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보다 더 무서운 힘(44)

[이승훈, 독립운동가, 교육자(1864~1930)]

by 겨울나무

사냥꾼은 개로서 토끼를 잡지만, 아첨자는 칭찬으로써 우둔한 자를 사냥한다.
<소크라테스>

자신의 잘못을 말해 주는 사람은 곧 나의 스승이요, 자신의 좋은 점만 골라 말해주는 사람은 곧 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옛 성현의 가르침>

아첨꾼에게 쫓기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까마귀의 밥이 되는 편이 낫다. 까마귀는 시체를 쪼아먹지만, 아첨꾼은 생사람을 쪼아 먹는다.
<소크라테스>

인생의 온갖 아첨이 사라지면, 병약한 자는 조용히 줄어들고, 용기 있는 자는 살아남는다.
<말티알리스>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구약성서>

평안북도 정주에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남강 이승훈, 그는 어릴 때무터 근검절약 정신을 발휘하며 열심히 일한 결과 40대에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소유한 모든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 독립지사로 온몸을 바쳐 활동을 하다가 세 차례에 걸쳐 수 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는 젊어서 한때 작은 공장을 하나 차렸을 때 자금이 너무 부족하여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박순일이라는 사람을 보중인으로 데리고 당시 이름난 재산가이며 재상인 오삭주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의 사랑채 방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와서 모여 있었다. 오삭주는 찾아온 손님들에게 한창 자신의 자랑을 한바탕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오삭주에게 돈을 빌리러 왔거나 그 밖의 다른 어려움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금년에 나는 우리 조부모님 산소에 석물을 들이느라고 한 해를 다 보냈다오. 그 일을 하느라고 돈도 돈이지만, 그 일이 여간 힘이 들었어야지!"


오삭주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주인의 비위를 맞추며 아첨을 하기에 바빴다.


"아, 그러셨군요. 정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셨겠습니다. 조상께 할 힐을 다하셨군요.“

"그런 힘든 큰일을 해내셨다니 어르신이니 그런 큰일을 하시지,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한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승훈은 비위가 상해서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얼굴을 번쩍 쳐들고는 그 사람들을 나무라듯 거리낌 없이 한마디 하게 되었다.

“듣자 하니 젊은 제가 듣기에 너무 낯이 뜨겁고 간지럽습니다. 아니 자기 선조 산소에 석물을 해다 놓고 살피는 일이 그게 무슨 자랑거리이며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할 일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그 일을 모두 재상님이 하셨습니까? 재상님은 옆에서 분부만 하시고 그 힘든 일은 모두 하인들이 땀을 흘리며 했을 게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


이승훈의 뜻밖의 말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오삭주와 이승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오삭주 역시 매우 불쾌한 기색이 되어 한동안 말을 못하고 있다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채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박순일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승훈의 등을 치며 벌컥 화를 냈다.


“자네의 입방정 때문에 일을 다 망쳐 버렸네, 돈 빌리러 온 주제에 어쩌자고 그분의 기분을 거스르는 소리를 하고 있나?”


그리고는 모두들 맥이 빠진 표정으로 이승훈을 속으로 원망하며 주인의 노여움이 풀리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오삭주는 사흘이 되어서야 다시 사랑채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호통을 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싱글벙글 웃는 일굴이 아닌가.


방으로 들어온 오삭주는 여전히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이승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 그동안 사흘 동안 안에 들어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네 말이 옳더군, 역시 자네는 앞으로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야.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보지 않고 바른말을 한다는 것이 어디 그게 말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허허허…….”


그 뒤로 오삭주는 먼저부터 잘 알고 지내던 박순일보다도 이승훈을 더 신뢰하고 친구로 삼아 잘 돌보아 주게 되었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가 판을 치는 세상, 그리고 아직도 그 어느 조직이나 마치 곰팡이처럼 당장 입에 달콤한 아첨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


그러나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아첨보다는 경우에 따라서는 용기를 내어 바른말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것이 때로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기도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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