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내에 위치한 허준 선생의 묘와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릉]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조선 시대의 명의 허준 선생의 묘를 드디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참배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허준 선생의 묘를 참배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허준 선생의 묘가 민간인은 절대로 출입할 수 없는 ’민통선‘ 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이미 잘 알다시피 민통선이란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5~20키로미터의 거리를 동서로 잇는 선을 말한다.
허준 선생 묘의 정확한 위치는 파주시(한국 전쟁 전에는 장단군) 진동면 하포리 산 29에 위치해 있다. 전진교를 건너 약 4~5키로 이상 들어간 비탈진 산기슭이다. 하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낮은 편이어서 차를 세워놓고 도보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낮은 산기슭이다.
허준 선생의 묘는 민통선 내에 있어서 통일교를 통과하거나 전진교를 건너가야 한다. 본인은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삼거리 바로 옆에 있는 전진교를 이용하였다.
임진강을 가로지른 전진교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일단 임진강 이남에 있는 헌병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일단 검문소에 도착하면 헌병들에게 우선 무슨 목적으로 어느 집을 방문하는지 용무와 행선지를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민통선 내에 거주하고 있는 그 집 사람들과 헌병이 직접 통화로 확인한 다음 신분이 확실하다고 인정이 되면 신분증을 회수하고 ’임시‘라는 글자가 크게 찍힌 표지판을 교부 받아야만 검문소를 통과하고 임진강을 가로지른 ’전진교‘를 건너갈 수 있다.
이와 같은 복잡한 절차가 불편하고 번거롭다면 파주시에 미리 답사를 위한 참배 신청을 하면 쉽게 가볼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통일교와 전진교를 통해 임진강을 건너가게 되면 현재 이곳 민통선 안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그중 가장 북단에 위치한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휴전 이후에 바로 맨 처음에 생긴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그다음에는 ’통일촌 마을‘, 그리고 그다음 마지막으로 약 20여 년 전에 ’해마루촌‘이란 20여 채의 마을이 새로 형성되면서 현재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민통선 안에 들어갔다가 용무를 마치고 나올 때는 들어올 때 검문소에서 받은 ’임시‘라는 표지판을 반드시 반납해야만 신분증을 되돌려 받게 된다.
전진교를 통해 임진강을 건넌 뒤부터는 네비게이션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아 바로 불편을 겪게 된다. 그러기에 용무를 보기 위해 행선지를 가려면 길을 잘 아는 사람과 같이 동승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간판이나 안내판을 보고 찾아가야 한다.
조선 중기의 명의 구암 허준 선생(1539~1615)이라고 삼척동자도, 그리고 멀리 중국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명의이다. 그는 양촌, 즉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등촌 2동 능안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2005년에는 서울 강서구에 허준 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그의 의학 기술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이라고 하면 한의학을 공부하는 현대의 학생들은 물론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그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라 하겠다. 유네스코 등재는 2009년에 등재되었다.
이 동의보감은 왕명을 받아 선조 29년인 1596년에 시작하여 14년 뒤인 1610년에 완성을 하여 1613년(광해 5)에 출간되었다.
그후, 중국에서는 이 책을 약 30여 차례나 출간하였으며 일본에서도 두 차례나 출간할 정도로 귀한 유물이 아닐 수 없다.
허준 선생의 묘를 찾아간 날은 2021년 1월 13일이었다. 마침 어제 눈이 많이 내려서 묘를 참배하는데 너무 미끄러워 제대로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맨 위에 있는 큰 묘 하나는 허준 선생의 생모인 영광 김씨의 묘, 그리고 그 아래 두 개의 묘가 있는데 그 왼쪽이 허준 선생 묘, 그리고 오른쪽이 허준 선생의 부인인 안동 김씨의 묘이다. 묘 아래쪽에 있는 건물은 제실이다.
* 참고로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릉도 비무장지대인 고랑포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순왕릉 역시 임진강을 건너가야 한다.
그러나 경순왕릉은 참배객을 위해 그런 복잡한 검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방하고 있어서 누구나 바로 쉽게 들어갈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