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얼굴 가리개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시장에 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들고 온 짐에는 반찬거리들이 제법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성길 씨가 시장바구니를 얼른 받아들며 물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사왔기에 ①저자바구니가 가득한 거야?“


”많기는요. 그럭저럭 사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그리고 이번에는 갑자기 아내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듯 펄쩍 뛰며 물었다.


”아니 당신 어쩌자고 지금까지 ② 얼굴가리개도 안 하고 돌아다닌 거야?“


”어이구, 안 하기는요. 그랬다가는 큰일 나게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벗은 거죠.“


성길 씨가 바구니를 주방에 들어다 놓고 나서 안심을 한 듯 다시 물었다.

”으음, 그랬군. 난 또 깜빡 잊고 안 쓰고 다닌 줄 알고 놀랐잖아. 그럼 이 건거니(반찬)감들은 다 어디서 사온 거지?“


”어디서 사 오기는요. 시장에 가서 사 왔죠.“

”뭐라고? ③장마당엘 갔었다고? 아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 위험한 데를 왜 갔어? 가까운 ④가가에 가서 사 오지 않구선? 이 사람 이제 보니까 큰일 날 사람이네.“


”호호호……, 그렇지 않아도 가까운 데 가서 간단히 사 오려고 했더니 집에서 가까운 가게에는 물건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도 그렇지 다음부터는 아무리 물건이 없어도 가까운 데 가서 사도록 해. 잠깐이라도 방심했다가는 큰일 난단 말이야. 요즈음에도 확진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는 거 몰라서 그래?“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더 조심할게요. 그나저나 지난번 구정 땐 시장 바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던데요.“

아내가 조금 무안해진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자 성길 씨의 눈이 다시 둥그렇게 되어 되물었다.


”아니 코로나가 점점 더 극성인데 구정 때 장마당이 섰단 말이야?“


”네, 난 몰랐었는데 시장이 섰었대요. 아마 구정이라 그랬나 보죠.“


”아무리 구정 ⑤마감고비라고 해도 그렇지 거리 두기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시장은 왜 서게 하는 거야?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도대체 이 사람들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거 차암.“


”그러게요. 이렇게 위험할 때 시장이 서게 한다는 것은 저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나저나 요즈음에는 화장품 가게들도 잘 안 된대요.‘


“그건 왜?"


”아무래도 마스크를 늘 쓰고 다녀야 하니까 화장을 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하니까 그렇겠죠.“


”아하, 그것도 그렇겠군! 얼굴가리개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다 보니 굳이⑥ 분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⑦분크림이나 립스틱 같은 화장품들도 자연히 덜 쓰게 되겠지.“


”그렇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처럼 돈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래요?“

”그건 안 그래. 아무리 돈이 좀 든다고는 해도 여성들은 화장도 하고 멋을 내야 되는 거 아닌가? 당신처럼 아름다운 미모를 그놈의 얼굴가리개로 덮고 다니니 예쁜 얼굴이 무슨 소용이 있느냔 말이야. 안 그래?“

”아이고, 또 비행기 태우시네. 예쁘긴 뭐가 예뻐요. 괜히 입에 바른 소리 좀 그만하시라고요. 호호호…….“

”허허허…….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니라 정말이라니까. 당신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미인이라니까 그러네. 그나저나 어서 코로나가 물러가서 당신이 예쁜 ⑧ 갈음옷을 입고 마음껏 멋을 내고 돌아다닐 날이 와야 할 텐데 그거 차암.“


”누가 아니래요. 후유~~~“


”그러게나 말이지. 후유~~~“


성길 씨와 아내는 생각만 해도 답답한 듯 오늘도 가느라단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 )






※ 참고


① 시장바구니 ② 마스크 ③ 시장 ④ 가게 ⑤ 대목

⑥ 분칠하여 곱게 화장하다 ⑦ 파운데이션 ⑧나들이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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