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봄은 왔는데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벽에 걸린 달력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던 성길 씨가 깜짝 놀란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보,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경칩이네. 그럼 우수는 언제 지난 거지?"

“아마 우수가 지난 지도 한참 되었을걸요.”

“그럼 우수가 벌써 ①거달에 지났다고? 당신 말이 맞네. 2월 18일이 우수니까 거의 보름이나 지났네. 세월 참 빠르군!”


달력을 들춰보던 성길 씨가 새삼 놀란 듯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경칩도 되었으니 그동안 땅속에 있던 ②하늘닭들이 ③조댕이가 떨어지면서 기지개를 켜고 저희들 세상이 될 테니 얼마나 신이 나겠어.”


“그러게나 말이죠. 사람들도 그놈들처럼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겨울잠을 푹 자다가 봄이 돌아오게 되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하! 이제 알겠다. ④ 량식이나 ⑤ 급료 걱정 때문에 그러는 거지?”


“누가 아니래요. 두말하면 군소리죠.”


“하긴 그렇군. 허어, 앞으로 살아나갈 생각을 하니 정말 ⑥ 따분한걸.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⑦구멍수가 있다던데 우리 형편이 늘 이렇게 ⑧상빈하겠어? 언젠가는 좋은 날도 돌아오겠지!”


“누가 아니래요. 그놈의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당장 힘은 들어도 앞으로는 그런 희망이라도 가지고 살아가야지요.”


성길 씨와 아내는 한동안 힘겹고 답답한 듯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길 씨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다시 말문을 열었다.

“참, 작년에 입던 내 ⑨ 절약바지는 어디 있지?”

“장롱에 잘 두었지 그게 어딜 가요?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찾아요?”


“응, 난 혹시 오래 입은 옷이라 당신이 ⑩ 데진 거 아닌가 해서 그랬지. 날씨가 더워지면 가끔 그걸 입어야 할 거 아니야?”

“어이구, 그렇게 멀쩡한 걸 버리긴 왜 버려요. 그리고 3월달에도 추운 날이 많아서 그 바지 입으려면 아직 멀었다고요.”


“알았어요. 알았어. 우리 따뜻한 봄이 오면 아무리 어렵긴 해도 어떻게 해서라도 세 식구끼리 오붓하게 한번 나들이나 가보려고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나들이요? 그거 좋죠. 그런데 이게 없어서 항상 탈인 거죠.”

아내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여주면서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마련해 볼 테니 당신은 걱정말라고.”


나들이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 사람의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 )






※ 참고

① 지난 달 ② 개구리 ③ 입 ④ 양식 ⑤ 생활비 ⑥ 난감하다 ⑦ 돌파구

⑧ 가난에 쪼들려 마음이 상함 ⑨ 짧은바지 ⑩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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