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인라인스케이트

by 겨울나무

민수가 놀이터를 향해 허둥지둥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점점 더 힘껏 급히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있는 동안에도 손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바지 주머니로 들어가곤 합니다.


그때마다 주머니 속에서는 만 원짜리 석 장이 손에 만져집니다. 조금 전에 집에서 가지고 나온 돈입니다. 아니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엄마 몰래 훔친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손에 만져질 때마다 민수는 그렇게 신바람이 날 수가 없습니다. 스케이트가 이미 손에 들어오기나 한 것처럼 벌써부터 마음이 들뜨고 흥분이 되면서 가슴 속이 두방망이질을 하기도 합니다.


‘성철이가 먼저 왔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절대로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아까 영민이는 분명히 다섯 시까지 놀이터로 나와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단단히 다짐을 주었습니다.


민수네 집에서 놀이터까지는 아무리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도 10분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에 집에서 일찍 나왔기 때문에 아직 약속한 시간은 넉넉합니다.


"어엉?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급히 놀이터에 다다른 민수의 눈이 금방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영민이나 성철이의 모습이라고는 그림자조차 보이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성철이가 나보다 먼저 와서 이미 다른 친구에게 팔아버린 게 아닐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시간이 일러서 아직 안 온 게 틀림없을 거야!‘


민수는 여전히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영민이가 나타나기만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립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다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민수의 마음은 더욱 더 불안하고 초조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입안이 바작바작 마르고 속도 타들어 갑니다.




바로 오늘 오후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민수야! 너 잠깐만 기다려 봐!”


뒤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민수를 부른 것은 바로 영민이였습니다. 민수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야! 너 왜 가지고 온다고 해놓고 맨날 안 가지고 오는 거니, 응? 너 정말 내 스케이트 살 생각이니, 안 살 생각이니?”


아니나 다를까. 미리 짐작했던 대로 영민이는 스케이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민수는 마치 큰 죄를 지은 듯 우물쭈물 하다가 겨우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해. 며, 며칠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되겠니? 부탁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영민이가 어림도 없다는 듯 다시 딱 잘라 말하였습니다.


"안 돼! 벌써 며칠 짼데? 너 오늘 다섯 시까지 스케이트값 안 가지고 오면 나 그거 성철이한테 팔아버릴 거란 말이야."


"서, 성철이한테 판다구?"

"그래, 우리 반 성철이가 저한테 팔라고 벌써부터 야단이거든.”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민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조차 못한 민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그 스케이트를 성철이한테 팔겠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성철이는 벌써부터 스케이트값을 준비해 놓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성철이는 민수한테 팔려고 했던 것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 사겠다고 이미 약속까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벌써부터 성철이가 저한테 팔라고 귀찮게 따라다니며 졸라대고 있거든. 그래서 난 정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정말 미칠 지경이란 말이야.“


"그래? 그렇다면 며, 며칠만 더 기다려 줘, 응? 틀림없이 내가 살 거란 말이야."


민수는 모처럼 얻은 행운을 결코 성철이한테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글쎄, 안 된다니까. 너 맨날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고 그런 지가 언제니? 그래서 나 오늘 성철이하고 벌써 약속했단 말이야.“


"무, 무슨 약속을 했는데?"

"오늘 다섯 시까지 네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성철이한테 팔겠다고 말이야.“


"다섯 시? 그럼 그때까지 내가 돈을 가지고 오면 나한테 팔겠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어쨌든 난 오늘 다섯 시까지만 기다릴 거야. 그러니까 누구든지 먼저 가지고 오는 사람한테 팔 거니까 정말 사고 싶으면 그때까지 약속을 지키란 말이야.“


”응 알았어. 오늘은 약속 꼭지킬게.“


영민이의 말에 민수는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5시까지 돈을 가지고 오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영민이와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온 민수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빠나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살림살이를 너무나 잘 알고도 남음이 있는 민수였습니다.


오늘따라 시간은 유난히도 빨리 흘러만 갑니다.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한동안 골똘하게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던 민수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아 참, 그렇지! 우선 그 돈을 쓰고 나중에 갚으면 되겠구나!‘


민수는 문득 엄마가 어젯밤에 제법 많은 돈뭉치를 장롱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해두던 모습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 돈은 엄마와 아빠가 여러 날 동안 길거리에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겨다니며 노점상을 해서 한 푼 두 푼 알뜰하게 아끼고 모은 아주 귀한 돈이었습니다.

그런 귀한 돈을 허락도 없이 몰래 가져갈 생각을 하자 이번에는 갑자기 엄마와 아빠의 불쌍한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급했던 것입니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민수야. 너 혹시 인라인스케이트 사지 않을래? 내가 타던 것 말이야.“


영민이가 느닷없이 제가 타고 다니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팔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거 산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런데 그걸 팔겠다고?”


영민이의 말에 민수는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민이가 그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던 민수입니다.


더구나 그 스케이트는 얼마 타지 않았기 때문에 새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값도 안 되는 싼값에 팔겠다는 말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난 다른 걸로 또 살 거야. 우리 아빠가 더 좋은 걸로 사준다고 약속했거든.“

"그래? 그럼 그거 내가 살게.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팔면 안 된다, 알았지?”


민수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선뜻 사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응, 그건 염려 마라. 그럼 돈은 언제 줄 건데?"

"으음……. 돈이 준비되는 대로 곧 줄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줘. 알았지?”


"좋아. 그럼 되도록이면 빨리 줘야 된다? 너 아니더라도 침을 삼키는 아이들이 많단 말이야. 알겠지?”

“응, 알았어. 염려 말라니까.”


민수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미 그 스케이트를 타고 신나게 거리를 멋지게 씽씽 달리고 있는 라.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다른 친구들한테 팔지 않고 제일 먼저 민수한테 팔겠다고 말해 준 영민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민이가 나타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민수는 눈이 빠질 지경입니다. 그러는 동안 약속했던 시간도 어느새 삼십 분이나 훌쩍 지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민수는 점점 더 초조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려 보았지만 아직도 영민이와 성철이의 모습이라고는 그림자조차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거 참 이상하다! 여태까지 안 올 리가 없는데! 벌써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렸나!“


민수는 답답하고 불안해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더 기다려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영민이가 이번에는 급한 마음에 영민이네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숨을 헐떡이며 영민이네 집 근처 공터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아니, 벌써 성철이한테 팔아버린 거 아니야!‘


민수는 마치 못볼 것을 본 듯 그만 뛰어가던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말았습니다.


지금 넓은 공터에서는 영민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성철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보면 더 보나 마나 어느 틈에 먼저 성철이한테 스케이트를 팔아버린 게 틀림없었습니다.


민수는 그만 온몸의 힘이 한꺼번에 쑥 빠지면서 다리가 후둘후둘 떨립니다. 그토록 분하고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습니다.


”짜아식, 어디 두고 봐라!”


민수는 영민이가 그렇게 야속하고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민이만 그런 게 아닙니다. 중간에서 스케이트를 잽싸게 가로챈 성철이도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둘댜 괘씸했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오른 민수는 그 자리에서 곧 발길을 되돌리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민수의 두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집 좀 보지 않고 어딜 그렇게 쏘다니다가 오는 거야?“

"……!?“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민수는 그만 기겁을 하면서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지금 시간에는 으레 집에 아무도 없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어떻게 된 일인지 아빠와 엄마가 먼저 집에 와 있다가 민수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민수는 혹시 몰래 훔쳐 가지고 간 돈이 그 새 들통이 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간이 콩알만큼 오그라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아빠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아, 어서 들어오지 않고 왜 그렇게 장승처럼 서 있는 거니? 아빠가 오늘 큰마음 먹고 스케이트를 하나 사 왔다. 혹시 발에 맞지 않으면 바꾸어야 하니까 어서 들어가서 신어보렴.“


’어엉? 이상하다.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조른 적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걸……!?‘


순간, 민수는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것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민수는 제 귀를 의심하면서 그제야 겨우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빠의 말 대로 지금 마루에는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인라인스케이트가 놓여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영민이한테 사려고 했던 스케이트보다 훨씬 더 좋은 새로 나온 제품이었습니다.


민수가 조금은 민망해진 얼굴로 우물쭈물 하면서 스케이트를 신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부엌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도 덩달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히야~~ 그거 아주 네 발에 꼭 맞는구나! 우리 민수 정말 좋겠다. 이제부터는 우리 민수가 공부 더 열심히 하라고 아빠가 아주 큰마음 먹고 사 오신 거란 말이야, 알았지?"


”…….“


민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입이 짝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민망해진 얼굴로 엄마의 물음에 차마 말은 못하고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후우우-- 하마터면 아빠와 엄마한테 큰 죄를 저지를 뻔했잖아! 그런데 돈은 언제 도로 넣어두지?‘


오늘 민수는 운수가 아주 좋은 날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영민이가 성철이한테 스케이트를 팔아버린 것도 민수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빠,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민수는 곧 하늘을 날아갈 듯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그토록 고맙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민수의 눈에는 어느 틈에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민수가 흘리고 있는 눈물은 틀림없이 아빠와 엄마의 고마움에 보답하고야 말겠다는 각오, 그리고 앞으로는 두고두고 더욱 열심히 효도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의 표현이 아닐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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