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천을 댄 예복(47)

[정몽주. 고려말기의 학자 (1337~1392)] -사진; 개성 선죽교-

by 겨울나무

맹자의 어머니가 오직 자식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고 하여 유래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은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많은 울림을 남겨주고 있다.


이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더욱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 의미가 깊고 크기 때문이라 하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 자식이 올바르게 잘 자라서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맹자의 어머니 못지않게 자식의 교육을 위해 힘쓴 위대한 어머니들은 너무나 많다.


돌이켜보면, 우선 이율곡을 그토록 큰 인물로 길러 낸 신사임당이 그렇고, 동양에서 가장 손꼽히는 명필로 길러낸 한석봉의 어머니 역시 맹자 어머니 못지않게 자식의 교육과 장래를 위해 온갖 정성과 열정을 바친 어머니들이었다.




고려 말엽의 대학자이자 충신인 정몽주 역시 그가 그토록 굳은 절개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대쪽같은 충성심을 발휘하게 된 힘을 길러준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정몽주는 어릴 때부터 시를 짓는 솜씨가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였다. 그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마침내 그 어려운 감시에 당당히 3등으로 합격하는 영예를 안았다.

감시란 당시 고려 최고 교육 기관인 국자감에서 주최하는 시험으로 그 시험에 합격만 하면 곧 진사 벼슬을 할 수 있는 대단히 어려운 시험이었다.


또한, 그가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는 문과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여 다시 한번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정몽주가 장원 급제를 하자 그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그동안 공부를 하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자, 이걸 한번 입어 보렴.”

어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면서 느닷없이 장롱에서 예복 한 벌을 꺼내더니 정몽주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틈틈이 정성껏 만든, 안을 붉은 천으로 댄 예복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정몽주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님, 이 예복 안에 하필이면 왜 붉은 천을 대서 만드셨습니까?"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더냐?”


"예, 아무래도 붉은색이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조용히, 그리고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예복에 붉은 천을 댄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였느니라. 자고로 붉은 색깔은 일편단심의 뜻을 지니고 있느니라.”

“아하, 그런 뜻이 있었군요.”


정몽주는 그제야 붉은 천을 대서 예복을 만든 어머니의 깊은 뜻을 깨 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동안 공부를 많이 해서 이제 벼슬길에 올랐으니 일편단심이란 말 속에 담긴 뜻을 잘 알고 있을 게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이 어미 앞에서 아는 대로 말해 보아라.”


정몽주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공손히 꿇더니 마치 과거 시험을 보듯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편단심이란 첫째, 나라를 섬기되 충성을 다해야 하며, 결코 두 나라를 섬기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장하도다. 그리고 또?"


정몽주의 대답에 매우 만족해 하면서 다음 대답을 재촉했다.


또한, 나라를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금을 섬기되 한 임금을 목숨을 바쳐 섬겨야 하며, 결코 두 임금을 섬기자 않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암, 백 번, 만 번 옳은 말이고 말고. 너는 장차 더욱 높은 벼슬을 하여 고려 왕조를 받들고 섬기게 될 귀한 몸이 아니더냐.


예복에 붉은 천을 대서 만든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일편단심으로 한 나라와 임금님을 섬기고 충성을 다하라는 이 어미의 간절한 뜻이 깃들어 있느니라. 내 말 알아듣겠느냐?“


"예, 두고두고 명심하겠습니다.”


정몽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어 일생을 마치는 날까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의 꺼지지 않는 열정과 충성심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밤낮없이 학문을 닦는 일에 힘쓰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직 고려를 지키기 위해 일편단심으로 충성을 다하였다.

그가 대쪽같은 신념으로 끝까지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애국심이 강한 그의 어머니의 가르침과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 하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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