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편지

by 겨울나무

몹시 무더운 여름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금방 소나기라도 퍼부을 듯 잔뜩 찌푸린 후덥지근한 여름입니다.


지금 나영이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길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나영이의 얼굴과 몸에는 벌써부터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후유~~ 무슨 놈의 날씨가 이렇게 덥담!”


평소에는 늘 표정이 밝고 명랑하기만 하던 나영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닙니다. 오늘따라 몹시 기운이 없고 짜증스런 표정입니다.


“어이구, 이 더운 날씨에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자, 여기 있다. 아빠가 또 너한테 편지를 보내셨구나.”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엄마가 반색을 하며 덥석 안았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침 들고 있던 편지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항공 우편 소인이 찍힌 예쁜 편지 봉투였습니다.


“자, 엄마도 편지 내용이 궁금하니까 우선 편지부터 뜯어 보렴.”


엄마는 몹시 궁금하다는 듯 밝은 얼굴로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따라 나영이는 기쁘다거나 반가운 얼굴이 아닙니다. 그저 시큰둥하고 흥미없다는 표정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편지를 받기가 무섭게 너무 좋아서 호들갑을 떨며 마치 참새처럼 팔짝팔짝 뛰었을 나영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영 그게 아닙니다.


"아, 어서 뜯어 보라니까 왜 그렇게 멀거니 서있어?“

”……!“


갑자기 이상해진 나영이의 태도에 엄마는 편지 봉투를 내민 손이 어색하다는 듯 나영이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습니다.


나영이는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로 편지를 힘없이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아무 말도 없이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무슨 내용인지 엄마가 보는 앞에서 같이 읽어보자니까 왜 그냥 들어가니?“


엄마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어렵게 십여 년이나 감쪽같이 숨겨오던 엄마만의 비밀이 들통이 나지나 않났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나영아, 너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긴 거 아니니?”


엄마는 불안해진 얼굴로 나영이의 방까지 따라 들어오면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


그러나 나영이는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저을 뿐입니다. 그러자 엄마는 더욱 궁금하고 불안해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오늘 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나영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제야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니까 엄마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말란 말이야.“


"아니 얘 말하는 것 좀 봐. 아니긴 뭐가 아니니? 그러지 말고 무슨 일인지 엄마한테 좀 속 시원히 얘기해 줄 수 없겠니?“

"글쎄,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왜 자꾸만 귀찮게 그래?“


나영이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웃어보이기까지 하면서 태연한 척하지만 눈치가 빠른 엄마를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전에는 이런 적이 전혀 없었잖아. 오늘은 아빠의 편지를 보고도 조금도 반가운

얼굴이 아니잖아.“


“…….“


나영이는 한동안 아랫입술만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큰 결심이라도 한듯 겨우 입이 벌어졌습니다.


“옳지. 착하지. 그래, 어서 말해 보렴."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영이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엄마의 마음은 더욱 답답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우리 나영이 착하지, 어서 속 시원하게 말을 좀 해 보라니까."


그러나 지금 마음이 아프고 답답한 것은 아마 엄마보다도 나영이가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가 없습니다. 나영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되면 엄마한테 더 미안하고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휴우우~~~ 하필이면 왜 나한테 이런 슬픈 일이……!”


나영이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 학교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 뒤에 나영이만을 남기 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나영이를 향해 조용히 물었습니다.


“나영아, 이런 걸 물어 봐도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


선생님이 하도 작은 소리로 묻는 바람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았던 나영이의 표정이 금세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번엔 조금 전보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걸 묻는다고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는 마라. 아버지께서는 사고로 돌아가신 거니, 아니면

병환으로 돌아가신 거니? 그리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건 네가 몇 살 때였지?“

“……?”

편지 2.jpg

선생님의 뜻밖의 질문에 그렇지 않아도 큰 나영이의 눈이 더욱 화등잔 만하게 커다랗게 되고 말았습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아빠가 돌아가셨다니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이런 날벼락이 없었습니다.


"네에? 아빠가 돌아가시다니요?“

”그래? 여기 생활기록부에 돌아가신 걸로 적혀 있거든.“


”그건 아니에요. 우리 아빤 지금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계세요. 가끔 저한테 편지도 보내고 계신걸요.“

“그래애……? 아, 그런 걸 여태 선생님이 모르고 있었나보구나.”


“그, 그럴 리가 없어요. 그건 거기 잘못 적혀 있어서 그럴 거예요.”

"음, 알았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잘못 본 모양이구나.“


선생님은 갑자기 큰 실수라도 했다는 듯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급히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정말이에요. 아빠는 며칠 전에 보낸 편지에도 어쩌면 이번 여름 방학에는 집에 한 번 다녀가신다는 약속도 하신걸요. 마침 여름 방학 때 제 생일날이 들어있어서요.”


“그래, 알겠다. 미안하다. 그럼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알았지?”


선생님은 몹시 난처한 얼굴이 되어 이렇게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나영아, 아빠의 소식이 궁금하지도 않니? 어서 봉투를 뜯어보라니까.”


엄마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 줄을 모른 채, 여전히 나영이의 눈치를 살피며 재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나영이가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 나도 이제 다 알아. 그리고 엄마의 마음도 다 이해하니까 더 이상 속일 생각은 하지 마, 응?”


나영이의 엉뚱한 대답에 엄마는 순간 겁에 질린 눈이 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널 속이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니?”

그러자 나영이가 다시 천천히 어른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가 지금까지 나를 속이게 된 마음도 다 알아. 혹시나 내가 아빠가 없이 자라다가 잘못될까 봐 그런 거 아니야?”


“…….”


엄마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나영이의 얼굴만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나영이가 다시 아무 걱정 말라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난 이제야 다 알았어. 내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봐 이 세상에 없는 아빠가 편지를 보낸 것처럼 엄마가 대신 써서까지 나를 속여 왔다는 것도 이제 다 알게 되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모두가 엄마가 꾸며낸 거짓말이 아니고 뭐냔 말이야, 으흐흑…….”


나영이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만 어깨를 들먹이며 그동안 꾹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엄마 역시 그동안 쌓였던 슬픔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마침내 나영이를 덥썩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나영아, 그래. 네 말이 모두 맞았다. 그동안 너한테 못할 짓을 한 것만 같구나. 그동안 너를 속인 이 못된 엄마를 용서해다오. 으흐흑…….”


"아니야. 엄마가 무슨 죄가 있다고 용서를 해달라는 거야. 난 이제 아빠의 편지를 받지 않아도 괜찮고 내 생일날 아빠가 안 오셔도 괜찮단 말이야. 나를 이렇게 끔찍이 사랑해 주는 엄마가 이렇게 내 곁에 있는 걸 뭐, 으흐흑…….”


나영이도 이렇게 어깨까지 흔들며 울먹이면서 엄마의 품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래그래, 고맘다, 나영아, 이제 보니까 우리 나영이도 다 컸구나!”


엄마는 그런 나영이가 오늘따라 몹시 대견스럽다는 듯 나영이를 아까보다 더 힘주어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쏴아~~~ 쏴아~~~”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는 어느새 굵은 소나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퍼붓고 있었습니다.

나영이와 엄마의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까지도 소나기 소리에 묻혀 가슴속이 후련할 정도로 시원스럽게 퍼붓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