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겨울나무는 겨울에도늘 쉬지 않고 봄을 꿈꾼다]

by 겨울나무

수진이는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르듯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나 바둑이하고 잠깐만 놀다가 들어올게. 응?”


“안 돼! 너 오늘도 종일 바둑이하고 같이 붙어서 놀았는데 그래도 뭐가 모자라서 또 그모양이니?”

“이잉~~, 엄마, 그러니까 오늘은 잠깐만 놀다가 들어온댔잖아. 이잉~ 엄마~.”


수진이는 콧소리로 응석까지 부려 가면서 엄마를 못 살게 졸라댑니다.


“글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지 왜 자꾸만 귀찮게 그러니? 그러다가 공부는 언제 할래? 제발 좀 정신 차려라, 응?”


“이잉~~~ 엄마, 잠깐만 놀고 오겠단 말이야. 응?”

"으이그으, 너 정말 바둑이한테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리고 너 지금 바깥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알기나 하는 거니?“


“응, 알았어. 그러니까 잠깐만 놀다가 들어온다니까.”


수진이는 이렇게 대꾸하기가 무섭게 엄마의 승낙이 떨어지기도 전에 밖으로 뛰쳐 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저 애 고집은 못 말린다니까. 으이구우.”


엄마는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럴 줄 미리 알았더라면 괜히 바둑이를 얻어왔다는 후회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수진이는 오래전부터 늘 강아지를 갖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강아지를 한 마리 사 달라고 엄마에게 매달리며 졸라 대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는 마침내 예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얀 바탕에 까만 점이 드문드문 박힌 아주 토실토실하고 귀엽게 생긴 바둑이였습니다.


“엄마, 이 강아지 어디서 난 거야?”


강아지를 보자 수진이는 입이 함박만큼이나 크게 벌어지면서 물었습니다.


“마침 이모네 개가 새끼를 낳았거든. 그래서 네가 늘 강아지를 타령을 하기에 한 마리 얻어오게 된 거란다. 어떠니? 정말 귀엽고 예쁘게 생겼지?“


“응, 우와! 정말 예쁘다!”


수진이는 이만저만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어찌나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그 뒤로는 강아지와 잠시도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날부터 수진이는 틈만 나면 강아지하고 붙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젖혀두고 오직 강아지만 옆에 끼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엄마나 아빠가 더럽다고 야단을 치고 말려도 강아지 입에 들어갔던 음식도 같이 나누어 먹을 정도로 강아지와 함께 지냈습니다.


밖에는 예쁜 바둑이 집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단을 맞으면서도 가끔 밤이 되면 방으로 안고 들어오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동생처럼 같은 이불을 같이 덮고 꼬옥 껴안은 채 같이 잠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바둑이를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수진이는 오늘도 눈을 뜨기가 무섭게 바둑이 집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바둑아~~ 바둑아~~ 엄마아! 바둑이가 어디로 간 거지?”


다른 때 같으면 목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바둑이 집에서 달려 나오곤 했던 바둑이입니다. 그리고 반가움에 꼬리를 힘껏 흔들면서 수진이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재롱을 떨었을 바둑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바둑이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바둑이 집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 글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둑이 집에 있었는데……?“

수진이가 하도 펄쩍 뛰는 바람에 한창 부엌일을 바쁘게 하고 있던 엄마도 뜨끔하며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진이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뭐라구? 조금 전에도 집에 있었다구?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바둑아! 바둑아! 바둑아!”


수진이는 금방 울상이 된 얼굴로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바둑이를 부르면서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바둑아아! 바둑아아!”

수진이는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뛰며 바둑이를 목청껏 부르고 또 불러 봅니다. 수진이가 바둑이를 외쳐 부르는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르며 온 마을로 퍼져 나갑니다.


바둑이를 목청껏 불러대는 수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된 엄마는 그만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바둑아아! 바둑아아, 어디 있니?”


날씨가 몹시 추운데 수진이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바둑이를 찾아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아침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굶은 채, 저녁때까지 오직 정심없이 바둑이만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수진아, 제발 그만 좀 하고 제발 이제는 집에 가서 기다려 보자니까, 으응?”


수진이의 뒤를 건성으로 따라다니던 엄마가 몇 번이고 달래도 보고, 애원도 해 보았지만, 수진이의 고집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날, 그토록 고집을 부리며 하루 종일 마을을 쏘다니던 수진이는 마침내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부터는 심한 감기와 몸살로 그만 자리에 눕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끙끙 앓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든 수진이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바짝 타버린 입으로 다시 바둑이를 찾으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다시 헛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둑아! 우리 바둑이 어디 갔니?”

"수진아, 이제 제발 그만 좀 하라니까, 응?“


엄마가 그런 수진이를 얼른 부축하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진이는 초점 잃은 멍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가 곧 엄마를 알아보고는 조금 안심이 된 듯 다시 눈을 힘없이 감아 버립니다.


”에구머니나! 아직도 열이 이렇게 펄펄 끓고 불덩이 같으니……. 그러게 엄마가 고집 좀 그만 부리라고 그랬잖아.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이니, 으응?“


엄마는 울상이 된 얼굴로 수진이를 껴안은 채 어쩔 줄을 모릅니다. 수진이의 이마는 여전히 불덩이처럼 뜨겁기만 합니다.


그다음 날,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수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주사도 맞고 약도 타다가 먹였습니다. 그러나 감기와 몸살에 걸린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수진이의 몸살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몰랐습니다.


“엄마, 도대체 바둑인 어디로 간 거야 응?”


잠이 들었던 수진이가 눈을 뜨기만 하면 기운 빠진 목소리로 여전히 바둑이만 찾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으면서도 수진이를 달래 주기에 진땀을 뺍니다.


“이제 바둑이 걱정은 그만하고 어서 네 병이나 낳을 생각을 해보렴. 아마 바둑이는 너무 영리하니까 틀림없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렴.”

엄마는 수진이의 그런 모습을 더 이상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몹시 괴로운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진이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지만 차마 바둑이가 죽었다는 말만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틀 전 밤의 일이 있습니다.


“깨앵, 깨애앵~~ 깨앵, 깨개갱~~~”


갑자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바둑이의 비명에 놀란 엄마가 먼저 단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놀란 표정이 되어 둥그렇게 된 눈으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혹시 우리 바둑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에요?"

”글쎄, 바둑이가 무슨 일이지?“


엄마와 아빠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금 앞마당에서는 바둑이가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뜬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대며 뒹굴고 있었습니다. 입에는 허연 게거품을 질질 흘리면서 몹시 괴로운 듯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바, 바둑이가 아마 쥐, 쥐약을 먹은 거 아닐까요?“

”글쎄, 그런 것 같은걸.“


아빠와 엄마는 급히 비눗물을 타서 먹이고 배를 문질러 주기도 하면서 바둑이를 살려보려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바둑이는 그런 정성에도 아랑곳없이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빠는 그다음 날이 밝기도 전인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양지바른 곳에 바둑이를 정성껏 묻어 주었습니다. 수진이가 눈치를 채기 전에 얼른 묻어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급히 서둘렀던 것입니다.


"여보, 이 일을 어떡하면 좋죠?"

"어떡하다니? 무얼 말이오?“


“보나마나 수진이가 일어나기가 무섭게 또 바둑이를 찾을 게 아니에요?”


”수진이한테는 바둑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고 그냥 도망을 간 모양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소?“


"글쎄요.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게 해야 되겠죠?“


그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수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하루 종일 바둑이를 찾아다니면서 야단법석을 떨다가 결국 몸살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담!’


다시 잠깐 잠이 든 수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욱 어두워만 가고 있었습니다. 수진이를 계속 속이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문득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봅니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는 어느새 함박눈이 소리 없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어느새 눈꽃이 소담스럽게 덮여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옳지!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엄마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표정이 갑자기 샛별처럼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엄마는 내일 당장 시장으로 나가서 바둑이 한 마리를 사 올 생각입니다. 수진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바둑이와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긴 바둑이를 사다가 수진이에게 안겨 줄 생각입니다.


그리고는 겨울이면 잎이 모두 떨어졌다가 봄이 오면 새잎이 다시 돋아나는 겨울나무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조용히 들려줄 생각입니다.


모두가 떨어져 죽은 처럼 보이던었

겨울 나뭇잎들도 그 이듬해 봄이 돌아오면 어기없이 되살아나듯 죽었던 바둑이도 다시 살아서 되돌아오게 된 것이라고…….

‘아마 모르긴 해도 수진이에게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겨울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면 어쩌면 모든 걸 이해하게 될 거야!’


엄마는 만일 앞으로 바둑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수진이가 행여나 눈치를 챈다 해도 지금처럼 걱정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다시 잠이 든 수진이의 표정도 어느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모처럼 엷은 미소가 번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