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 예행연습

[꽁트]

by 겨울나무

“에에에~~, 이제 신랑 오영태군과 신부 김지민 양은 그의 일가 친척. 그리고 친지 여러분을 모신 자리에서 백년해로하면서 고락을 같이할 부부가 되기를 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자는…….“


오늘도 박선생은 퇴근을 하기가 무섭게 마치 번개처럼 급히 집으로 달려왔다.


박선생은 소문난 애주가였다.


그래서 여느 때 같으면 으레 동료들과 어울려 지금 한창 석양배를 즐기고 있을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온 박선생은 오늘도 만사 제쳐 놓고 그놈의 주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일주일이 넓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워 주례 연습에 올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리고 애꿎은 심장만 자꾸 두근거리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지금까지 언변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그 누구 앞에서도 떨지 않고 하고 싶은 말으 마음대로 했던 박선생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주례사 연습을 할 때만큼은 그렇지를 않았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외우고 잘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자꾸만 잊어버리가 일쑤였고 아무리 긴 호흡을 들이마신 다음에 의젓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써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길헐, 주례 한 번 서기가 이렇게 힘이 들고 어려워서야 워언…….“


이제 미리 약속된 결혼식 날짜도 그럭저럭 이틀 앞으로 박두했다.

약속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박선생은 더욱 초조하고 조급해졌다. 그 바람에 입안에 있는 침도 자주 마르고, 속은 바작바작 타들어가고 있었다.


박선생은 초조한 마음을 달래가면서 다시 성혼선언문과 그동안 심혈을 기우려 연습을 해 오던 주례사 원고를 식탁 위에 펼쳐 놓고 다시 연습으로 들어갔다.


"에에~~ 이제 신랑, 오영태군과 신부 김지민 양은 그의 일가 친척. 그리고…….“


여느 때처럼 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점잖게 주례사 연습에 열중인 박선생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왠지 어색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아, 글쎄 성혼선언문은 식장에서 그대로 보고 읽기만 하면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보다 급한 건 주례사라구요.“


한동안 옆에서 박선생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번에도 다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잔소리라고 하기보다는 요즈음 주례사를 연습하기 시작한 뒤로는 줄곧 박선생의 유일한 지도자로 바뀌고 말았다.


"아니, 성혼선언문도 없이 바로 주례사로 들어가란 말이야?“


아내의 잔소리에 지금 한창 무아지경에 이르면서 연습에 몰두했던 박선생이 잠깐 연습을 멈추면서 마주 소리쳤다.


"글쎄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어요? 지금 당장 급한 건 주례사라니까요. 당신 아직도 그렇게 더듬거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안 되겠수.”


이쯤 되니 박선생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새삼 자신의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내한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존심이야 어찌 됐든 지금으로서는 아내의 명령 아닌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쩌다 내 꼴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거지!“


박선생은 계속 속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이미 발등에 떨어진 물을 이제 와서 어쩔 수 도 없는 일이어서 박선생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가면서 아내의 지시대로 다시 주례사 연습으로 들어갔다.


"에에~~ 누군가는 결혼을 출범이라고 바꾸어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망망한 대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 험한 바다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두 분의 용기와 참을성, 그리고 인내와 슬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혐한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고 또한…….”


"그만! 그만!“


박선생 자신이 감정까지 넣어가며 정말 잘 한다고 생각하면서 한창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다시 아내가 갑자기 소리치고 있었다.


"그 대목에서는 힘을 주어서 박력 있게 하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들어요? 주례가 그렇게 맥이 빠진 소리로 주례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요. 어디 다시 천천히 해 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는 걸 보면 아내 역시 속이 타고 초조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걱정을 해 주는 건 고맙지만, 도가 좀 지나칠 정도로 잔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때로는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아내의 잔소리는 마치 줄줄이 사탕처럼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대목에서는 좀 더 포용력이 있는 억양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할수 있도록, 또 거기서는 신랑과 신부에게만 하는 말이니까 속삭이듯 부드럽게, 그러나 힘을 주어서…….”


박선생의 이마에서는 어느 틈에 땀방울이 솟고 있었다. 힘에 겨운 것도 아닌데 웬일인지 땀방울만 연신 솟아오르고 있었다.


'정말로 걸려도 용코로 되게 걸렸군! 지가 주례사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다고 저 야단이람.”


박선생은 그런 아내가 못마땅해서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아내한테는 한마디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길을 잘 들인 애완견처럼 아내의 지시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달리 다른 좋은 방법이 없었다.


“망할 녀석 같으니, 멀쩡하게 잘 지내는 사람을 찾아와서 이 모양 이 꼴을 만들다니…….”


이게 모두 망할 녀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선생은 문득 오영태를 원망하게 되었다. 자신의 꼴이 지금 이 모양이 된 것은 그 모두가 오영태 때문이었다.


약 1주일 전의 일이었다.


박선생이 근무하는 학교로 느닷없이 웬 청년 하나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알고 보니 그는 약 20년 전, 박선생이 교대를 갓 졸업하고 초임지에서 처음으로 맡아 가르친 적이 있는 제자였다.


“선생님, 저 기억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의 속을 많이 썩혀 드렸던 오영태입니다.”


뜻밖에 찾아온 젊은이를 보고 박선생은 얼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채 고개를 가웃거리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은혜만은 늘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박선생은 그제야 그가 누구라는 것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고는 반가움에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오라, 맞았어. 이제야 겨우 생각이 나는구먼. 그런데 내가 이 학교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이렇게 찾아왔나? 정말 반갑네.“


박선생의 기억으로는 개구쟁이에 온갖 말썽은 다 부리던 오영태였다.

그런 오영태의 모습은 지금 너무나 의젓하게 딴 사람처럼 변했다.

제법 믿음직스럽고 건강하게 성장한 제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박선생의 표정은 한없이 흐뭇하고 대견스럽게만 느껴졌다.


오영태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갑자기 찾아뵙게 된 것은 선생님께 좀 어려운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세히 듣고 보니 영태가 박선생을 찾아온 목적은 약 1주일 후에 자신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결국 주례를 서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아니, 뭐라고? 날 보고 주례를 서 달라고?“


박선생은 펼쩍 놀라 뛰면서 그것만은 절대로 못한다고 딱 잘라 거절하였다. 그리고 주례 설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면 다른 사람을 추천해 주겠다고 달래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럴 거라면 자신이 직접 부탁할 사람도 많은데 왜 구태여 선생님을 찾아왔겠느냐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럼 승락해 주신 걸로 알고 전 이만 불러가겠습니다. 그날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오영태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주례를 떠맡기고는 도망치듯 돌아갔던 것이다.


그 날 저녁이었다.


"어머, 당신 이제 유명 인사가 다 되셨네요. 40대 초반에 벌써부터 주례를 서게 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이에요. 정말 축하드려요. 호호호…….”


주례를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호들갑을 떨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남편이 주례를 서게 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저명 인사는 무슨 얼어 죽을…….”


아내의 그런 호들갑과 칭찬이 박선생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날부터 박선생은 주례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인터넷도 검색하고 주례사 원고를 쓰는 등, 본격적인 주례 준비에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약속한 결혼식 날은 마침내 돌아오고 말았다.


"여보, 너무 긴장하지 말고 정말 멋지게 하고 오셔야 해요. 아셨죠? 파이팅!“


아내는 몇 번이고 박선생의 넥타이를 바로 매만져 주며 조금은 적정스러운 얼굴로 다짐을 주었다. 주례를 서기 위해 모처럼 새로 맞추어 입은 곤색 양복이 제법 그럴듯하게 어울려 보였다.


"글세, 잘 하고 올 테니까 걱정 말래두 괜히 자꾸만 그러네.”

"오늘은 운전하지 말고 꼭 택시를 타고 가도록 해요.“

"그건 또 왜?"

"주례를 서는데 체면이 있잖아요.

"그래, 알았어.“


집을 나온 박선생은 우선 아내가 시키는 대로 곧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식장을 항해 소리없이 미끄러지듯 속력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예식장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도 달리는 택시 안에서 마지막까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최종적으로 주례사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손님! 다 왔습니다!"


박선생은 기사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택시에서 내렸다. 아까보다 가슴은 더욱 떨리고 자꾸만 숨이 차오고 있었다.


'주례 두 번만 섰다가는 정말 사람 잡겠네. 아침, 청심환이라도 사 먹고 올 걸 그랬나!“


그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막 예식장 현관에 도착했을 때였다. 현관 앞에 서 있던 웬 중년 신사가 기다렸다는 듯, 박 선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실례지만 주례 때문에 오신 박선생님 아니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아, 그러시군요. 여기까지 먼 길 오시느라고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 네에, 그런데 실례지만 누구이신지?“

"이거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오늘 결혼식을 올리게 된 영태의 형이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박선생은 반가운 표정이 되어 얼떨결에 중년 신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중년 신사는 어딘지 모르게 거북한 표정을 지은 채 뭔가를 망설이는 듯 하더니 박 선생을 식장 안으로 안내했다.


"자, 그럼 우선 들어가서 말씀 드릴까요?“


박 선생은 중년 신사가 안내하는 대로 그의 뒤를 따라 식장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마침 토요일 오후여서 식장 안은 하객들의 물결로 몹시 붐비고 있었다.


이윽고 커피 자동 판매기가 있는 비교적 조용한 장소로 박선생을 안내한 중년 신사는 우선 두 잔의 커피를 뽑은 다음 그중 하나를 박선생에게 권했다. 그리고는 다시 몹시 난처한 표정이 되어 슬쩍 박선생의 눈치를 보고 나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거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

“매우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오늘 제 동생의 주례는 사정에 의해 갑자기 다른 분이…….”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고 여전히 더듬거리며 여전히 무슨 말인가를 이어가고 있었다.

박선생은 그 정도만 들어도 중년신사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를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미리 연락이라도 할 일이지 이게 뭐냐고 기분 나쁘게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입이 굳은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


그러자 그 신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혼자 자꾸만 지껄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걸 진작 댁으로 연락 드렸어야 하는 건데 워낙 갑자기 바뀌게 되는 바람에 그만…….”


박선생은 순간 쇠뭉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입을 딱 벌린 채 중년 신사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다시 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시간이 다 된 것 같으니 우선 식장으로 들어가실까요?“

"예예, 그럼 그러실까요. “


박선생은 이렇게 건성으로 대꾸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끌려 들어가듯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영태는 뭐라고 하는지 잠깐 만나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모습은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잠시 뒤,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선 박선생은 슬그머니 접수대로 나와 미리 준비해 온 부조금 봉투를 접수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예식장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집에 가서는 아내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지?“


거리로 나온 박선생의 머릿속에는 우선 여러 날 동안 주례 연습을 시키느라고 고생을 하며 끝까지 응원을 해주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 40에 벌써 주례라. 허- 이거 박선생 다시 봐야 되겠는 걸!“


어제 교장실에 들어가서 어깨에 힘을 주고 자랑 삼아 내일은 주례를 서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며 잘해 보라고 응원을 해주던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도 다시 들려왔다.


박선생의 발걸음은 다시 집으로 오기 위해 어느 틈에 버스 정류장 쪽을 향하고 있었다.


"쳇, 유명 인사 좋아하고 있네. 망할 녀석 같으니라구. 그런 유명 인사 두 번 다시 했다가는 사람 꼴 아주 병신이 다 되고 말겠네,“


잔뜩 우거지상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는 박선생의 표정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모처럼 큰마음 먹고 새로 맞춰 입은 양복, 잘 닦여진 구두, 그리고 아내가 골라 정성껏 매어 준 새 넥타이가 오늘따라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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