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가 옴 붙은 날

[꽁트]

by 겨울나무

"에이, 나쁜 놈, 그걸 여자라고…….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그러는 거야?“

만수는 벌써 몇 번이나 이렇게 틈만 나면 혼자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그야말로 김이 팍 새는 재수가 옴 붙은 하루였기 때문이다.

지금 만수의 기분은 '파이'라고나 할까. '파이'란 수학에서 원주율인 바로 3.14를 가리키는 말로 한때 유행처럼 쓰던 말이었다.


어제 저녁때까지만 해도 만수는 그나마 실오라기 같은 희망에 부풀어 들떠 있었다. 그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란 다름이 아니었다.


어제 오후, 같은 회사에 다니는 후배로부터 제법 괜찮은 여자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시촌 누나라고 하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오늘 맞선을 보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만수는 이제 선을 본다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이가 서른을 훨씬 넘은 노총각이고 보니 지금까지 선을 본 것만 해도 두 손을 몇 번 폈다 접었다 해도 모자랄 정도였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원래 전생으로부터 여자와 인연이 없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늘 생각해 오고 있던 만수였다.


매일 거리를 거닐다 보면 이 세상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몸매와 어여쁜 얼굴을 가진 아가씨들이 그렇게도 흔하지 않던가. 그뿐인가,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모래알처럼 많은 것이 아름다운 여자들이 수두룩한 게 아니든가,

그런데 운이 따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만수의 눈이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맞선을 볼 때마다 안타깝게도 만나 본 여자마다 그게 아니었다. 만수의 눈에는 하나같이 호박꽃으로 보였던 것이다.

아니, 호박꽃이라면 그나마 꽃은 꽃이니까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열이면 열 모두가 어찌면 그렇게도 추녀로만 보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설마 이번에야 그럴 리는 없겠지!‘


그런데 만수의 한껏 부풀었던 기분은 하룻밤이 지난 바로 오늘 이른 아침 출근을 할 때부터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어이, 택시!“


오늘따라 늦잠을 잔 만수는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뛰쳐나와 조급해진 마음으로 택시를 잡고 있었다.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항상 만원 버스가 아니면 지하철 신세를 지며 시달렸던 만수였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좀 달랐다. 저녁에 선을 보기로 약속을 했기에 이렇게 기분이 좋은 날, 오늘만은 아침부터 지각을 하여 상사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기분을 낸 것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출근 시간에 틱시를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모처럼 운이 좋게도 그나마 합승을 하게 되었다.

같은 택시에 합승을 한 사람은 얼른 보기에도 40대가 가까운 아주머니였다. 만수가 보기에는 머리 스타일 하며 옷차림, 그리고 얼굴 생김새가 한 마디로 촌스럽기 그지없는 볼품 없는 여자였다.


'원, 세상에 어쩌다가 저토록 못생긴 여자가 다 있었지!’


문득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지금까지 맞선을 보아왔던 많은 여자들보다 더욱 형편없이 못 생긴 여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자와 만수 사이에 택시 안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만수가 먼저 사정을 하고 나왔다.


"회사가 좀 늦어서 그러니 웬만하면 아주머니가 조금만 양보합시다. 조금만 더 가면 되거든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한 치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왔다.

"안 돼요. 나도 지금 몹시 바쁘거든요. 더구나 택시는 내가 먼저 잡았잖아요. 기사님, 어서 강남에 있는 스타 미용실로 빨리 가 주세요.“

'스타 미용실'이라면 이름난 연예인들이 단골로 드나든다는 소문이 난 아주 유명한 곳이어서 만수도 이미 이름만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흥, 그 상판대기에 머리 손질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만수는 그 여자의 태도가 몹시 아니꼽고 불쾌했다. 그러나 계속 사정을 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조금만 양보하면 될 일을 가지고,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에이. 더러워서 참!“

그러다가 결국 여자한테 진 만수는 도중에서 내리는 민망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미 출발을 한 택시 속에서는 여자가 만수를 향해 욕을 퍼붓고 있었지만 만수의 귀에는 그 소리가 잘 들릴 리가 만두했다.

어쨌거나 그런 하잖은 일로 이른 아침 출근길부터 기분을 잡치게 된 만수는 그럭저럭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퇴근을 서둘러 미리 약속된 커피숍으로 나갔다.


커피숍에는 이미 자신의 후배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만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는 연신 묻지도 않은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이 세상에 입맛에 폭 드는 떡이 어디 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아마 우리 누나가 인물은 그렇게 잘 나진 못했어도 마음씨가 착한 건 그만이라니까요. 인물만 뜯어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어디 별 여자가 있겠습니까? 살다 보면 그럭저럭 정도 들고 그러는 게 부부라지 않습니까?“


후배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자신의 누나를 열심히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만수는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히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후배의 말대로 이번 기회에 웬만하면 총각 딱지를 떼어 버려야 되겠다고 은근히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으시지?“


만수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바로 그때였다.


"아, 저기 들어오시는군요“


후배는 커피숍 출입구 쪽을 가리키며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만수의 표정은 흡사 벌레를 씹은 얼굴처럼 일그러지면서 납덩이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저 여자가 바로 자네의 누님이라고?”

그 여자는 머리 스타일만 조금 달라졌을 뿐, 분명히 아침에 만수와 택시에서 심하게 실랑이를 벌었던 바로 그 여자였던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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