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⑦]
항아리 속의 여자아이
오싹오싹 귀신 이야기
날씨가 몹시 추운 한겨울이다. 산골 마을에 살을 에일 듯 칼바람이 불어온다.
그렇게 추운 어느 겨울날의 저녁이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산과 들판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어디가 어딘지조차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믐이 가까웠는지 달도 뜨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오직 농사만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덕구 씨가 비틀걸음으로, 그러나 바짝 긴장된 표정으로 마을을 향해 산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덕구 씨는 오랜만에 읍내 대장간으로 곡괭이 한 자루를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다.
내년에도 농사를 잘 지으려면 농기구부터 잘 챙겨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읍내에서 모처럼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 막걸리 한 잔을 나누게 되었다.
처음에는 목만 조금 축이고 일어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한잔 한잔하다가 결국은 마침내 해가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내 고향 가잔다. 내 본향 가잔다.
산 넘고 물 건너 고개 넘으면~~ 끄어억~~~
친구들과 어울려 마신 술이 어느 정도 얼근하게 오른 덕구 씨는 아까부터 혀가 약간 꼬부라진 소리로 연신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가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흥이 났을 때 부르는 노랫소리가 아니었다.
술이 취하기는 했지만 늦은 밤에 산길을 혼자 걷다 보니 왠지 자신도 모르게 이따금 섬뜩한 생각이 들어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억지로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덕구 씨의 노랫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 모르게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덕구 씨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걷고 있는 동안 그럭저럭 고개 하나를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성황당이 있는 고갯길을 또 하나 넘어가야만 했다.
늘 그렇지만, 성황당 고개는 벌건 대낮에 지나가기에도 늘 음산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곤 하였다. 그래서 바짝 긴장된 마음으로 성황당 고갯길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이 성황당 고개만 넘어가면 저 멀리 덕구 씨가 살고 있는 마을이 있어서 일단 안심은 된다. 그런데 이 고개가 큰 문제였다.
이 성황당 고개는 옛날부터 갖가지 흉측스럽고도 끔찍한 갖가지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생각만 해도 저절로 소름이 오싹하게 돋을 정도로 음산하고도 으스스한 곳이 이 성황당이었다.
덕구 씨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되도록이면 그런 두려운 생각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나오지도 않는 콧노래를 여전히 흥얼거리며 한 발, 두 발 고갯길을 항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저씨! 저 좀 살려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바짝 긴장하고 있던 덕구 씨의 귓가에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덕구 씨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 그 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애절하게 소리치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어엉!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순간, 온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고 온몸이 굳어진 덕구 씨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채,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다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그만 헛소리를 들은 건가?“
덕구 씨는 일단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이상한 소리는 덕구 씨의 귀에 또다시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저씨이! 빨리 저를 좀 살려 달라니까요!“
그 소리는 분명히 지금 덕구 씨가 걸어 올라가고 있는 오른쪽 낮은 산봉우리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겨우 대여섯 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 여자아이의 아주 절박하고도 다급한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아니 이 밤중에 산속에 웬 여자아이가!?"
덕구 씨는 그 여자아이의 애절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한꺼번에 취기가 싹 달아나고 말았다.
지금까지 별로 무섭거나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덕구 씨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당장 정신이라도 잃을 것처럼 온통 정신까지 멍해지면서 멀쩡했던 다리가 후들거리며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온몸은 납덩이처럼 굳어진 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한동안 그 자리에 선 재, 멀거니 산봉우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덕구 씨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라고는 없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산봉우리는 그다지 높은 산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날이 캄캄하게 어두워져서 사방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더구나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올라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저씨! 빨리요! 빨리 저 좀 살려주세요~~~!”
그때 또다시 금방이라도 곧 자지러질 듯한 여자아이의 울며 부르짖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느냐!“
그 소리를 들은 덕구 씨는 도무지 더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덕구 씨는 오늘 낮에 읍내에서 산 곡괭이를 두 손으로 힘껏 몰아 쥐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아이가 울부짖고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허둥지둥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여전히 칼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사납게 불고 있었지만, 산을 오르고 있는 덕구 씨의 온몸은 어느새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힘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두려움을 참다못해 흘러내리는 식은땀이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마침내 몇 차례나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산봉우리 위에 오른 덕구 씨는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 전에 또렷하게 들려오던 여자아이의 자취는 전혀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그거참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로군!“
그러자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저쪽 맞은 편 산 능선에서 다시 아까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빨리 오세요. 여기예요. 여기!“
그것은 조금 전 바로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니, 아까는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그거 참 이상하다! 그래, 알았다. 곧 갈 테니 거기 가만히 기다리고 있거라!“
덕구 씨는 이렇게 마주 소리 지르고는 다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맞은 편 산을 향하여 허겁지겁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리고 쌓인 눈에 빠지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무엇에 홀린 듯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허둥지둥 하는 동안 마침내 다시 조금 전에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능선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저씨, 여기라니까요. 빨리 와서 저를 좀 살려 주세요!“
아! 이번에는 덕구 씨의 눈에 여자아이의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나타났다. 여자아이는 바로 덕구 씨가 서 있는 곳에서 대여섯 발자국 떨어진 저쪽 바위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덕구 씨를 바라보며 여전히 다급하고도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아저씨가 곧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덕구 씨는 여자아이가 앉아 있는 바위를 향해 숨을 헐떡이며 급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덕구 씨가 여자아이가 있는 곳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아저씨이— 왜 이제야 오세요? 이젠 너무 늦었어요. 으흐흑…….“
그런데 정말 귀신이 곡을 할 일이었다. 여자아이는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이 바위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모습을 덕구 씨가 분명히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 있던 여자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흔적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혹시 내가 지금 꼬마 귀신한테 홀린 게 아닐까?“
덕구 씨가 이번에는 땅바닥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게 되었다. 눈 위에는 여기까지 걸어와서 멈춘 여자아이의 구두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그 바위 밑에서 멈춘 채, 더이상 다른 곳으로 간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거참, 환장할 노릇이군! 그렇다면 이 아이가 금방 땅속으로라도 기어들어갔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덕구 씨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곧 팔을 걷어부치고는 곡괭이자루를 두 손으로 힘껏 쥐었다. 그리고는 방금 여자아이가 앉아 있던 땅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꽝! 꽝! 꽝……!”
곡괭이 소리가 겨울의 산골짜기를 요란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땅은 좀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덕구 씨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뒤, 마침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언 땅이 부서지고 조각이 나면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땅을 부지런히 파고 있을 때였다.
"퍽! 쨍그랑!“
그때 갑자기 땅속에서 곡괭이에 어떤 물체가 힘없이 찍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질그릇 같은 것이 깨질 때 나는 소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 여기 웬 항아리가 묻혀 있지?“
곡괭이에 찍혀 깨진 것은 짐작했던 대로 땅속에 묻혀 있던 질그릇 항아리였다. 두 눈이 둥그렇게 된 덕구 씨는 일단 곡괭이질을 멈추고 허리를 굽힌 채, 항아리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 아니, 이럴 수가……?“
아! 지금 덕구 씨가 깨뜨린 항아리 속에는 지금까지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던 바로 그 여자아이가 얌전하게 눈을 감은 재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살펴보니 여자아이는 이미 숨을 거둔 채 숨을 거둔 것 같았다.
덕구 씨는 눈이 휘둥그렇게 된 채, 다시 한번 기절을 할 뻔하였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부들부들 떨면서 잠시 망설이며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이히힝~~~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랬어요? 빨리 좀 와 달라고 했잖아요. 조금만 빨리 왔어도 난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히힝~~~“
숨을 거둔 채 항아리 속에 온몸을 쪼그리고 앉아 있는 줄로만 알았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악! 사람 살려요, 사람!!“
덕구 씨는 그만 곡괭이를 내동댕이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소리 지르면서 마을을 향해 허겁지겁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