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남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가끔 힘든 일을 하지 않고도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심지어는 교묘한 방법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정한 짓을 해서라도 좀 더 잘 살아보려는 그릇된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다.
가령,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었다 해도 그것은 아주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위이며, 또한 절대로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만일 그런 그릇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 질서는 그만큼 문란해지고 파괴되며, 그 대신 바르고 선량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저지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 하겠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많은 것을 가지려고 힘쓰지 말고 당신의 욕심을 줄이기에 힘쓰도록 하여라, 인간이란 각자 자신이 가진 욕심을 억제하지 않으면 평생토록 부족과 불만 속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명언은 인간이 욕심을 버렸을 때, 보다 평온한 마음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 주는 참된 진리이며 명언이 아닐 수 없겠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문신인 이율곡은 그와 같은 인간들의 욕심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늘 가난한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인정이 많고 어진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율곡이 한때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을 팔아 버린 적이 있었다. 집을 팔게 된 사연을 알고 보니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사연인즉,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을 차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더구나 이율곡이 살고 있던 그 집은 집 한 칸 마련할 돈이 없이 늘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그나마 처가에서 마련해 준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 집을 팔아서 남을 도와주려고 하다니 정말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율곡은 어쩌다 여유가 조금 생길 때마다 그런 마음으로 늘 남을 돕다 보니 정작 이율곡 자신은 양식마저 떨어져 끼니를 거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뭐라고? 이율곡이 양식이 떨어져 가끔 굶고 지낸다고? 그래, 자신은 그렇게 굶고 지내면서 남을 도와주고 있다고?”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한 사람이 그 소문을 듣고 당장 이율곡의 집으로 쌀 몇 가마를 보내왔다. 그 친구는 당시 재령 군수로 재직하고 있는 최입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율곡은 그런 친구의 호의가 달갑지 않다는 듯, 쌀을 싣고 온 심부름꾼에게 엄하게 명령하였다.
"당장 이 쌀을 도로 싣고 가지 못할꼬!“
이율곡의 불호령에 심부름꾼은 할 수 없이 쌀을 도로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인들이 너무 아깝다는 듯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대감님, 그건 친구분의 성의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이옵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까운 쌀을 도로 보내시다니 정말 너무하십니다.”
그러자 이율곡이 점잖게 입을 열어 말하였다.
"모르는 소리 좀 그만들 하거라. 그 쌀이 그저 옛 친구가 보내준 것이라면 내가 왜 안 받았겠느냐. 그러나 아까 가지고 왔던 그 쌀은 관가의 재산이니 그것을 받는 것은 마땅히 죄가 되느니라.”
"그 쌀이 관가의 물건인지 아닌지를 대감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모르는 소리, 나라의 대신을 지낸 나도 이렇게 넉넉하지 못한데, 하물며 지방 사또의 형편이야 오죽하겠는가. 보나마나 그 쌀은 백성들한테 거두어들인 나라의 재산이 틀림없을 게야.”
누군가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자신의 분수에 어울리는 충분한 부(富)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 모두를 다 가진 주인이 되어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며, 또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고 하였다. 그러기에 행복과 부는 항상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율곡이야말로 진정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를 누리다가 일생을 마친 인물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