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우리 인간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지켜야 할 것과 금지해야 할 것을 정해 놓은 약속이다.
또한,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이 바로 법이다. 그러나 간혹 권력을 과시하며, 그리고 명예가 높다고 하여 자기 혼자만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가 혼란해지기도 한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김안국은 김안로와 어릴 때부터 매우 친한 친구 사이였다.
친구인 김안로는 나이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처세술로 인하여 그는 일찍이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앉게 되었다.
그는 높은 자리에 앉은 뒤에도 자신의 그릇된 버릇을 고칠 생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을 앞세워 점점 더 그릇된 일을 더 많이 저질러 가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비겁한 행동을 밥 먹듯 하고 있었지만, 그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말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슬이 시퍼런 그의 권력이 두렵고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인 김안국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서슴지 않고 꾸짖고 나무랄 때가 많았다.
어느 날, 김안국은 간신 모리배들의 모함으로 아무 죄도 없이 몇몇 사람들과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소문을 들은 김안로는 은근히 자신의 힘을 과시해 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날 궁리 끝에 다른 사람들은 그냥 놔두고 김안국만 감옥에서 슬쩍 풀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김안로는 김안국의 집을 찾아갔다. 자신이 풀어주게 된 것이라고 은근히 친구에게 생색을 내고 싶은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김안로가 거드름을 떨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간 고생이 너무 많았네. 자네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무사히 풀려나게 되었는지 알고 있나? 그것은 자네가 애석해서 내가 특별히 힘을 썼기 때문이라네. 어흐음.”
그러나 몹시 고마워할 줄 알았던 김안국은 오히려 언짢은 얼굴이 되어 김안로를 나무랐다.
"아니, 그럼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나만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자네는 어릴 때부터 나와는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가 아닌가, 친구가 좋다는 게 뭔가. 그러니 내가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있어야지. 안 그런가? 허허허…….”
“아하, 그랬었군, 어쩐지 나만 나오게 된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네. 그렇다면 난 이 길로 도로 감옥으로 들어가겠네.”
"아니, 뭐, 뭐라고……?"
뜻밖에 무안을 당한 김안로는 벌겋게 된 얼굴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김안국이 다시 친구를 훈계하듯 나무라기 시작했다.
“내가 죄가 있다면 벌을 주어야 함이 마땅한 일이고, 죄가 없다면 다 풀어주는 것이 법일진대, 어찌 자네는 친구라고 해서 나 하나만 풀어준단 말인가. 소위 나라의 높은 자리에 있는 자네가 어떻게 그렇게 법을 어기면서 사사로운 처신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자네처럼 일을 처리해서야 어떻게 이 나라의 법이 공명정대하게 시행될 수가 있겠나. 안 그런가?”
김안로는 결국 무안만 당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뒤, 그토록 권력이 당당하던 김안로는 결국 역적모의에 가담한 죄로 벌을 받아 죽게 되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아첨을 하던 무리들조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발을 뚝 끊고 김안로의 문상도 가지 않았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사람의 집에 문상을 갔다가는 어떤 모함을 받아 죽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인국만은 문상을 가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펄쩍 뛰면서 김안국을 붙잡고 말렸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지만, 이 판국에 그런 역적의 집에 문상을 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 텐데 겁도 없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시오?“
그러자 김안국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나와 그 사람과의 우정은 죽어도 변할 수가 없는 법이오. 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니 내가 문상을 갔다 하더라도 설마 나라에서 그 일로 벌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김안국은 뜻을 굽히지 않고 그 길로 태연하게 문상을 갔다. 그때 김안로의 집에 문상을 온 사람은 오직 김안국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김안국의 성품이 워낙 성실하고 강직했기 때문에 문상으로 인해 김안국의 신변에 어떤 나쁜 일이나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