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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r 03. 2021

자식은 부모에게 배운다

[어떤 효(孝)에 관한 이야기]

지난번 글에도 고려장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올려본 적이 있었다.    

어떤 아버지가 거동까지 불편해서 움직이지조차 못하는 늙은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어린 아들도 아버지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 다다르자 어버지는 어머니를 산속에 내버려 둔 채 산을 내려오게 되었다. 그때 아들이 문득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참, 아버지, 지게를 산속에 내버리고 그냥 오면 어떻게 해요?”     

그러자 아버지가 얼른 대답했다.      

“옛날부터 고려장을 지낸 기게는 그대로 내버리고 와야 한단다. 그래서 우리도 버린 거란다.”      

그러자 아들이 펄쩍 뛰며 다시 지게를 가지고 오자고 말했다.     

“아버지, 지게를 그냥 버리고 오면 나중에 아버지가 늙어서 고려장을 지낼 때 난 지게가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를 지고 올라와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늙은 할머니를 산속에 내다 버리는 것을 보고 아들이 벌써부터 아버지가 늙은 뒤에 고려장을 지낼 걱정부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아차 하고 크게 뉘우치고 놀란 아버지는 그 길로 도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와서 전보다 더욱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도 역시 자식에게 부모가 오히려 효를 배우고 깨우치며 실천하게 된 그와 비슷한 경우의 이야기라 하겠다.  

         

어느 도시에서 일찍이 남편을 여읜 홀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살림살이에 혼자의 몸이 된 홀어머니는 어린 외아들을 키우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고생을 한 보람이 있어 아들은 대학까지 졸업하고 곧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자 가정 형편이 차츰 여유가 생기고 좋아지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은 얼마 뒤에 어여쁜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다. 홀어머니는 이만저만 기쁜 게 아니었다. 이게 바로 고생을 하며 살아온 보람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는 새로 들어오게 된 며느리가 너무나 대견스럽고 귀여워서 하루하루가 여간 즐거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생각과는 달리 시어머니에게 효도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효도하며 잘 모시기는커녕 짐이 된다는 귀찮다는 생각에 차츰 구박까지 하게 되었다.    

  

며느리는 참 간사스러운 사람이었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눈치껏 흘어머니에게 몹시 효도하는 척했고, 남편이 회사에 출근했거나 외출을 하고 집에 없을 때는 홀어머니를 구박하기 일쑤였다. 며느리한테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 뜻을 알아주지도 않았다. 홀어머니는 이만저만 서운한 게 아니었다.     

 

이를 참다못한 홀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불러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조용히 하소연을 하게 되었다.      


“얘, 아들아, 여태까지 내가 가만히 참고 있었지만, 그동안 네 처가 나를 얼마나 구박하고 있었는지 너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     


그러나 아들은 오히려 펄쩍 뛰며 오히려 어머니를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머니도 참, 아마 시어머니를 집사람만큼 잘 모시는 사람도 드물거에요. 너무 잘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공연히 쓸데없는 말씀 하시지 말고 그저 잠자코 계시라고요.”     


듣고 보니 아들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들이 집에 있을 때는 며느리가 그 어느 며느리 못지 않게 홀어머니를 잘 받들며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란다. 네가 집에 없을 때는 얼마나 구박을 많이 하는 줄 네가 몰라서 그러는 거라니까.”     


그러자 아들은 오히려 어머니에게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어머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벌써부터 치매에 걸리신 것도 아니고 왜 그러세요? 예로부터 홀어머니가 외아들을 키워 장가를 보내 놓고 나면 며느리를 미워한다는 말이 있어요. 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아들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요? 제발 앞으로는듣기 싫으니 제 앞에서 더 이상 그 사람 흉은 보지 말라고요!”


홀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며느리도 며느리이지만 아들이 그렇게 서운하고 야속할 수가 없었다.  홀어머니는 그 후로도 며느리의 구박을 받아가면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손자도 어느덧 자라서 중학생이 되었다.      


그 무렵, 근처에 양로원이 생기게 되었다. 의지할 곳 없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양로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소문을 들은 홀어머니는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양로원에 들어가서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었다.   

   

자식을 둔 할아버지 할머니는 양로원에서 받아 주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어떻게 사정을 하거나 속여서라도 꼭 양로원으로 가고 싶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 홀어머니는 어느 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입던 옷가지며 집에서 쓰던 일용품들을 보따리에 챙기고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너와 같이 살 수가 없구나. 그래서 이 길로 양로원으로 갈 테니 너희끼리나 싸우지 말고 재미있게 잘 살거라.“     


”갑자기 양로원으로 가신다고요?“

    

며느리는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그렇게 되기를 바라던 눈치였다.     

 

"그래. 양로원으로 가렫다.”     


"어머님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아마 거기 가시면 더 편하고 사시기 좋으실 거예요.“     


며느리는 홀어머니를 붙잡기는커녕 오히려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홀어머니는 울컥 서러운 마음에 설움이 복받쳤지만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서기로 하였다. 젊어서부터 여자 혼자 몸으로 고생을 하면서 오직 아들 하나 잘 되기를 빌며 키워 놓으니까 결국은 늘그막에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홀어머니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면서 대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 방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중학생인 손자가 할머니를 향해 소리를 치며 물었다.      


“할머니, 갑자기 어딜 가시는 거에요?”     


아마 손자는 지금가지 할머니와 어머니가 밖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홀어머니는 손자를 돌아보며 슬픈 표정으로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래. 나는 지금 양로원으로 가는 길이란다.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너희들끼리 오순도순 재미있게 잘 지내거라.”     


“뭐라고요? 양로원으로 가시겠다고요?”     


손자는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었다.      


"그렇단다. 네 에미가 너무 구박을 하니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단다. 마침 올 데 갈 데 없는 늙은이를 먹여주는 양로원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 가서 의지하고 살아야겠다. 너는 부디 아비 어미에게 효도하고 잘 지내거라.“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하고 대문 밖을 막 나서려고 하자 손자가 다시 급히 할머니를 불러 세웠다.     


“할머니, 잠깐만요! 지금 할머니께서 머리에 이고 가시는 것이 도대체 뭐예요?”     


"내가 입던 옷가지들이란다. 그런데 그건 왜?”     


"그럼 그 보따리 좀 잠깐 보여 주시겠어요?”     


“이 보따리를 봐서 뭘 하려고?”     


손자는 아무 말없이 뛰어나가더니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있는 보따리를 빼앗더니 마루 바닥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보퉁이를 풀어보다가 담요 한 장이 나오자 그걸 꺼내서 마루 바닥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 곧 가위를 갖고 나오더니 담요를 반으로 싹둑싹둑 자르고 있었다.      


며느리는 무슨 일인가 하고 그저 멀거니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할머니가 손자에게 소리치며 묻게 되었다.       


“이 못된 녀석아, 너까지 어쩔려고 왜 할머니 담요를 자르는 거야?”     


그러자 담요 한 장을 똑같이 반으로 잘라 두 쪽으로 만든 손자는 그중 한 쪽을 할머니에게 건네 주며 입을 열었다.      


“할머니, 이 반쪽만 가지고 가세요.”    

 

“아니 뭐야? 반쪽만 가지고 가라고? 너까지 담요 한 장이 아까워서 반쪽만 주겠다는 게냐? 이제 보니까 넌 네 에미보다 더 지독한 놈이로구나. 천하에 못된 놈 같으니라구. 그래 이 할미에게 담요 한 장 주기가 그렇게 아깝다 이거냐?"


“할머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할머니, 할머니가 반만 가져가시고 반은 꼭 남겨 놓아야 된다니까요.”     


“반을 남겨놓아야 하다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얼마 안 있으면 우리 어머니도 늙어서 양로원으로 가야 하는데 반은 남겨놓았다가 그때 엄마가 가져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할머니가 다 가지고 가시면 우리 어머니는 나중에 뭘 갖고 가란 말이어요.”     

손자의 말을 듣고 있던 며느리는 그만 온몸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안색이 확 변하고 말았다.      


'이거 큰일 났구나. 저 녀석이 이다음에 나를 양로원으로 쫓아 내보낼 작정이로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손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며느리는 홀어머니를 구박하다가 늙어지면 양로원으로 쫓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에서 엄마한테 보고 배운 것이 본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크게 당황한 며느리는 곧 홀어머니에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게 되었다.  

    

“어머님, 그동안 제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양로원으로 가시는 일은 그만두세요, 제가 앞으로는 어머님을 정말 극진히 잘 모실게요.”    

 

결국, 며느리는 크게 뉘우치면서 그 날부터 홀어머니를 그 어느 며느리 못지 않게 극진한 효도를 하며 잘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게 변해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도리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겠다. 그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이며 효라 하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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