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을 거역한 송명흠(58)
[송명흠. 조선 영조 때의 학자(1705~1768)]
영조 때에 강직하기로 소문난 송명흠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지런히 글을 익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훌륭한 학자로서 세상 사람들의 촉망을 받게 되었다.
"허허, 이 나라에 그토록 학식이 깊고 결백한 사람이 있었던고! 요즈음 세상에 보기 드문 인재로다! 여봐라! 그를 당장 조정으로 불러들여 이 어려운 난국을 나와 함께 해결하도록 하렷다!"
송명흠의 소문을 들은 왕은 당장 그를 불러들이도록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송명흠은 한사코 왕의 명령을 사양하였다.
“황공하오나 사양하겠습니다. 소인이 그동안 글공부를 부지런히 한 것은 결코 벼슬을 얻거나 조정에 나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세상의 바른 진리와 이치를 깨닫고 인간으로서 올바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공부를 조금 했을 뿐이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도세자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왕은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사람들을 어전으로 불러들였다. 신들은 물론이고, 초야에 묻혀 살고 있는 이름난 학자들까지 왕의 부름을 받고 모여들었다. 지금까지 나라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해오던 관례대로 다 같이 모여 의논을 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송명흠도 왕의 부름을 받아 그 자리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여러 대신들과 학자들은 마치 꿀먹은 벙어리처럼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세자를 죽이기로 굳힌 왕의 결심이 확고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왕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했다가는 당장 어떤 불벼락이나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갑자기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송명흠이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한 말씀이오나 이 세상에 아무리 악명 높은 제왕들이라 해도 자기 자식을 죽이는 야만적인 행위는 저지르지 않았사옵니다. 제발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무엇이 어쩌고 어째? 여봐라! 당장 저자를 밖으로 끌어내렷다!”
아니나 다를까. 크게 노한 왕은 송명흠을 당장 어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고는 은밀하게 신하 한 사람을 불러 명령하였다.
"속히 저자의 뒤를 따르거라! 그리고 저자가 집에 도착하는 대로 곧 왕명으로 형을 집행하러 왔다고 호통을 치렷다! 만일 그때 저자가 짐을 원망하는 기색 없이 순순히 형을 받으려 하거든 목숨을 살려 주고, 목숨이 아까워 변명을 늘어놓거든 단칼로 목을 쳐라!“
그리고 왕은 신하에게 칼 한 자루를 내주었다. 송명흠의 진심을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아! 마침내 이 목숨은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
송명흠은 어전에서 쫓겨나는 그 순간부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지 못하게 될 것을 직감하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송명흠이 집에 도착하자 조금 뒤에 곧 왕이 보낸 신하가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대는 전하의 명예를 더럽혔으며, 또한 욕되게 하였으니 이 칼을 받아 마땅하렷다!”
송명흠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칼을 받기 위해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러자 신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칼을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
그러자 송명흠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찌 미천한 소생이 어명을 거역하겠소. 어서 내 목을 치시오!“
송명흠의 대답 소리를 들은 신하는 높이 들었던 칼을 내리고 비로소 왕의 뜻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신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송명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마마께옵서 신하를 농락한 것이오.”
"그렇소.”
"허어, 예부터 아무리 폭군인 제왕이라 해도 신하를 함부로 농락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또한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오. 왕명은 매우 중대한 것인데 어찌 되돌릴 수가 있겠소. 어서 내 목을 쳐서 왕명을 헛되지 않게 해 주오.“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송명흠의 이야기를 들은 신하는 너무나 기가 차서 오히려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 된 채 벌어진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