예쁘고, 건강한 사내 아기가 안겨 있었습니다.


광철이 엄마는 성황당 앞에 아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전처럼 큰절을 한도 끝도 없이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아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전지저능하신 서낭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황당은 그런 광철이 엄마를 보자 염치가 없고 민망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기쁨과 흐뭇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저런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구,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저렇게 고맙다고 하는 것인지 워언…….”


그러나 광철이 엄마는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오랫동안 빌고 또 빌고 있었습니다.


성황당은 더 이상 몸 둘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능력도 없는 자신을 끝까지 믿고 떠받들며 빌어 주고 있는 사람들이 싫지는 않있습니다.


아마 성황당은 그런 맛에 지금까지도 산골 마을에 거만스럽게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