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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Nov 21. 2020

열녀, 문 여인의 절개

[내 고장의 전설]

(註) 어느 날 갑자기 ’숨어있는 내 고장의 전설‘ 두 꼭지를 써달라는 잡지사의 청탁을 받게 된 것은 1978년 늦은 봄의 일이었다. 그래서 바로 직접 현장을 찾아가서 기록하게 된 것이 ’열녀문의 전설‘과 ’돌다리의 전설‘이었다.   

이 ’열녀문‘은 내가 태어난 마을에서 약 2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어려서부터 가끔 보았던 곳이었다. 그곳 열녀문은 아직도 서 있지만 안내문이 없어서 솔직히 열녀문에 얽힌 자세한 사연은 그 누구도 알 길이 없었다.      

난 곧 청탁을 받자마자 그곳에 찾아갔더니 마침 그 열녀의 후손(문완기 씨)이 그 부근에 살고 있으며 열녀에 대한 내막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집을 찾아갔더니 문완기 씨가 마침 나무를 하러 산으로 올라갔다고 하여 산에까지 찾아가서 감사하게도 그분의 친절하고도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적게 된 것이다. (*)   





<烈女金石夢妻南平文氏之門>     


위의 글은 지금 현재 경기도 파주군 주내면 백석 1리 산 27번지 소재 나지막한 언덕에 외로이 서 있는 열부(烈婦) 문씨(文氏)의 열녀문 현판(懸板)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세상에 이름난 열녀라면 누구나 다 기구한 사연이 있었겠지만, 그곳 파주에 있는 열녀 문씨의 전설은 정말 듣는 이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한편 너무나 비참하고도 끔찍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큰 경악과 큰 교감이 되고도 남으리라.      


그러니까 아주 옛날,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도 훨씬 넘는 조선 시대 영조 때의 일이었다.   

   

이 마을에는 약 3, 4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농사를 지으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남평 문씨 집안에 어느 한 가정에는 미모가 유난히  뛰어나고 어여쁜 여자아이 하나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차츰 나이가 들수록 미모는 물론이고, 손재주도 남달리 뛰어나고 총명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에서는 물론 멀리 인근 마을 사람들의 칭송도 대단하였다. 그러기에 벌써부터 그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고 침을 삼키고 있는 총각들이 너무나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처녀가 나이가 들게 되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상대자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그 많은 총각들 중에 같은 마을에 사는 김석몽(金石夢)이란 총각에게 가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총각네 집은 어찌나 가난한지 끼니조차 제대로 이어가기가 어려운 가정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이웃집 품팔이, 나무하기 등, 하도 고생을 많이 하는 부인을 보기에 안쓰러워 이렇게 위로하게 되었다.      


“여보! 하고많은 남자들을 모두 마다하고 하필이면 이렇게 가난한 나한테 와서 고생이 말이 아니구료. 정말 미안하오.”   

 

그러나 부인은 그게 아니었다. 한사코 조금도 고생이 아니라며 오히려 밝게 웃는 낯으로 고마워하였다.       


“그런 말씀 마세요. 그리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이게 무슨 고생이에요. 이런 고생도 하지 않고 어떻게 당신 같은 좋은 서방님을 만날 수가 있겠어요. 이대로 전 정말 행복한걸요.”     


부인 문씨는 미모와는 달리 힘도 좋고 몹시 억척스러운 여인이었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논밭 일을 힘든 줄을 모르고 해치우곤 하였다. 그리고 틈만 나면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오는 등, 남자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황소같은 힘을 발휘해 가면서 억척스럽게 해내곤 하였다.    

  

그러나 일단 집에만 들어가면 아내로서 또는 며느리로서의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도리를 다하였다. 말 그대로 현모양처로서의 추호도 손색이 없는 행동거지를 보여서 그녀의 칭송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문 여인에게도 남모를 걱정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문 여인의 용모가 탐이 나서 틈만 있으면 그림자처럼 문 여인의 뒤를 따라다니고 한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 여인이 물을 긷기 위해 우물로 갈 때에도, 그리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에도 어디를 막론하고 기회만 있으면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그 누구한테 함부로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칫하면 오히려 이상한 소문으로 바뀌어 마을 사람들의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낮으로 걱정도 되고 겁이 났지만 그렇게 차일피일 날짜만 보낼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큰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날, 문 여인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큰 개울가에 혼자 앉아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빨래하는 데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돌연 등 뒤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란 문 여인이 급히 뒤를 돌아보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던 바로 그 남자가 또다시 등 뒤에 나타났던 것이다.     


“부인! 너무하십니다. 어찌하여 부인께서는 저의 심정을 이렇게도 몰라 주십니까? 흐흐흐…….

“……!?”     


순간 문 여인은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새파랗게 질려버린 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난 뒤에 애원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를 달래기 시작했다.  


“어, 어서 당장 돌아가셔요. 누가 보면 큰일 납니다. 제발 어서요!”     


그러나 문 여인의 말에 순순히 물러설 남자가 아니었다. 남자는 곧 짐승 같은 웃음을 흘리면서 번개처럼 그 자리에서 문 여인의 몸을 얼싸안으며 덮쳐버리고 말았다.     


“사, 사람 살려요, 사람……!”     


문 여인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면서 계속 살려달라고 악을 쓰고 있었다. 냇가에는 마침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문 여인이 죽을 함을 다해 지르고 있는 비명소리는 냇가 벌판을 온통 울릴 정도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센 문 여인이었지만 남자의 거센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문 여인이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고 저항하면서 계속 고함을 지르게 되자 남자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누구한테 발각될 것만 같았다. 사태가 불리해짐을 깨닫게 된 남자가 이번에는 미리 품속에 미리 준비해 가지고 있던 단도(비수)를 꺼내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문 여인의 배를 찔렀다.


“으아아악~~~!”     


문 여인은 그만 처절하게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문 여인이 쓰러지자 남자는 그것도 부족했는지 그 칼로 문 여인의 배를 갈라놓고야 말았다.       


“사, 사람 살려요, 사람……!”     


갈라진 배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 문 여인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배를 움켜 쥔 여인의 손가락 사이로는 시꺼먼 피가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찢어진 뱃가죽을 헤집고 창자도 불룩하게 밖으로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놀란 남자 역시 너무 놀란 나머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결국 능욕을 채우지 못한 채 어디론가 도망치듯 뺑소니를 치고 말았다.      


문 여인은 눈앞이 아득해지고 정신까지 몽롱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력을 다해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계속 묵직하게 쏟아져 나오는 내장을 치마폭에 싸안고 비틀거리며 자신의 집 가까이까지 가더니 결국 그 자리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제야 그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고 문 여인의 남편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깜짝 놀란 남편이 문 여인을 부둥켜안고 다급하게 묻게 되었다.     

 

“아니, 여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어디 말 좀 해 보구려!”          

“제가 평소에 덕이 부족하여 이런 부끄러운 변을 당했나 봅니다. 부디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서방니임~~~!”   

  

문 여인은 겨우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뒤, 남편과 마을 사람들은 며칠을 헤맨 끝에 마침내 사나이를 잡은 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무참하게 밟고 때리며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 소문은 곧 원님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그 연유를 자세히 들은 원님은 이를 그 당시의 임금인 영조에게 상소하게 되었다. 영조 역시 문 여인의 절개를 가상하게 여기고 영조40년 (1764년)에 열녀문을 세워 주도록 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모양처이며 열부(烈婦)였던 문 여인의 굳은 절개와 그 정신은 길이 후손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으리라!     


지금도 이 마을 뒷산 기슭에는 남평 문씨의 후손 문 완기 씨의 따뜻한 보호와 정성을 받아감 문 여인의 열녀문은 말없이 평화로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 )          

        


                                                                       - 1978년, ’사화찾아 섬천리'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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