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되더라]
지난번에 잠깐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이명(耳鳴)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풀어놓고자 한다.
난 평생 두통을 앓으면서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도 많이 해보았고 약도 많이 복용해 보았다. 그래서 두통이 완화된다는 신문 광고를 보기가 무섭게 경남 마산도 단걸음에 달려갔고, 코골이 수술, 축농증 수술도 신문 광고를 볼 때마다 믿고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 보았다.
하지만 운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남달리 체질이 개떡 같아서 그런지 그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모두 부질없는 짓들이었으며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못한 금싸라기 같은 주머니 돈만 축내고 만 꼴이 되고 말았다.
현대 의학은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가끔 ’생로병사‘란 프로를 보면 이 세상에 못 고칠 병은 한 가지도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런 것들 모두가 나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왜 그다지도 병원이란 병원과 그리고 효과가 좋다는 약들 모두가 나와는 그토록 인연이 맞지 않는 것인지 ……!
두통이 먼저였는지 이명이 먼저였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난 오래전부터 두통과 심한 이명 증상까지 함께 껴안은 채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두통과 축농증, 그리고 이명만 가지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며 견딜만 하겠다. 그 밖에도 아무리 병원에 다녀봐도 낫지 않는 몇 가지 또 다른 고질병들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종합병원이 따로 없는 것이다.
이명(耳鳴)을 의학적인 뜻으로 풀이하면, 바깥 세계에 소리가 전혀 없는데도 귀에 잡음이 들리는 현상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귀의 질환이나 정신 흥분 등으로 인해 청신경에 병적인 자극이 생겨서 발생하는 질환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내게는 한갓 헛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런 의학적인 원인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치료 방법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모두들 자신만만하게 고칠 수 있다고 큰소리들은 치고 있지만, 막상 믿고 가보면 그게 아니었다. 왜 이다지도 운이 없는 것인지!
오래전 TV에서는 용각산 광고가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명 또한 그랬다.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닌 무슨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가 귀에서 계속 들리곤 하여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귀뚜라미 소리 같기도 하고 가을 들판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같기도 하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새소리 같은 것이 계속 들려오면서 신경을 자극하며 괴롭히고 있어서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무슨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들이 하루종일 번갈아 쉬지 않고 들려오면서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신문을 보던 나는 몹시 반갑고 기분 좋은 기사가 눈에 띄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꼭 치료를 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전혀 없던 90년대 초여서 TV가 아니면 신문에만 정보를 의존하게 되던 때였다.
오랜 연구 끝에 이명(耳鳴)이란 이명은 모두 자신있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광고를 한 그 병원은 역
시 세브란스였다. 더구나 이명을 오랫동안 연구하여 완치하는 방법의 쾌거를 얻게 되었다는 의사는 바로 내가 축농증 수술을 받을 때 집도 보조로 있던 의사였던 것이다.
난 너무나 벅찬 기대에 부푼 나머지 말 그대로 필이 꽂히기가 무섭게 서둘러 세브란스로 향했다. 그리고 지시에 따라 각종 최신 장비로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검사 방법은 늘 그랬지만 전혀 바깥소음이 차단된 유리로 된 작은 방에 들어가서 큼직한 레시버를 귀에 꽂고 유리로 된 방 바깥에 앉아서 지시를 하고 있는 검사원의 지시에 따라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검사가 약 2,30분간 지속되었다.
검사결과는 1주일 후에 예약한 날짜에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검사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지 않으면 다시 재 검사로 들어가곤 하였다. 감사 방법은 맨 처음과 늘 똑같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1주일에 한 번씩 약 한 달을 다녔으나 여전히 검사는 맨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늘 같은 방법이 반복되고 있었다.
난 차츰 답해지기 시작했다. 금세 나을 수 있을 줄 알고 큰 기대를 걸었었는데, 그리고 신문 기사에는 그 어떤 이명도 자신 있게 완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원인이 밝혀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한 달을 꾸준히 다녔지만, 아직까지 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다니……!
그러나 난 이번 기회에 이명을 꼭 고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그 뒤로도 병원을 열심히 다녔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끈질긴 각오와 오기로 미련스럽게 무려 8개월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8개월 뒤에는 과연 어떨 결과가 나왔을까?
결국은 의사가 힘이 다 빠진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난 너무 허탈했다. 8개월이란 세월을 쫓아다닌 결과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역시 병을 고쳐주겠다는 병원은 많은데 내 병을 고쳐주는 병원은 단 한 곳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시 모르는 게 약이었다.
오늘날, 의학이 그만큼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나는 번번이 속는 줄을 알면서도 지금은 몸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병원을 내 발로 스스로 찾아다니고 있다.
어쨌거나 아쉬운 것은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처럼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오직 그때마다 병원에 다니면서 진통제와 항생제에 의존하며 남용하고 있다. ( * )
* 다음번에는 신장과 요로 결석에 관한 수술 후기를 적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