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⑥] 엄마 때문에~~~

오싹오싹 귀신 이야기

by 겨울나무

강원도 인제군에서 조금 떨어진 험한 산골짜기,


그곳에는 마치 갓 솟아오른 버섯처럼 예쁘게 생긴 대여섯 채의 초가집이 이마를 맞댄 채 옹기종기 모여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황무지를 개척하여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화전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늘 넉넉지를 못하여 그럭저럭 그날그날을 이어가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웃 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서로 도우며 정답게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마을 사람 모두가 수심이 가득찬 걱정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이렇게 된 연유를 알고 보면 이 마을 사람들만이 해마다 겪어야만 하는 차마 말 못할 큰 걱정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마을에는 해마다 그 해를 넘기기 전에 어김없이 산신에게 제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것도 죽은 사람이 아닌 멀쩡하게 산 사람을 한 명씩 산신에게 바쳐야만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끔찍하면서도 기가 막힌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어느 해에 산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가 이 마을 사람들이 겪게 되는 끔찍한 재앙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느 해에는 온 마을에 원인 모를 못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여러 사람이 떼죽음을 당한 적도 있었다. 어느 해에는 원인도 모를 큰불이 일어나서 나서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죽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해 여름에는 큰 홍수로 인해 산사태가 크게 일어나기도 하고, 눈사태에 사람이 깔려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런 두려움과 공포를 견디다 못해 몇몇 사람들은 슬그머니 이 마을을 떠나 멀리 이사를 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사를 갔다 해서 화를 피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를 간 사람들 모두가 이상하게도 이사를 간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알 수 없는 급살병이나 사고를 당하여 여지없이 죽곤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마을을 떠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살 수도 없는 그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기구한 운명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제물을 바쳐야 하는 운명의 그 섣달 그믐날이었다.


오늘 밤 자정을 넘기기 전에 산신에게 다시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끔찍하고도 불안한 운명의 시각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을 회의를 열곤 하였다. 이번에는 또,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야 할까를 의논하는 중대한 회의였다.


그 회의는 바로 섣달 그믐날인 오늘 오후에도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이미 서산으로 지고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지만 제물로 바칠 사람을 정하지 못하여 마을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계속 흐름에 따라 초조해진 마을 사람들의 속은 바작바작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마침내 누군가가 조용히 그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사람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침묵을 깨뜨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아기를 업고 있는 새파랗게 젊은 여인이었다.


"아니, 아기 엄마가……?“


너무나 의외라는 듯 마을 사람들의 눈이 모두 둥그렇게 되어 아기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젊은 여인은 매우 침착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아시다시피 죄가 많은 저는 일찍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난하고 옹색한 살림살이지만 오직 이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부지하고 죽지 못해 겨우겨우 살아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자식 하나 제대로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제대로 거두지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이 기회에 마을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식과 함께 죽는 일이라면 저는 지금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겠습니다.“


”……?“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여인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을 뿐,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가끔 공연한 헛기침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시간은 차츰 임박해 오고 있고, 지금으로선 달리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을 여인 하나가 무거운 침묵을 깨드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젊은 여인의 등에 업힌 아기를 받으려고 했다.


"아기 엄마의 뜻이 정 그렇다면 그럼 아기나 우리한테 맡기고 가구려. 이거 또 한 사람 죽게 생겼으니 불쌍해서 어쩌나. 으흐흑…….“


"아닙니다. 제가 그냥 업고 가겠어요. 산신님께서 이렇게 어린아기들은 제물로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요. 만일 저 혼자 가서 죽게 되면 그 뒤부터 우리 아기를 부탁드리겠어요. 그럼 안녕히들 계세요.“


"그래요. 그럼 무사히 잘 다녀오도록 해요. 아마 새댁은 워낙 마음씨가 착해서 분명히 살아오게 될 게야.“


젊은 여인은 마침내 아기를 등에 업은 채, 마을 사람들에게 공손이 절을 하더니 그 길로 혼자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를 차마 말리지도 못하고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가슴은 안타깝고 불쌍한 생각에 마음속이 미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슬픔을 삼키느라고 애를 쓰며 흐느끼는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인은 칠흑같은 어두움을 뚫고 한 발 두 발 캄캄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등에 업힌 채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는지 쌔근째근 고운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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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조금이라도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등에 업힌 아기에게 자꾸만 쓸데없는 말을 걸곤 하였다.


"아가야, 만일 이번에 엄마가 죽거든 엄마하고 같이 살 때보다 마을 사람들하고 배고프지 않게 더 잘 살아야 한다, 엄마 말 알아들었니?“


”…….“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여인의 등에서는 연신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아! 저기가 바로 산신이 살고 있다는 신당인 모양이구나! 족기 아니면 살기지!“


마침내 신을 모신 신당 가까이 다다른 여인은 입에 고였던 침을 꼴깍 삼켰다. 입안이 너무 말라 침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져 먹고 열려있는 신당 문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아, 이제 저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죽겠구나.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 되겠구나!“


여인은 이렇게 몇 번이고 마음을 굳게 다져 먹긴 했지만,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온몸의 힘이 모두 빠진 듯 걷잡을 수 없이 후들거리고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정신까지 몽롱해지고 있었다.


신당 안에는 누군가가 불을 켜놓았는지 문 창호지를 통해 엷은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여인은 마음을 더욱 독하게 다져 먹고, 불빛이 스며나오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그러나 침착하게 두리번거리면서 방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너무 두려운 마음에 입에서는 여전히 침이 고이고 있었다.


산신 그림이 그려진 벽화 바로 밑에서는 반쯤 탄 촛불이 하늘거리며 힘없이 타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큼직한 교자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교자상 위에는 빨간색 헝겊으로 동여맨 북어 두 마리와 쌀이 반쯤 담긴 그릇이 놓여있었다.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산신이 그려진 초상화로 옮겨졌다. 종이에 그려진 벽화는 너무나 오래되고 바래어 어찌나 흉하게 보이는지 보기만 해도 섬뜩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허어억!”


순간, 한동안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은 기겁을 하며 다시 한번 가자지러지게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던 산신의 표정이 갑자기 험악하게 일그러지는가 했더니 여인을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다음 순간, 또다시 기겁하고 놀랄만한 광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뚝! 뚜욱뚝……!“


지금까지 멀쩡했던 산신의 두 눈에서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리면서 방바닥으로 계속해서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여인의 다리는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산신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빌기 시작했다.


"전지전능하신 산신이시여!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이 죄많은 인간에게 얼른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그러자 산신이 여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차츰 부드러운 안색으로 변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더니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참 마음씨가 갸륵하도다! 그렇게 무서워하지만 말고 지금 당장 도로 마을로 내려가거라! 난 이미 그대가 외롭고 불쌍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늘, 내 어찌 그대를 제물로 받아들일 수 있단말인가. 자, 어서!”


"사, 산신님, 정말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게 도대체 꿈인가 생시인가! 여인은 더듬거리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절을 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인이 신당 안에서 밖으로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신당 안에서 갑자기 싸늘한 냉기가 도는가 했더니 여인의 등허리가 금방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오싹해지고 말았다.


"산신님, 정말 감사합니다.“


여인은 어쨌거나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 해도 그저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둥지둥 단숨에 마을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누가 자꾸만 뒤에서 쫓아와서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움켜잡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머리털이 곤두서고 등에서는 여전히 식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저기 내려오고 있는 게 새댁이 아니야?"


그때까지도 여인의 소식이 궁금하여 마을 어귀에 모여 서서 웅성거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 중의 하나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어허, 정말 그렇구먼. 그러게 내가 뭐랬어? 새댁은 워낙에 마음씨가 착해서 살아올 수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마을 사람들은 퍽 다행스럽고도 반갑다는 생각에 여인을 에워싸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 기쁨과 반가움도 잠시였다.


”어디 좀 보자꾸나!“


여인의 등에 업힌 아기를 들여다보던 한 아주머니가 자지러지는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니, 그런데 아기는 어쩌고 포대기만 업고 온 거지?“

"뭐어? 포대기 속에 아기가 없다구?“


아주머니의 말에 포대기 속을 들여다보던 마을 사람들은 그만 질겁을 하여 놀라면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지금 포대기 속에 있어야 할 아기는 간 데 온 데 없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그 대신 아기의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허걱,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그때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인은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한 채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이 마을에는 이상하고도 해괴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매일 밤 자정만 되면 어김없이 신당을 모신 산기슭에서 아기의 애절하고도 가냘프면서도 음산하기 그지없는 애절한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들려오곤 했던 것이다.


"응애응애~~~ 엄마 때문에…… 엄마 때문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