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성길 씨네 새해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새해가 돌아왔지만 성길 씨네 가족들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이틀째 어딜 나가지 도 못하고 여전히 방콕 중이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해넘이 해돋이 맞이는커녕 그 어디에도 갈 수가 없다. 이렇게 답답하고 따분한 나날을 보낼 수가 없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성길 씨가 근질근질 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같은 날 ①설밥이라도 내리면 설 기분이라도 날 텐데 그것도 아니고 이거 답답해서 환장을 하겠네!”


성길 씨의 말을 들은 아내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이런 때 눈은 와서 뭘해요. 길이나 미끄럽고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데 교통사고나 더 날 텐데…….”

“하긴 그렇지. 하도 답답하니까 하는 소리야. 옛날 어릴 적에 내가 살던 ②모태에서는 눈이 참 많이 내렸거든. 웬만하면 무릎까지 찰 정도로 오는 것은 예사였으니까 말이야.”


“옛날에는 여기도 많이 내렸다고 하던데 요즘은 그런 눈을 볼 수가 없던데요. 차암, 당신 먼저부터 이가 좀 안 좋다고 하더니 요즘은 어때요?”

“여전히 ③앙니가 좀 아프긴 하지만 코로나가 무서워서 치과도 함부로 갈 수가 있어야지. 어디 그뿐인가. 머리가 이만큼 크게 자랐으니까 좀 잘라야 하는데 ④까까쟁이한테 갈 수도 없고…….”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영이도 끼어들었다.


“아빠만 답답한 줄 알아? 나도 답답해서 죽겠단 말이야.”


“어, 그래? 넌 뭐가 답답한데? 아하, 너희 반에 ⑤딱친구를 만나지 못해서 그러는 모양이구나,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요즘 우리 혜영이도 몸이 많이 ⑥축이 간 것 같은걸!”


“나만 그런가? 내가 보기엔 엄마나 아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아참, 그런데 북한에서는 새해 인사말을 어떻게 해?”


“그건 여기나 마찬가지지 뭐. ‘새해 ⑦축복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거지.”

“호호호……. 그거 참 웃긴다.”


”너 그럼 ⑧정성걸래라는 말은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니?“

”정성걸래?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건 김일성이나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의 액자를 닦을 때는 아무 걸레로 닦지 않는단다. 각 가정마다 특별히 고급으로 잘 만든 걸레를 준배해 놓고 그 걸레로만 닦게 되는데 그걸 정성걸래라고 한단다.“


”호호호……. 정말 웃긴다. 그럼 우리 집에 아빠의 사진이 걸린 액자도 먼지가 많을 텐데 내가 정성걸래로 닦아야 하겠는걸.“


”옛기, 이 녀석아, 아빠가 그럼 김정은이라도 된단 말이니? 하하하…….“


그러자 아내도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호호호……. 그렇게 하렴. 아빠도 우리 가정에서는 그만큼 대단한 분이니까 정성걸래로 닦아보렴. 호호호…….“


아내의 말에 성길 씨도 싫지 않은지 다시 껄껄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럼 내가 우리 집에서는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란 말이지? 허허허…….“

”그렇고말고요. 호호호…….“


가족들 모두가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 * )







※ 참고


① 설날 내리는 눈

② 자신이 태어난 동네

③ 사랑니 ④ 이발사

⑤ 단짝친구

⑥ 살이 빠지다

⑦ 복 많이 받으세요

⑧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액자 닦는 걸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