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 트]
달수씨는 오래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끝에 마침내 큰마음 먹고 소형자동차 한 대를 구입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살이에 그것도 현금이 아닌 할부로 구입한 것이어서 마음의 짐이 무겁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달수씨의 기분은 마치 하늘이라도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나마 차를 구입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나날 들을 아내와 입씨름을 벌여 왔던가.
바로 며칠 전에도 달수씨는 아내의 눈치를 은근히 살피면서 또다시 자동차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내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자동차 소리가 나오기가 무섭게 당치도 않다는 듯 펄쩍 뛰면서 발끈해서 마치 벌이리도 쓸 듯이 덤벼들었다.
”아니 또, 그놈의 차 타령이에요? 난 무조건 반대라니까요. 누군 뭐 자동차가 좋은 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아세요?"
자동차 이야기를 들먹일 때면 으레 그랬듯이 달수씨는 이번에도 겸연쩍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아내의 표정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 당신 정말 자꾸만 왜 이래? 내가 차 이야기만 꺼냈다 하면 번번이 이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펄쩍 뛰면서 반대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구?”
“이런 답답한 양반 같으니라구. 그걸 내 입으로 구구하게 다시 설명을 해야 알아듣겠어요?”
아내는 이번에도 단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서슬이 시퍼래져서 곧 잡아먹기라도 할 듯이 야단이었다.
이에 달수씨는 작전상 좀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새파란 나이에 과부가 되기 싫다 이 말 아니야? 당신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에 차를 가진 남편들의 여편네들은 모조리 생과부가 되고 말았겠네. 결국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 이 말 아니야?”
아내는 달수 씨의 말에 우습다는 듯 이번에는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띄며 다시 입을 열었다.
“으이구, 난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교통사고로 죽거나 내가 생과부가 되는 것쯤은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그래? 그럼 뭐가 두려운 건데?”
“그걸 몰라서 물어요? 다른 건 몰라요. 난 우리 어린 아이들이 아빠 없는 아이가 될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 돼서 그러죠.”
“결국 그게 그 말이 아니오.”
“아이구, 시끄러워요. 난 몰라요. 몰라. 그리고 차가 있으면 한 달에 운영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에요? 사람이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는데 생각이 좀 있어야지.”
“누울 자리라고? 우린 집이 있으니까 우선 누울 자리는 있잖아. 가만히 생각을 좀 해보라구.
다른 사람들은 전세나 사글세를 살면서도 외제 차만 잘 굴리고 다니던데 우린 그나마 허술하긴 해도 내 집은 있잖아. 자동차는 이제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인데 당신은 아직도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야?”
“필수품 좋아하시네. 으이그, 귀는 달려서 어디서 얻어 듣기는…. 그럼 그까짓 쥐꼬리만한 월급을 가지고 자동차를 굴릴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아암, 그렇구말구. 그리고 앞으로 몇 달만 있으면 월급도 오르잖아. 다른 집들은 여자들이 더 자동차를 안 산다고 안달을 한다던데 당신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아내는 갑자기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갑자기 톡 쏘아붙이고 있었다.
“아이고, 그눔의 쇠고집하고는…. 나도 이제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마음대로 해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어요.”
“짚고 넘어가다니, 뭘 말이야?”
“만일 당신이 자동차를 집으로 끌고 오게 되면 그날로 난 이 집을 나가고 말 거예요. 그래도 좋다면 자동차를 끌고 오라구요.”
“뭐어? 집을 나간다구? 헛허, 내 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아내는 끝까지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러나 달수씨의 고집대로 그토록 갖고 싶었던 자동차를 정작 구입해 놓고 보니 아내의 말대로 어려운 문제들이 따라붙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잉제 보니 그 예상이 너무 도를 넘어 감당해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우선 그토록 즐기던 술은 아예 끊는다 하더라도, 왜 그렇게 자동차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어쩌다 주머니에 용돈이 생기기가 무섭게 그 모두가 차로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자동차 보험료, 자동차세, 고속도로 통과료, 유류비, 엔진오일 교환, 부픔값… 등.
자동차로 들어가는 돈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숙한 운전 솜씨로 인해 교통법규 위반, 과속 등을 하는 날에는 그날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한 일당이 삽시간에 자동차가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켜버리곤 하였다.
그래도 그 정도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어쩌다 접촉사고라도 내는 날에는 한두 달치 월급이 몽땅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도 예사였다.
그러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빠듯했던 살림살이는 별 수 없이 더욱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고…….
그러나 달수씨는 스스로 택한 죄책감에 아내에게는 꿀먹은 벙어리 신세가 된채 이제 와서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 자동차를 구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늘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만 치던 달수씨가 아니었다. 그리고 몇 번의 접촉사고를 내자 거리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이 모두 생각만 해도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가끔 교통경찰이 눈에 띄기만 해도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가슴이 섬뜩해지곤 하면서 등에서는 그때마다 어느새 식은땀이 흘러내리곤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이른 아침마다 가슴을 졸이며 자동차를 겨우 회사에 끌어다 놓고 나면 그때부터 다시 집으로 끌고 갈 걱정에 불안한 마음에 온종일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 나가면 집으로 돌아올 걱정, 집으로 돌아오면 회사로 끌고 갈 걱정,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으며 잠도 제대로 이루지를 못했다.
온몸의 피가 바작바작 마르는 것 같은 느낌에 더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토록 왕성했던 식욕도 점점 떨어지더니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별 도리없이 그럭저럭 두어 달을 그럭저럭 버티며 보내던 어느 날, 마침내 골치 아픈 일이 또 벌어지고 말았다.
퇴근길에 길가에 자동차를 잠깐 세워 둔 채 볼 일을 보고 돌아온 사이에 이번에는 지동차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어엉?”
달수씨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알고 보니 이번엔 불법주차 단속에 걸려 견잉되어 갔다다는 것이 아닌가! 달수씨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캄캄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알고 보니 불법주차 단속에 걸려 견인되어 갔다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세상에 이럴 수가!”
달수씨는 표정은 곧 울상에 가까운 그야말로 우서지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그나마 믿을 사람은 아내밖에 없었다.
몹시 초조하고 불안해진 얼굴로 우선 급한 대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마침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돈도 없다 보니 만만한 게 아내밖에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었다.
전화를 받은 아내가 급히 달려왔다.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내와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끝에 결국 자동차 보관소에 가서 견인비를 지불하고 자동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있는 대로 맥이 쭉 빠진 채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달수씨가 먼저 조수석 자리에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는 아내를 향해 몹시 미안하면서도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보, 이거 번번이 미안해서 어떡하지? 진즉에 당신 말을 들을 걸 내가 괜한 고집을 부렸었나 봐. 내일 당장 자동차를 도로 팔아버릴까 봐.”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아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목소리도 매우 부드러워졌다.
“당신이 일부러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차를 팔다니요. 그럼 여태까지 면허를 따기 위해 고생을 한 게 너무 아깝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가슴을 졸이며 운전 경험을 쌓은 것도 너무 아깝고요. 또 자동차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요.”
“그럼 날보구 어떡하라구?”
달수씨가 의아한 표정이 되어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여전히 다정하면서도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런 정도의 작은 사고나 돈도 들이지 않고 공짜로 운전을 할 생각이었어요? 참, 그리고 오늘 일만 해도 이 정도로 끝난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어쩌면 내가 생과부가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백번 낫지 않아요. 후후훗….”
달수씨는 아내의 뜻밖의 반응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아내가 분명히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해주는 바람에 지금까지 잔뜩 짓눌렸던 마음이 한꺼번에 봄눈 녹듯 풀려나가고 있었다.
“당신 이제 보니까 그동안 운전 솜씨가 아주 많이 세련된 것 같은데요. 이담에 택시운전해도 되겠는걸요. 호호호….”
"그럼 당신 앞으로 집을 또 나가갰다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호호호…. 어디 더 보고 나서요."
“하하하…. 그래? 그럼 어디 오늘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속력 좀 내볼까?”
달수씨는 자신도 모르게 신바람이 나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발에 차츰 힘을 가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전속력을 내어 신나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승차감이 유난히 부드럽고 상쾌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