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의 효심(59)

[조헌.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며 정치가(1544~1592)]

by 겨울나무

공자께서는 일찍이 겉으로 보기 좋게 꾸미는 물질적 효도보다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받드는 정신적 효도를 더 높이 평가하였다.

그래서 '부모님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드리는 것만으로 효도라 생각지 말라. 먹여서 기르는 것은 개나 말 같은 동물들도 마찬가지니라. 부모를 잘 받드는 것은 공경심에 있느니라고 힘주어 역설하였다.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조헌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장으로 맹활약하여 많은 공을 남긴 분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조헌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를 맞이하였다.


그는 자신을 낳아 준 생모 못지않게 계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따르고 섬겼다. 따라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계모의 일을 돕기 위해 집안일을 거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계모는 조헌의 그런 효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이 떨어질 정도로 조헌을 쌀쌀맞게 대하고 구박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조헌은 계모가 그럴수록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여전히 계모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헌은 계모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잠깐 외가에 가게 되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조헌을 보자마자 얼싸안고 통곡을 하였다.


"이 불쌍한 것아, 너를 그토록 학대하는 그런 여자를 앞으로 어떻게 어미라고 의지하며 살아간단 말이냐, 아이고 가엾어라.”


한번 시작한 외할머니의 푸념은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집으로 돌아온 조헌은 그 후 한동안 외가에 발걸음을 뚝 끊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급히 외가에 갈 일이 생겨서 마지못해 다시 외가에 가게 되었다.

"아니, 너 그동안 왜 발걸음이 뜸했느냐? 이제는 이 할미조차 보고 싶지 않더냐?“


외할머니의 물음에 조헌이 무거운 입을 열고 대답하였다.


“왜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왔단 말이냐?“


그러자 조헌이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다.


“사실은 제가 지난번에 왔을 때 정말 서운했습니다.”

"아니 뭐라고? 뭐가 그렇게 서운했단 말이냐?“


외할머니가 깜짝 놀란 얼굴로 조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때 외할머니께서는 저희 어머니의 잘못을 탓하면서 자꾸만 우셨습니다.”

"그래서? 그럼 내가 없던 일을 거짓말로 꾸며서라도 했단 말이냐?"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뭐더란 말이냐?“


"어머니께서 아무리 잘못이 있다 해도 어쨌든 그분은 지금 엄연히 저의 어머니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외할머니께서 욕까지 하면서 저희 어머니 흉을 보시는 바람에 정말 민망해 차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외할머니를 뵙기가 거북해 찾아뵐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구나, 내가 잘못했다. 부끄럽게도 외할미가 오히려 어린 너만도 못한 행동을 하고 말았구나.”


외할머니는 조헌의 깊은 효성과 공경심에 감동했다. 그리고 다시는 조헌 앞에서 함부로 계모의 험담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뒤, 그 소문은 계모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계모는 조헌의 지성과 효성에 크게 감동하여 지금까지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그 후부터 계모는 자신이 낳은 네 명의 자식보다 조헌을 더 끔찍이 사랑하게 되었고, 친자식보다 그의 봉양을 받기를 원하였다.


그 후, 조헌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금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자 계모는 밤낮으로 통곡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 내 평생에 이런 훌륭한 인물을 다시 만나 볼 수 있으랴, 비록 다른 어미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내 아들이었느니라.”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난 효성을 몸소 실천한 조헌, 그의 지극한 효성은 바로 '지성이면 감천' 이란 말을 현실로 승화시킨 참된 교훈이며 본보기라 하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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