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에는 몹시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느티나무 기둥은 어찌나 굵고 우람하게 큰지 처음 보는 사람마다 입이 딱 벌어지고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로 컸습니다.
느티나무는 제 나이조차 잊어버릴 만큼, 아득하고 긴 세월을 늘 그 자리에 서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능력과 힘이 자라는 데까지 사람들은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느티나무의 건강은 아주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불과 몇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나이답지 않게 그처럼 활기가 넘치고 튼튼해 보이던 느티나무의 건강은 이제 어느 한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쇠약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팔다리야. 어이구, 허리야. 이렇게 숨이 차고 온몸이 자꾸만 쑤시고 힘이 딸리는 걸 보니 나도 이제는 볼 장 다 모양이군! 쿨럭, 쿨럭…….”
느티나무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숨이 턱에 닿게 헐떡거리며 팔다리를 연신 주무르기에 바쁩니다.
“누구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모양이야.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죽기가 싫은 걸 보면 말이야. 어서 병이 나아 하루라도 더 살아야 전처럼 많은 사람들과 짐승을 도와주어야 보람이 있을 텐데 말이야, 쿨럭, 쿨럭…….”
느티나무는 이렇게 혼자 중일거리면서도 문득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지나간 날의 추억들을 눈앞에 그려봅니다. 아니, 지난 날이 모두 즐거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바로 지난 여름에 겪었던 일은 지우개로도 지울 수 있는 끔찍하고도 무서운 추억이었습니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여름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그 날도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먹기가 무섭게 부채를 하나씩 들고 이 느티나무 그늘 밑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위를 달래며 시원한 그늘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히야, 그늘 한 번 참 시원하다!”
“그러게 말이야. 이 느티나무가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더위가 삽시간에 싹 가시는 것 같군, 그려.”
"누가 아니라나. 이렇게 더위를 식혀주는 이 느티나무의 고마움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아암, 그렇고말고. 나도 마찬가지라니까. 나도 죽어도 이 느티나무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고말고.”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모이기만 하면 무더운 여름마다 느티나무가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해 항상 고마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느티나무 밑에서 시원한 그늘을 즐기는 사람들의 광경은 정말 볼만 했습니다. 구경거리가 따로 없었습니다.
배꼽을 드러내 놓은 채 드르렁드르렁 큰 소리로 코를 골며 낮잠을 즐기는 사람, 바둑을 두거나 장기를 두는 사람, 소줏병을 갖다 놓고 마냥 술을 마시며 얼큰하게 취한 김에 제멋대로 게걸대며 지껄이다가 목청껏 노래를 불러대는 사람 등등, 그야말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바로 그런 광경이었습니다.
“후후훗, 잘들 노는구나 잘들 논다니까. 아암, 그래야 하고말고!”
느티나무는 그늘 밑에서 제멋대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는 혼자 킬킬거리고 웃으며 흐뭇해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노는 날이면 느티나무는 지절로 신바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우르르릉~~~ 꽈다당! 우르릉~~ 꽝, 꽝!
바람 한 점 없이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는 갑자기 대포 소리보다도 요란스러운 천둥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이구, 이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모양이군!”
지금까지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히며 마음껏 놀고 즐기던 사람들은 천둥 소리를 듣고는 모두들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나, 둘씩 마을로 도망치듯 종종 걸음을 치며 달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꽈르르릉, 콰다당……!“
천둥소리는 아까보다 점점 더 가까이에서 귀청이 찢어질 것처럼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굵은 빗방울도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허어, 이거 바람이 이렇게 세게 부는 걸 보니 태풍이 몰려오는 모양이군.“
느티나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사납고 거센 비바람을 대비할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아니나 다를까, 느티나무의 말대로 마치 작대기처럼 굵은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봇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센 바람은 나무마다 쫓아다니며 거칠게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산에서 살고 있던 다람쥐 한 쌍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달려오며 소리쳤습니다.
"느티나무 어르신! 저희들 좀 도와 주셔요!"
"어이구, 큰일 날 뻔했구나. 어서 내 뱃속으로 들어가 숨으렴.“
느티나무는 다람쥐 한 쌍을 얼른 이제는 썩어서 크게 구멍이 뚫린 나무기둥 속으로 안내했습니다.
"느티나무 어르신! 저희들 좀 살려 주셔요!“
이번에는 마을로 내려가서 놀고 있던 참새 떼들도 몰려 왔습니다.
“어이구, 이거 비를 흠뻑 다 맞고 말았구나, 어서 잎이 많아보이는 내 가지 속으로 숨어보렴.”
느티나무는 참새 떼들을 모두 팔과 겨드랑이 밑으로 안내하고는 꼬옥 껴안아주었습니다.
사나운 비바람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더 기승을 부리며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날려버릴 기세로 무섭게 불고 있었습니다.
참새 떼에 이어 그다음에는 산토끼, 때까치, 뻐꾸기, 꾀꼬리, 부엉이, 산비둘기 등, 줄을 이어 느티나무를 찾아왔습니다.
추을 때나 더울 때, 그리고 오늘처럼 사나운 비바로이 몰아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은 지금처럼 급할 때마다 느티나무에게로 달려와서 도움을 청하곤 하였습니다.
느티나무는 그럴 때마다 그들을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고 힘이 자라는 데까지 그들을 마음껏 보호하고 도왔습니다. 그게 느티나무의 즐거움이요, 보람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르릉, 꽈다당!”
거센 바람과 작대기처럼 굵다랗게 쏟아지는 비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곧 허리와 팔다리가 부러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굳게 물고, 갖가지 동물들을 보살피기에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정말 무서운 태풍이며 소나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수백 년을 살아온 느티나무였지만 이토록 무서운 태풍과 비는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어이쿠우, 이거 정말 못 견디겠군!”
느티나무는 태풍과 맞서 이기기 위해 진땀이 흐르고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비바람은 여전히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느티나무를 쓰러뜨릴 듯 못살게 굴었습니다.
결국, 느티나무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정신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히야! 저것 좀 보게! 느티나무의 가지가 모두 부러져버렸잖아!”
마을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떠드는 바람에 느티나무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눈을 떠 보았습니다. 그처럼 거칠고 무서웠던 비바람은 어느덧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시 따가운 햇볕이 온 세상을 골고루 달구어 주고 있었습니다.
느티나무는 온몸이 저리고 쑤셔서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하였습니다. 어제 비바람과 맞서 싸우다가 그만 몸뚱이 한 곳이 처참하게 부러져버린 것입니다.
느티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되었습니다. 저만치 땅바닥에는 처참하게 부러져 나간 느티나무의 줄기가 애처럽고도 불쌍한 모습으로 나자빠져 있었습니다. 느티나무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느티나무 그늘 밑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느티나무의 아픔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표정으로 태연스럽게 말입니다.
날이 갈수록 느티나무의 아픔과 슬픔은 점점 더 심해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름이 가고 다시 이듬해 봄이 돌아왔습니다.
느티나무는 지난해 여름에 겪은 충격으로 인해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홀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몸은 몰라볼 정도로 수척할 대로 수척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이처럼 큰 병이 들게 한 태풍이 너무나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어서 건강을 회복하고 싱싱한 잎을 더 많이 매달아야 사람이나 짐승들이 많이 찾아와서 의지할 수 있게 될 텐데, 쿨럭, 쿨럭…….“
느티나무는 병이 점점 깊어져 몹시 고통스러우면서도 여전히 자나깨나 이런 생각만을 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느티나무님, 절대로 그런 어리석은 생각하지 마세요.“
그때 마침 느티나무 옆을 지나가던 바람이 느티나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엿듣고는 참견을 하고 있었습니다. 느티나무는 그렇지 않아도 자나깨나 태풍을 원망하던 참이라 바람의 말을 듣고는 성을 버럭 내며 소리쳤습니다.
"이놈! 나를 이 꼴로 만든 게 누군데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또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이더냐. 꼴조차 보기 싫으니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바람은 느티나무가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내도 조금도 언짢아 하는 기색이 없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느티나무님이 병환이 나시게 된 것은 물론 우리들의 잘못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여름에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느티나무님도 늙을 대로 늙어 잎이 하나도 달리지 않고 다 썩어빠진 몸뚱이만 앙상하게 남을 때가 오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사람이나 짐승들은 느티나무님의 은혜를 모두 잊은 듯 발을 끊고 다시 싱싱하고 건강한 나무 그늘로 모여들게 될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더 이상 일부러 잎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실 필요가 없다 이 말씀입니다. 사람이나 짐승들의 마음이란 다 그런 것이니까요.”
바람은 이렇게 제멋대로 지껄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지 휘익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
느티나무는 멀거니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 느티나무의 눈에는 어느 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있었습니다.
바람의 이야기를 들은 느티나무는 병이 들었을 때의 아픔보다도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슬픔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