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
무더운 여름밤입니다.
"앵애앵~~ 앵애앵~~“
밤이 깊어가면서 모기떼들이 더욱 극성을 부리면서 가뜩이나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누렁이를 못살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이구 어이구 다리야! 어이쿠우 어깨야……! 어쩌다가 내 몸이 이 지경이 됐담!“
요즈음 누렁이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면서 온몸의 힘이 빠지면서 늘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다 극성스럽게 덥벼드는 모기떼를 좀 쫓아보려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그때마다 누렁이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누렁이의 신음 소리는 옆에서 듣기만 해도 애처럽고 측은합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참아 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온몸이 온통 아프고 쑤셔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몸이 허약해지면서 몸이 무거워지면서 전에는 그처럼 힘이 세던 누렁이답지 않게 마음도 덩달아 약해지고 있습니다.
‘누렁이!’ 누렁이란 바로 경수네 식구들과 함께 가족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한 몸에 사랑을 듬뿍 받던 힘이 센 황소의 이름입니다.
힘은 좀 들긴 했지만, 누렁이가 그렇게 즐겁고도 행복한 나날을 같이 해온 지도 올해로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누렁이가 그렇게 고된 나날이긴 했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누렁이의 어마어마한 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힘으로 늘 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을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누렁이는 힘만 그렇게 무서울 정도로 센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도 남다르게 덩치 또한 웬만한 집채 못지 않게 크고 우람하였습니다. 그래서 경수네 식구들은 물론 누렁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마다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허어, 그 녀석 정말 잘도 생겼네! 힘깨나 쓰겠는걸!“
"아암, 아마 천하에 힘이 센 항우 장사도 저렇게 육중하고 무섭게 생긴 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질겁을 해서 줄행랑을 치겠다니까.“
사실, 누렁이는 그런 칭찬을 받을 때마다 은근히 기분이 좋아져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당장 하늘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온몸에 힘이 불끈 샘솟기도 하였습니다.
누렁이는 그런 칭찬을 받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힘이 닿은 데까지 그 어떤 어려운 일도 뼈가 빠지도록 열심히 일을 해서 꼭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맞았어. 바로 그거란 말이야!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죽는 날까지 경수네 식구들을 위해서 뼈가 부서질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는 게 내 일이란 말이야!‘
누렁이는 그런 결심을 하기가 무섭게 그 날부터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에 겨운 일이라 해도 어금니까지 굳게 물고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하였습니다. 온몸이 비지땀으로 범벅이 되어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경수네 식구들을 위해 무섭고도 미련스럽게 오직 열심히 일만 하였습니다.
"누렁아, 너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구나. 네가 아니면 우리 집은 쓰러진다니까. 아암, 쓰러지구말구. 허허허.“
어느 날, 경수 아버지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몹시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다른 소들이라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을 누렁이가 거뜬히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경수 아버지한테 이런 칭찬 소리를 들은 것은 오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을 때마다 자주 들어본 칭찬이었습니다.
누렁이는 그런 칭찬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칭찬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없던 힘이 비누거품처럼 부글부글 샘솟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립고 힘든 일이라 해도 힘이 드는 줄 모르고 그저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오늘날까지 참고 버틸 수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토록 일을 잘하는 누렁이는 이제 경수네 식구들의 오직 하나뿐인 자랑거리요, 커다란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여 년이란 긴 세월을 경수네 식구들의 지극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옛날처럼 경수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이제는 오히려 애물단지요, 차츰 구박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사랑이 지나치면 미움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아마도 그것은 지금의 누렁이의 경우를 두고 생겨난 말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누렁이로서는 너무나 안타깝고도 억울하며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두 달 전, 그러니까 지난봄 모내기가 한창 바쁜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그 날도 누렁이는 지친 몸으로 산더미처럼 잔뜩 쌓인 모를 실은 달구지를 힘겹게 끌고 있었습니다. 모를 그렇게 잔뜩 실은 달구지가 오늘따라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달구지에서는 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마치 처마 밑에서 떨저지는 낙수처럼 연신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누렁이는 벌써 열흘째나 하루도 쉬지 않고 이렇게 달구지를 끌고 있었습니다. 모판에서 금방 쪄서 달구지에 실은 모는 물에 흠뻑 젖어 있어서 이만저만 무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달구지에서 흘러내린 물로 길바닥까지 흠뻑 젖어 있어서 더욱 달구지를 끌기가 어려웠습니다. 길바닥이 미끄러워서 한 걸음씩 옮겨 놓을 때마다 여간 조심스럽고 힘이 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천하에 장사였던 누렁이도 이제는 진이 빠지고 지칠 대로 지쳐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힘에 겨워 온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연신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누렁이의 입에서는 마치 물엿처럼 생긴 허연 침이 쉴새 없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정말 그토록 가엾고 불쌍하기가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허억, 푸우우~~~ 허억, 푸후우~~~! 예전에는 달구지를 끌 때 이렇게 힘이 든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힘이 딸리다니, 내가 벌써 이렇게 늙었나! 푸우, 허어억……!“
누렁이는 하루가 다르게 일이 힘에 부치고 쇠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그야말로 젖먹은 힘을 다해 무거운 달구지를 죽을 기를 써가면서 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철썩! 철썩!“
"이럇! 이놈의 소가 미쳤나? 왜 이렇게 점점 힘을 못 쓰는 거야!“
경수 아버지는 마침내 들고 있던 채찍으로 누렁이의 궁둥이를 인정사정없이 힘껏 후려갈기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누렁이는 매에 못 이겨 질겁을 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안간힘을 다하며 좀처럼 움직일 줄을 모르는 달구지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었습니다. 달구지는 전처럼 마음대로 끌려오지를 않았습니다. 워낙에 지치고 힘이 다 빠진 누렁이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눔의 소가 아직도 매를 덜 맞았나. 그래도 빨리 못 끌엇! 철썩! 철썩!”
경수 아버지는 경수 아버지 대로 몹시 화가 나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 사납게 누렁이를 사정없이 잡아 패고 있었습니다.
아아! 경수 아버지가 그렇게 인정이 없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누렁이는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그토록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던 주인이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비록 힘은 장사였지만 순하기가 그지없게 생긴 누렁이의 커다란 눈에서는 어느새 굵은 눈물이 맺혀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누렁이가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은 결코 매에 맞은 아픔과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경수 아버지에게 철저히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는 뼈아픈 배신감을 견디다 못해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진한 슬픔의 눈물임이 분명하였습니다.
그 날, 누렁이가 종일 매를 맞아가며 힘겨운 일을 겨우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납덩이처럼 무겁기만 하였습니다. 온몸이 어찌나 고통스럽게 아픈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힘든 일을 했다고 콩깍지를 잔뜩 넣어 쑨 그 맛있던 쇠죽도 좀처럼 입맛이 당기지 않아 입에 대기도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뒤에 생각이 나면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끙끙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경수 아버지가 다가와서 구유를 들여다보더니 이번에는 벌컥 성질을 내며 청천벽력 같은 말을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눔의 소가 이제는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주제에 뭘 달라고 죽도 제대로 처먹질 않지? 에이, 웬수 같은 놈의 쇠새끼 같으니라구, 이젠 아무래도 올 여름내 잘 먹여서 살이 오르면 팔아 버리기나 해야지, 별수 없겠는걸.“
그 말을 듣는 순간, 누렁이는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갑자기 머리가 빙빙 돌기라도 하는 듯이 어지러웠습니다. 철저히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마치 육중한 방망이로 뒤통수를 심하게 맞은 듯 아득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당장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푹 꺼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아, 아니, 이 이럴 수가! 이제는 내가 웬수 같다고?‘
그날 이후로 누렁이는 아예 입맛을 싹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별수 없이 살을 잔뜩 찌게 한 다음에 팔아볼 생각으로 경수 아버지가 콩과 콩깍지를 잔뜩 넣어 쑤어준 그 맛있던 여물도 점점 더 입맛에 당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며칠을 굶으면서 앓다 보니 누렁이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있었습니다. 모득 게 다 귀찮고 싫었습니다. 이제는 더 살아보고 싶은 의욕마저 어디론가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여러 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환한 달빛이 누렁이가 누워 앓고 있는 외양간 구석까지 대낮처럼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어이쿠, 어깨야! 어이구, 다리야……!“
누렁이는 벌써 열흘이 넘게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면서 외양간에서 혼자 외롭게 아픔을 달래며 극심한 고통을 이겨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누렁이의 왕방울처럼 생긴 커다란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그렇게 누워 앓고 있는 누렁이의 모습이 그토록 측은하고 가없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누렁아,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울고 있니?”
“……!?“
누렁이는 느닷없이 들려 오는 이상한 소리에 저도 모르게 무거운 고개를 겨우 추스르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아도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어? 나야, 나라구. 고개를 들고 위를 좀 봐.“
아아, 그제야 겨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렇게 부드럽고도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달님이었습니다.
저 높은 하늘에서 문득 외양간을 내려다보고 있던 달님이 오늘따라 누렁이의 태도가 하도 가엾게 여겨져서 말을 걸게 된 것입니다.
"아아, 달님!“
누렁이는 문득 반가운 마음에 자신의 달님에게 억울한 사정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이 억울한 사정을 달님만은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렁이의 사정을 다 듣고 난 달님은 그제야 누렁이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빙그레 웃는 낯으로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허어, 그까짓 일을 가지고 그렇게 마음 아파할 것까지는 없느니라.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은 비단 경수 아버지뿐만 아니란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 그런 거란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도 넌 아직 못 들어보았느냐? 넌 이번 기회에 정말 큰 공부를 하였다고 생각하면 조금도 억울할 게 없느니라.“
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누렁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습니다.
"네에? 제가 큰 공부를 하였다니요?“
”아암, 그런 공부는 많은 돈을 주고도 배우기 어려운 진짜 값진 공부이고 말고, 허허허……."
“……?!”
달님은 여전히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 이렇게 대답하고는 크게 소리내며 껄껄 웃고 있었습니다.
누렁이는 여전히 달님의 이야기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넋이 빠진 표정으로 연신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달님이 들려준 그 어려운 뜻을 이해하기 위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꼬박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누렁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뼈를 깎는 듯한 외로움과 고통스러운 여름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