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삶을 누린 적도의 성자, 슈바이처(43)

[1875-1956/독일 철학자 · 의사 · 음악가]

by 겨울나무

슈바이처는 1875년, 독일 알사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성서학과 철학을 전공하였다. 한때는 교회의 목사를 거쳐 모교의 신학부 강사로도 활동하였다.


그 후, 뜻한 바 있어 파리로 건너가서는 바하협회 설립에 동참하여 목적을 달성하였고, 바하협회에서는 어러서부터 배운 오르간 연주를 맡기도 하였다.


21세부터 30세까지는 이토록 타고난 건강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학문과 예술 속에 묻혀 남달리 다 양한 삶의 경험을 두루 쌓았다.

슈바이처가 30세가 되던 해, 그는 지금까지의 활동과는 거리가 먼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즉 이제까지의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인류를 위해 직접 봉사활동을 전개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의학 공부를 시작한 그는 36세 되던 해에는 의학 국가시험에 합격하였다.


1913년 그가 37세 되던 해에는 흑인을 위한 의료 사업으로 일생을 바칠 결심을 하고, 스스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오직 더위와 무서운 병마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흑인들의 생명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 가봉 공화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아프리카에 도착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차이가 많았다. 더위는 물론이고, 열악한 환경에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였다.


그러나 한번 굳게 결심한 슈바이처의 결심은 오히려 더 굳어져만 갔다.


그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을 ‘물과 원시림 속에서' 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인류가 살지 않았던 아주 먼 옛날 같은 경치였다.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까지가 강기슭인지 육지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커다란 나무 뿌리의 덩어리, 그것에 얽혀 있는 덩굴들, 그것들이 한데 어울려 강물 속에 기어들어 있다.
종려나무, 야자나무의 그 큰 잎사귀, 넓디넓은 초원, 그 속에는 높이자란 채로 말라버린 나무가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아 있다.
물수리가 하늘 높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며 원을 그리고 있다. 야자나무에서 길게 처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원숭이의 꼬리이다.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이다.
의료 사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병원을 차려 놓은 지 얼마 후,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일어나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환경에 자금 부족 등으로 그야말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않다.
끊임없는 저술과 강연 등의 활동으로 부족한 사업 자금을 충당함은 물론, 음악가의 소질과 재능을 바탕으로 연주회를 열어 모은 돈으로 병원을 운영해 나갔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그의 별명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흑인의 아버지' 또는 원시림의 성인', '적 도의 성자' 가 바로 그것이다.


슈바이처!


그는 오직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겠다는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모든 인류에게 아낌없는 행복을 나누어 주다가 거룩한 일생을 마쳤다.


자신의 한 몸과 부귀영화만을 원했더라면 얼마든지 남보다도 더 부유하고 행복한 삶,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슈바이처!


그는 그런 것들을 모두 버리고 이런 어려운 곳에서 진정 행복감을 맛보며 거룩한 일생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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