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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06. 2021

아직도 원인을 모르는 질병들

[나의 원인 모를 두통의 세월]

우리 나라 인구의 90% 이상이 두통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누구나 대부분 한두 번쯤은 심한 두통으로 고생을 했던 질병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통은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라 한다.      
두통을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첫째,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을 1차성 두통이라 하며, 특정 질병에 의한 두통을 2차성 두통이라 하는데 여기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1차성 두통이라 하겠다.    
또한, 두통의 흔한 원인으로서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경우, 감기를 앓듯이 열을 동반하며 심한 두통의 증세를 나타내는 긴장성 두통과 신경성 두통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뇌종양이나 뇌혈관질환, 그리고 뇌염과 뇌막염 같은 질환이 있을 경우 두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갖가지 두통의 치료는 원인과 증상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병이나 한번 걸리면 고통스럽지 않은 병이 없다. 그러기에 끈질기게 괴롭히는 두통 또한 앓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가를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질환이라 하겠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였고, ’음식점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내가 갑자기 두통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게 된 것은 수많은 세월을 두통에 시달려 보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자그마치 거의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병원에도 자주 가고 진통제도 많이 써보며 시달려 왔으니 음식점 개나 서당 개 정도는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부심(?)을 가져볼 만한 게 아닌가!  






지난 글에도 잠깐 밝혔듯이 나는 그렇지 않아도 당초부터 약골로 태어난 불량품(?)이어서 자주 자리에 누워 앓기도 하고 초등학교 저햑년 때에는 시오리나 되는 학교에 등하교할 때마다 수치스러운 줄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들의 등에 업혀 다니게 되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난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가 없었다. 아니 친구가 아니라 내 또래의 아이들은 나와 같이 어울리지를 않고 나를 볼 때마다 놀리거나 늘 때리곤 하여 매만 맞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정한 친구가 아니라 그들은 내게 늘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이런 저런 병으로 자리에 누워 앓는 중에도 게다가 알게 모르게 두통까지 걸려 시달려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였을 때(50년대 후반)부터는 병원에 가도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매일 진통제에 의존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 약은 ’뇌신‘이란 가루약이 아니면 ’명랑‘이라는 약이었다.      


’뇌신‘이나 ’명랑‘을 먹었다고 하여 두통이 좀 진정이 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두통에 좋다고 하니까 마음이라도 안정하기 위해서 무작정 계속해서 먹은 것 같다.      


나의 두통 증상       


그렇게 두통을 참고 이겨내는 동안 나도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두통은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냥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그 증세가 심해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병원에 급히 달려가서 고작 진통제를 받아 먹어보지만, 그때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두통은 한동안 잠잠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주기적으로 나를 공격해 오며 괴롭히고 있었다. 일단 두통이 시작되면 머리통이 빠개지는 것 같은 통증이 오고 머리에 열이 오르며 눈동자까지 빨갛게 충혈이 되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나를 괴롭히곤 하였다. 으레 온몸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쑤시기도 하였다.


두통 증세가 발작을 할 때는 세상만사가 다 귀찮고 아무리 반가운 사람이 온다 해도 반갑게 맞이할 수가 없었으며 전화조차 받을 수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다 꼴도 보기 싫고 짜증만 고도로 높아지곤 하였다. 그런 증상이 나타날 때는 누가 말을 걸어도 대꾸조차 하기가 싫고 짜증만 나기도 하였다.     


오죽하면 두통뿐만 아니라 온몸이 못 견딜 정도로 쑤시는 바람에 사람이 곁에 보이기만 하면 내 등위에 올라가서 밟아달라고 할 정도였을까.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진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60년대 중반쯤의 어느 날이었다. 난 그때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여러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또다시 그놈의 두통이 도지기 시작해서 할 수 없이 초대받은 집에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러자 그 집 주인이 나의 증세를 물어보더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조금 뒤에 하얀 약봉지에 가루약을 싼 약봉지 하나를 가지고 와서 한번 먹어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10분 뒤에는 감쪽같이 나을 테니 어서 먹어보라고 하였다.      


난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우선 속는 셈치고 약을 물과 함께 마셨다. 지금까지 병원에서도, 그리고 뇌신이나 명랑으로 조금도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그 약이 무슨 효과가 있을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10분 뒤, 나의 두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희한한 일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이린 게 바로 살아가는 즐거움이요, 행복이며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곧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이렇게 맑고 상쾌할 수가 없었다. 나의 생명의 약이었다. 그렇게 신기하기가 짝이 없었다.   

  

나중에 그 약 이름을 알아보니 그게 바로 60년대 중반에 새로 나온 진통제 ’사리돈‘이었다.       


난 그 뒤부터 사리돈을 구입하여 매일 한 알씩 먹게 되었다. 그 결과 언제 두통을 앓았었더나는 듯 머리가 항상 깨끗하고 맑았다. 이만하면 살아갈 의욕도 충만해졌으며 앞으로는 두통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약 2,3 개월이 지나자 그때까지 잠잠한가 했던 두통이 또다시 꿈틀거리며 머리르 들고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매일 한 알씩 먹던 사리돈을 두 알씩 먹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다시는 두통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2,3개월이 지나자 다시 두통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하루 3개씩으로 올렸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또 잠잠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다시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하루 3개씩 먹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또 듣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병원에 다시 가서 상담을 하게 되었다. 하루에 3기씩 약을 먹어왔다고 하였더니 위장과 몸을 모두 버리게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다시 약을 주면서 하루에 한 개씩만 먹으라고 하였다.      

 

그 약명은 사리돈 다음에 나온 ’바랄긴‘이라는 진통제였다. 신기했다. 그 약은 한 알만 먹어도 효과가 나타났다. 이제야 살았구나 하고 그때부터는 ’바랄긴‘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약도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서 거기였다. 사리돈처럼 몇 달이 지나자 두 알 세 알씩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구 뒤로 ’게보린‘ ’타이레놀‘ 등 수없이 많은 진통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것들 역시 모두가 처음에는 한 알만 먹어도 듣다가 나중에는 그놈이 그놈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줄 알면서도 어쩌랴. 내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고 아프니 울며 겨자 먹기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지금 이 시각에도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그날그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리라 생각한다.     

 

80년대 말경, 어느 날 또다시 그놈의 두통이 못 견딜 정도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늘 그렇듯 온몸이 쑤시고 눈이 충혈되어 뜰 수조차 없고 머리통이 곧 빠개질 것처럼 아팠다.  그야말로 앓아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었다.    

  

난 할 수 없이 큰 기대를 걸고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 당시에 MRI 자기공명 촬영기가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원인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큰마음 먹고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머리가 곧 빠개질 것 같은 심한 통증을 느끼며 일단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결과를 보기 위해 다시 세브란스를 찾아갔다. 오늘은 마침내 원인을 찾게 되겠구나 하는 큰 기대를 가지고 일단 의사 앞에 앉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분명히 그토록 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심한 고통이 일어날 때 촬영을 했는데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내겐 아무리 첨단 의학 장비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그럼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결과를 보고 병원을 나오는 길에 병원 복도에서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하는 절친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곧 내게 물어왔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고…….    

 

나는 아무 이상이 없단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 말이 매우 다행이라며 축하한다고 하였다. 난 그래서 짜증스러운 표정이 되어 바로 대답했다.    

  

“이게 어찌 다행이란 말인가? 원인을 모른다는데? 그런 난 평생 이대로 두통을 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아닌가?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받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원인을 모르는 병!    

  

그것은 그 어떤 병원도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누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그저 걸린 사람 본인만이 오롯이 평생 지고 갈 무거운 십자가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 지금까지 공연히 말 그대로 아무 영양가도 없는 나의 치부와 넋두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같은 생각에

  송구스러운 마음 이를 데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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