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48)

[신라 48대 경문왕의 일화(846~875)]

by 겨울나무

신라 48대 임금인 경문왕, 왕위에 오른 그에게 갑자기 남모를 고민거리 하나가 생겼다.


멀쩡하던 두 귀가 이이상하게도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흡사 당나귀 귀처럼 보기싫은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왕은 그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을 감추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이만저만 걱정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하루종일 왕관을 벗지 않고 생활을 하였으므로 늘 왕의 곁에서 나랏일을 보살피고 있는 신하들조차 이 비밀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이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왕이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복장을 거들어 주는 시종이었다.

"너는 이 비밀을 아무한테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그야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만일 다른 사람한테 이 비밀을 알려 주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날이면 넌 그날로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여라. 알아들었느냐?"


“백 번, 천 번 명심하겠나이다. 마마."


왕이 이렇게 수시로 겁을 주었기 때문에 시종은 이 우스꽝스러운 비밀을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가슴에 안고 지내게 되었다.


이 세상에 혼자만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누구에게 말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운 일도 없으리라.


누구에게라도 이 비밀을 털어놓아야 속이 시원할 텐데 그렇게 되면 당장 목이 달아날 판이어서 판이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으니 안타깝고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마침내 시종은 마음의 병이 생기고 말았다. 근질근질한 입을 막고 살다 보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그게 병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옳지, 그렇게라도 해야 되겠구나!“


생각다 못한 시종은 그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대궐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대나무숲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은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이윽고 대나무 숲에 다다른 시종은 도착하기가 무섭게 두 손을 펴서 손나팔을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대나무 숲을 향해 마음속에 깊이 감추고 비밀을 목이 터져라 목청껏 외치게 되었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 귀……!!”


이렇게 몇 번이고 목청껏 외쳤더니 가슴속이 다 후련하고 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날마다 바람이 불어올 때면 어김없이 대나무 숲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 귀……!!”


이 희한한 소리는 대궐 안까지 크게 울려 퍼지고 결국은 왕도 이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왕은 그 소리를 듣기가 너무 민망하고 창피하여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여봐라! 당장 도림사 뒤에 있는 대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 자리에 당장 산수유를 심도록 하렷다!”


왕의 추상같은 명령에 따라 급기야 울창했던 대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지고, 그 자리에 대신 산수유 나무가 심어졌다.

그러자 그다음에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전보다 더 소리가 그 듣기 싫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그 소리가 더욱 크게 들러오는 것이 아닌가!

"임금님의 귀는 길기도 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길기도 하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왕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귀를 감추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크게 후회하게 되었다.


"허어,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도다! 처음부터 이 사실을 숨기려고 마음먹었던 내가 어리석었구나!”


왕은 그 뒤부터 자신의 귀를 절대로 숨기거나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다 잘 볼 수 있게 귀를 보란 듯이 드러내 놓고 다니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마치 큰 죄나 저지른 것처럼 늘 무겁기만 하던 마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허허, 내가 왜 진즉에 이런 걸 몰랐던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혼자 몰래 한 일이라도 결국은 탄로가 나게 마련이다.

또한, 저 유명한 ’앙드레 지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허위의 탈속에 자기 자신을 감추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공격하기 좋은 빈틈을 줄 뿐이다. 당신이 최후의 승리를 원한다면 항상 정직함과 진리를 따라야 한다. 한때 불리하고 비참한 처지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처이니 조금 도 겁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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