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운전면허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성길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2월도 중순이 되자 해쪼임량이 많이 길어진 거 같아.“

아내가 대답했다.


”길어지고 말고요. 입춘이 지난 지도 꽤 오래 됐잖아요. 내일 모레면 벌써 3월인걸요. 그런데 당신 요즈음 무슨 걱정 있어요?“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뭐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 아닌 게 아니라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즈음 가끔 잠이 잘 안 오는 걸 보면 ②부득면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식구들 벌어먹일 걱정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너무 걱정 말아요.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니까 어떻게 되겠지요. 그보다는 우선 당신 건강부터 챙겨야 해요. 그리고 당신 요즈음 흰머리가 하나둘 느는 것 알고 있어요?“


”알고말고.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③머리물감도 사다 발라야 될 것 같은걸.“


성길 씨가 이렇게 대꾸하고 나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아참, 당신 따뜻한 봄이 오면 무슨 일 하고 싶은 거 없어?“


”왜요? 내가 하고 싶다면 당신이 들어줄 수 있어요?“


”아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신이 좋아하는 일인데 무슨 일이든지 들어주고말고. 그게 무슨 일인지 어서 말이니 해 봐.“


”후후훗, 내가 하고 싶은 건 돈이 좀 들어가는 일이어서 좀 어려울 거예요.“


”돈이 들어간다고? 그게 무슨 일인데?“


”운전면허요.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인데 나도 당신처럼 운전면허를 따가지고 마음껏 돌아다녀 보고 싶거든요. 얼마나 멋져요. 운전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


”그래? 하지만 운전은 좀 곤란한데?“


”그걸 배웠다가 만일 당신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운전은 절대로 실수가 없어야 되거든. 자칫하다가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불행이 벌어진단 말이야.“

”으이그, 돈이 없으면 없다고 해요. 부득이 하고 싶다는 건 아니니까요.“


”그게 아니라니까. 내가 홀아비가 될까 봐 정말 걱정이 돼서 그러지. 그리고 당신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무슨 이야기인데요?“


”옛날에 어떤 교수가 초보운전 시절에 막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 앞 ④건늠길에 도착하자 갑자기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는 거야.“


”그래서요?“


”그래서 당황한 나머지 ⑤어망결⑥정거대를 밟는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⑦가속답판을 힘껏 밟았다지 뭐야.“

”그래요? 그래서요?“


”그때 마침 안심을 하고 건늠길을 건너가고 있던 그 학교 여학생이 그만 교수가 몰던 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는 거 아니야?“


”그래요? 어머 참 끔찍한 일이네요.“


”그래도 당신 운전면허 따고 싶어?“


”그렇고말고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겠어요? 그래도 꼭 배우고 싶은걸요.“


”우와! 우리 마누라 배짱 한번 대단하네. 좋았어. 그럼 따뜻한 봄이 오면 내가 먼저 연수부터 시켜줄게. 그런데 운전도 우선 ⑧눈정신이 있어야 하거든.“


”알았어요. 고마워요. 당신이 가르쳐 주기만 한다면 열심히 배워 볼게요.“

”알았어. 당신은 눈 정신이 좋으니까 아마 금세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나저나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나 물러갈는지 워언.“


성길 씨는 다시 코로나 걱정에 표정이 갑자기 우울해지고 있었다. ( * )







※ 참고

① 일조량 ② 불면증 ③염색약 ④ 횡단보도 ⑤ 얼떨결

⑥ 브레이크 ⑦ 엑셀레이터 ⑧ 눈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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