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우리 집만 왜 자가용이 없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

by 겨울나무

꽁꽁 얼어붙었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새싹이 움트는 봄날입니다.

양지바른 담 밑에서 지연이와 석호는 지금 한창 오순도순 소꿉놀이를 재미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연이 엄마가 지연이를 소리쳐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연아! 이제 소꿉놀이는 그만하고 어서 떠나자!"

"응, 알았어, 엄마!”


지연이는 이렇게 소리쳐 대답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마한테로 총알처럼 달려갔습니다. 뜻밖에 갑자기 소꿉 친구를 잃어버린 석호는 그만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지연이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석호는 문득 지연이가 미웠습니다. 자신만을 동그마니 떼어 놓고 말도 없이 가버린 지연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연이만 미운 게 아니었습니다. 지연이를 맘대로 데리고 간 지연이 엄마까지 미웠습니다.

지연이가 신바람이 나서 엄마한테 달려간 이유를 석호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지연이네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날입니다. 석호는 벌써부터 지연이에게 귀가 아플 정도로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잠시 후, 예쁜 공주님 차림으로 새옷으로 갈아입은 지연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나와 자가용에 올라탔습니다. 반짝반짝 새까만 윤기가 흐르는 고급스러운 자가용을 탄 지연이는 삽시간에 미끄러지듯 골목길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석호에게는 인사 한 마디 없이 그냥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쳇! 그까짓 자가용만 있으면 단가!”


지연이가 탄 자가용이 골목길 밖으로 사라지자 석호는 저도 모르게 공연이 심통이 나서 투덜거립니다. 그리고는 그 길로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서 엄마에게 매달리며 보채기 시작합니다.

“엄마! 우린 왜 자가용이 없어?”

“뭐어? 뜬금없이 갑자기 웬 자가용 타령이니?”


엄마의 눈이 금방 커지면서 되물었습니다.


“엄만 우리 나라 말도 못 알아들어? 지연이네 자가용보다 훨씬 더 크고 고급스러운 자가용을 사잔 말이야.”

“아니, 얘가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이 자가용 타령이람?”


“우리도 지연이네처럼 근사한 자가용을 타고 여행 좀 가보잔 말이야.”


엄마는 그제야 석호가 심통이 난 까닭을 짐작하고 빙그레 웃으며 석호를 달랬습니다.

“으음, 알겠다. 오늘 지연이네 식구들이 여행을 가는 걸 본 모양이구나. 우린 아직 자가용 살 형편이 못 되니까 아빠가 돈을 더 많이 벌어오실 때까지 참기로 하자. 알았지?”


"싫어! 싫단 말이야. 당장 자가용을 사지 않으면 난 내일부터는 학교도 안 갈 거란 말이야.”

석호가 더욱 심통이 나서 소리치는 바람에 엄마의 눈이 커다랗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말 잘 듣고 착한 우리 석호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니? 네가 학교에 다니는 것과 자가용이 무슨 관계가 있는데?"

자가용 2.jpg

“그러엄, 관계가 있고말고. 저번에 엄마가 그랬잖아.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도 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그래, 그런데 그게 뭐 잘못됐니?"

“그러엄, 잘못 되고말고. 우리 아빠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다면서 왜 지연네 아빠만큼 돈을 벌지 못하느냐 이 말이야. 이잉~~.”


"아마 그, 그건 아빠보다는 지연네 아빠가 공부를 더 잘했기 때문일 거야.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열심히 다녀야 된다 이 말이야. 알겠니?“


그러나 석호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아무리 달래 보았지만 한 빈 틀어진 석호의 고집을 좀처럼 되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싫어! 자가용을 사기 전까지는 난 절대로 학교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할 거란 말이야.“

”…….“


엄마는 더 이상 어떻게 달래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왜 아이들까지도 저 야단이람!”


엄마는 이렇게 중얼거리시며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가느다란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오늘은 웬일로 벌써 잠이 들었지?"


직장에서 돌아온 아빠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석호를 발견하고는 이상하다는 듯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럴 일이 있어요. 당신 오늘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돈을 많이 벌어 와야 하겠어요. 후후훗…….“

“아니, 돈을 더 많이 벌어오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아빠는 궁금해진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석호가 자가용을 사자고 보채다가 제풀에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아빠가 갑자기 큰소리로 껄껄 웃으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하하하……. 녀석도 차암, 그래서, 자가용을 사기 전에는 학교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하겠다고 당신한테 떼를 썼단 말이요?”


”그렇다니까요,”


“그래? 조금만 더 참아다오. 언젠가는 아빠도 좋은 승용차 한 대 구입할 때가 올 테니까. 그리고 우리 석호가 자가용을 사자고 떼를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아요.”


아빠는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번에는 석호가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 잠이 들어있는 석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암, 세상 참 많이 변하고말고.”

“세상이 변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당신도 지연이네 집 소문을 들어서 잘 알고 있잖아. 아직도 월세도 가끔 밀리는 셋방살이에다 더구나 지연이 아빠가 일정한 직업도 없이 빚도 제법 많다고 하던데, 재주들은 참 좋단 말이야. 고급 승용차, 그것도 외제차를 몰고 여행을 다닌다니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거든.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고 분수를 알아야지, 차암 내…….”


“…….”


아빠는 다시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는 한심하다는 듯 한동안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석호가 그리다가 그만둔 도화지 속의 새까만 고급 자가용이 석호의 마지막 손길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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