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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Dec 17. 2020

막상 출간은 했지만……

[우리를, 아니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항상 좋은 목적을 잃지 않고
노력을 계속하는 한 최후에는
                     반드시 구제된다
                                                                                                                  
  <J.W. 괴에테>      



’누운 나무에 열매 맺지 않는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죽은 나무에 열매가 열릴 리 없으니 사람도 죽은 듯이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으니 누구나 열심히 움직이고 일을 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것은 사과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가만히 누워 있다고 해서 사과가 저절로 입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지금 이 시각에도 이 세상 식물들 모두가 자신의 강한 생명력을 나름대로 한껏 발휘해 가면서 한 시도 쉬지 않고 성장해 나가려는 노력을 한 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식물이든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모진 한겨울의 추위를 어금니를 다져 문 채 뼈저린 고통을 이기고 견뎌내며 스스로 언젠가는 돌아올 내년 봄을 꿈꾸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힘든 나날을 견뎌내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년 봄이 돌아오면 귀엽게 돋아낼 새싹, 그리고 한여름에는 싱싱하고 건강한 잎과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 그리고 가을에 소담스럽고 탐스럽게 열릴 결실을 꿈꾸며 기약하는 것이리라.      


식물들이 그럴진대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 세상을 새삼 설명해야 무엇하랴.    

  

인간들 역시 저마다 목적하는 바는 다르지만, 그 무엇인가를 이룩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각에도 끊임없이 온갖 안간힘과 노력을 다하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그리고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 밤낮으로 부단히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이 생각해도 마음에 드는 하나의 글을 완성했다 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산고(産苦)의 고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비록 남들이 읽을 때는 우습게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어떤 평가를 하게 될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거나 글을 쓴 자신은 그만큼 나름대로 힘겨운 고통을 이겨내며 완성한 글이기에 산고의 고통과 비유한 표현일 수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출간이 된 책이라면, 남들이 읽어보고 감동을 갖든 말든 글을 쓴 당사자는 마치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물들이 그렇게 뼈아픈 고통을 겪으며 푸른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맺기를 소망하듯, 글을 쓰는 사람들의 꽃이며 열매는 역시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 기쁨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것만큼 더 큰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희열은 없으리라.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자신이 난 자식만큼은 무슨 짓을 해도 애지중지하며 귀여워하고 있지만, 다른 어머니들이 볼 때는 당연히 그 시각이 다를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신이 낸 책을 제 자식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가끔은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가끔 흥미를 잃게 되는 일들          


오래전에 누군가가 처음으로 책을 내게 되었다. 마침내 꿈을 이룬 것이다. 책이 나오자 그는 너무나 기뻐서 며칠 동안은 잠을 이루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자랑을 하고 싶었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그가 학창시절에 가장 존경했던 교수였다. 내가 낸 책을 그에게 전해 주면 몹시 기뻐하며 축하를 받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곧 책 한 권을 소중히 간직하고 대학교수실로 찾아가서 마침내 책 한 권을 선물로 전해 주게 되었다. 그리고 가슴이 들뜨고 흡족했다. 앞으로 교수님 댁의 서재 책꽂이에 자신의 책도 소중히 소장되어 있을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뛰며 설레기도 하였다.      


그리고 몇 달 뒤, 우연히 그 교수 댁을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또 가슴이 설렜다. 무엇보다도 교수 댁 서재에 자신이 선물로 준 그 소중한 책이 정성껏 꽂혀있을 광경을 미리부터 상상하니 마냥 흐뭇하고 들떴던 것이다.      


이윽고 교수 댁을 방문하기가 무섭게 그는 책꽂이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아무리 살펴보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이 낸 책은 끝내 책꽂이에서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본다는 것도 좀 민망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학교 교수실에 보관하고 계신 것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기 위해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우연히 거실 한 귀퉁이를 바라보게 된 그는 순간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아아!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그처럼 정성을 들여 낳은 그 금쪽같은 내 새끼가 앉은뱅이 재봉틀 받침으로 밑에 숨이 막힐 정도로 깔린 채 곧 죽을 것처럼 신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못볼 것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큰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곧 크게 실망한 나머지 덩달아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한 마음으로 그 집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아무나 책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 1 )


하지만 나 역시 가끔 위와 같은 비슷한 일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오래전에 책이 한 권 나왔기에 내 딴에는 은근히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직장 상사에게 책 한 권을 넌지시 건네주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책을 받으며 어떤 반응이 나올까 몹시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의 궁금증은 곧 실망으로 이어지고 뒷맛이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단 몇 장이라도 펴보았다면 그런 실망은 덜했을 것이다. 그는 책을 펴보지도 않은 채 책의 끝면만 건성으로 스르륵 넘기고는 그만이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책을 펴볼 생각도 없이 책상  한쪽으로 턱 던지듯 팽개치고 나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책 내고 돈은 얼마나 벌었어?“     


너무나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다시는 다음부터는 책을 절대로 주지 않겠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지금도 괜히 주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도로 뺏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 2 )     


어느 해에는 창작동화집이 또 한 권 새로 나왔기에 이번에는 그런대로 가까운 동료 직원에게 한 권을 주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 역시 책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도 없이 책장을 한번 스르륵 넘겨보더니 내게 물었다.   

   

”이거 모두 머리로 상상해서 쓴 거짓말들이죠?“    


난 뜻밖의 황당한 질문에 얼른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되묻게 되었다.         

”그렇죠. 소설이건 동화건 이 세상 문학 작품들 모두가 상상으로 창작된 이야기들이지요.“     


그랬더니 그 사람 대답이 더 가관이며 걸작이었다.      


”나는 소설이건 뭐건 그런 거짓말을 쓴 문학작품들은 절대로 안 읽어요. 제가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은 오직 성경책뿐이거든요. 성경책에는 이 세상 모든 진리가 담겨있거든요. 허허허…….“


”……?!“     


난 이번에도 괜히 이런 사람한테 책을 주었다고 크게 실망하고 후회했다. 공연히 자존심이 상하고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더 기분이 크게 상하고 아연실색하며 당황하게 된 것은 그다음 날의 일이었다. 어제 내가 준 그 소중한 내 새끼가 가엾고 불쌍하게도 그 사람의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모욕적이며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 중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도로 가지고 온다는 것은 그나마 알량하게 남아 있는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속만 부글부글 끓어오를뿐이었다.      


                           ( 3 )    

  

글을 써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느껴본 일일 것이다. 글을 마냥 편히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청탁을 받고 쓰는 글이 가끔은 원고 마감이 축박해서 몹시 부담이 가고 힘겨울 때가 있다.     
 

어쩌다 잡지사나 신문사 등에서 청탁을 받은 원고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잡지사 등에서는 몇 장 안 되는 원고라 해도 그 마감 날짜를 맞춰주지 못하면 그 회사는 크 낭패를 보게 된다. 그래서 독촉 또한 연신 빗발 같을 수밖에 없다.     

 

하필이면 그런 원고를 쓰다 보면 개인적으로 공교롭게도 이런저런 글을 쓸 수 없는 일들이 복병처럼 벌어지기도 한다. 가까운 집안사람의 예식이나 환갑, 돌잔치, 그리고 칠순 잔치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런 행사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갑자기 초상이 나기도 한다. 글을 안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 청탁받은 원고를 보내지 않으면 그 회사는 낭패를 당하게 됨은 물론 나의 신용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난 어쩔 수 없이 무거워진 마음으로 몇 장의 원고를 쓰기 위해 부조금만 넣어 보내곤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그들을 그 뒤에 만나게 되면 으레 못마땅한 눈길로 나에게 물어오곤 한다.    

  

”그때 그렇게 중요한 자리에도 안 오면서 원고를 썼다니 그날 그래 얼마나 벌은 거야?“     


 ”……?!“     


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입이 열이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런 말들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말들이 자주 나 자신을 작게 위축시키고 슬프게 하기도 한다.      


                           ( 4 )     


현재 내 주변에는 글을 좋아하며 읽는 사람들이 전무한 형편이다. 친척들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기름과 물이 같이 섞일 리 없다.


지금까지 약 50년간 글을 써오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내가 쓴 글을 읽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 글만 안  읽는 게 아니다.  이름난 작가들이 쓴 글도 취미가 없다며 안 읽는다. 아무리 이름난 작가가 쓴 글이나 베스트셀러라 해도 때론 줄거리만 대강 파악하고 만다. 그리고 영화도 주로 외화를 즐겨보고 있다.   

    

이름난 작가가 쓴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도 읽을 생각조차 않는 우리 가족들인데 하물며 내가 쓴 알량한 동화를 읽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가족끼리 소통이 될 리가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쓴 글을 그것도 나의 권유에 의해 한번 읽어보더니 한마디로 너무 어린애 장난 같고 썰렁하며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 모두는 내가 쓴 글을 절대로 읽는 법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황순원의 ’소나기‘같은 글이 얼마나 잘 된 글이냐고 넌즈시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런 글은 아빠 세대에서는 통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인이 인정하는 그런 글을 우습게 여기는 아이들인데 더구나 내가 쓴 어린애 장난 같은 글이야 오죽할까!     


내가 한창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차분한 분위기에서 쓸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은커녕 아무 때나 예고 없이 남이야 글을 쓰든 말든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아무 양해도 없이 내 주변을 돌며 청소기를 돌리며 나에게 저리 잠깐 좀 비키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글쓰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그들은 막말로 표현하자면 그렇게 궁상맞게 앉아서 글을 쓴다고 거기서 돈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고 어쩌다 가끔 내가 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귓등으로라도 듣기는커녕 듣기 싫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핀잔을 주며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누군가는 글을 쓴다는 작업이 외롭고 고독한 일이라얼른 고 표현하기도 했나 보다.      


그래도 난 오늘도 시간이 나는 대로 미련스럽게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글을 쓰는 일이 좋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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