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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r 12. 2021

역시 달리기가 최고야!

[MBC 라디오 ‘여성시대 ‘단필충’에 방송]


(註) 이 이야기는 오래전  MBC 라디오 ‘여성시대 ‘장용의 단필충’에 방송으로
나간 글을 다시 소개해 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억조차 아련한 아주 먼 옛날, 더 정확히 말해 1963년 12월 31일, 그 날은 바로 내가 논산 훈련소로 입한 날이었다.
 
 오직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군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경험들을 했겠지만, 그때의 군대 생활은 지금 생각해 봐도 그야말로 혹독하고 맵기가 이를 데 없었다.      


왜 그다지도 군기는 엄했던지!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고, 돼지 꼬리 잡고 순대를 찾는다더니 훈련병들에게 떨어지는 그 모든 동작은 ‘0,5초 이내’라는 명령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였던가. 매일 어김없이 매를 몇 대라도 맞거나 고된 기합을 받아야 하루를 보낼 수 있었고, 게다가 식욕이 좋은 한창 피 끓는 젊은 나이에 늘 배가 고픔을 참다못해 다 성장한 나이에 젖을 못 먹은 어린애처럼 남몰래 눈물을 훌쩍이며 살아가는 배고픈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난 마침내 그 유난스럽게 추운 날씨에 그야말로 코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겹고 고된 훈련을 모두 무사히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기 위해 배출대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 나와 같이 훈련을 받은 다른 전우들은 하루 이틀 만에 하나둘씩 모두 부대 배치를 받고 잘들 풀려나가는데 오직 나만 배치를 못 받은 채, 배출대에 남아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게 된 것이 아닌가. 부대 배치를 받고 그 지겹기만 했던 훈련소를 쉽게 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나에게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환희의 날은 돌아오고야 말았다. 비록 다른 전우들보다 늦기는 하였지만 나 역시 꿈에도 갈망하던 부대 배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때, 배출대에서 보낸 열흘이란 기간은 마치 10년을 보낸 것보다 훨씬 더 지겹고 신병 훈련보다 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생각지도 못했던 보람은 있었다. 명을 받아 가게 된 곳은 대구 영천에 있는 육군 부관학교였기 때문이었다.      


훈련소에서 내게 부여된 주특기는 부관 병과였다. 이제 부관학교에 가서 8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나면 어느 부대로 가든 인사행정의 보직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있었다. 그때 나와 같이 배치를 받은 전우들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100명 안팎의 인원이 되지 않았나 기억하고 있다.   

     

설레는 마음, 그리고 기대 반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훈련소의 배출대를 출발한 우리 일행들은 어느덧 해가 어슷어슷한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말로만 듣던 대구 영쳔에 있는 육귝부관학교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미 사방이 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어두컴커만 가운데 앞으로 우리들이 8주 동안 내무생활을 하게 될 2층으로 지어진 막사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그저 얼떨떨하고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트럭에서 내린 우리 일행 모두는 명에 따라 곧 그 막사 앞 작은 연병장에 집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인솔자의 명령에 따라 어디선가 대가하고 있던 선임병들이 힘차고도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의 걸음걸이 그리고 일거일동은 마치 외국 영화에서나 본 독일 병정들의 동작보다 더 씩씩하면서도 절도가 있어서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선임병들이 그러게 구령에 따라 우리들 앞에 절도 있게 와서 서자 곧 인솔자의 박력있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부터 막간을 이용하여 너희들에게 우선 우리 부관학교의 교가를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교가를 배우는 요령은 지금 너희들 앞에 서 있는 선임병들이 먼저 1소절을 부르고 난 뒤에 너희들은 그냥 따라서 부르기만 하면 된다.


단, 교가 1절을 다 부른 다음에는 너희들의 목구멍 검사를 실시하겠다. 목구멍을 검사를 하는 이유는 젖먹은 힘을 다해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절을 다 부른 뒤에 너희들 목구멍에 피가 맺혔는지 아닌지를 조사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교가를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은 다음 문제이다. 목구멍에 피가 흐르고 안 흐르고에 따라 그만큼 우리 부관학교의 교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불렀는지 아니면 우습게  생각하고 불렀는지를 검사하겠다는 것이다. 알겠나, 모르겠나?”

    

“예, 알았습니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 속에 잔뜩 겁에 질린 우리 동료들은 얼어붙은 듯 숨소리조차 하나 함부로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자신도 모르게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자, 그럼 반동 준빗! 하나, 둘, 셋, 넷!”     


선임 사병들은 인솔자의 구령에 따라 일제히 다리를 약간 벌림과 동시에 양쪽 손을 절도있는 동작으로 허리에 갖다 댔다. 마치 로봇 인간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고 있는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그렇게 박력이 넘쳐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들 역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선임 병사들의 움직임에 따라 그대로 다리를 약간 벌림과 동싱 두 손을 허리에 갖대 댔다. 그리고 곧 구령에 따라 난생처음 듣는 부관학교 교가를 따라서 부르게 되었다.   


  태백준령 정기 뻗은 서라벌 옛터에
 너도 나도 모였다. 필검의 용사
 
선임 사병들의 교가 선창이 끝나고 마침내 목청이 찢어져 나갈듯한 복창을 부르는 동안 마침내 1절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는 약속했던 대로 우리들의 입을 크게 벌리고 있게 한 다음 목청 검사가 시작되었다. 목구멍에 피가 맺혔는지 그렇지 아닌지를 검사하는 몹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플래시로 맨 첫째 번에 있는 동료의 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던 인솔병이 성이 나서 소리쳤다.     

 

“야! 이새끼야, 그걸 교가라고 부른 거야? 목구멍이 멀쩡하잖아?”     


그리고는 바로 그의 주먹이 동료의 뺨을 무지비하게 가격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다음에는 조인트(군화로 정강이를 걷어참)를 가격하고 있었다. 졸지에 뭇매를 당한 동료는 곧 그 자리에 쓰러진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교가를 불러보자며 이번에도 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그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면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 정도로 일단 끝난 것만 해도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물론 다른 일행들도 모두 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이번에야말로 어떻게 해서라도 피가 나올 정도로 교가를 불러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도 다시 선임병들의 교가 선창에 따라 우리들의 복창은 이어졌다. 몹시 긴장한 우리들 모두는 이번에야말로 결코 피가 나오게 하겠다는 각오로 목청껏 교가를 따라 불렀다. 그건 교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돼지의 멱을 딸 때 나오는 소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만일 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서라도 상처르 내야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불타는 정열을 총과 펜으로 얍!

 배우고 닦으며 적군을 무찌른다.      


그렇게 해서 교가가 다시 끝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목구멍 검사는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별명이 있을 때까지 잠깐 휴식을 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후유우~~~”     


우리 일행들은 이제야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비록 그 자리에 선 채 서서 취하는 휴식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뒤 웬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웬 기간 사병 하나가 내게로 슬며시 다가오고 있었다. 계급장을 자세히 바라보니 일병이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반말로 나에게 위압적인 명령하는 것이 아닌가.   

    

“야! 너 잠깐 나 좀 따라와!”     


나는 다시 잔뜩 겁먹은 표정이 되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무슨 일인가 하고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계급은 작대기 하나인 이등병, 그리고 그는 작대리가 두 개인 일병 이어서 내게는 마치 하느님보다 더 높고 무서운 계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막사와 막사 사이를 앞장 서서 익숙하게 이리 돌고 저리 돌며 아무 말 없이 계속 돌고 있었다. 나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겁먹은 목소리로 물어보게 되었다.    

  

“자꾸 어딜 가시는 것인지요?”
 
 그러나 그의 대답은 너무나 위압적이며 내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따라오라면 따라오는 거지 무슨 이유가 많아 짜샤!”


 그는 결국 어느 으슥한 막사 뒤까지 나를 끌고 왔다. 그리고는 문득 걸음을 멈추며 뒤로 돌아서더니 나에게 위엄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무섭고 공포스러운 목소리를 들어보기는 난생처음인 것 같았다.


 
 “너 지금 신고 있는 그 군화 새 거지?”
 
 아하! 그제야 나는 그가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새 군화와 바꿔 신으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군화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군화 코에 약간의 상처가 생겼던 것을 생각하고 얼른 변명을 늘어놓게 되었다.
 
 “아닙니다. 제 군화는 객개전투 훈련을 받다가 철조망에 찢겨 구두코가 조금 찢겨졌습니다.”     


그는 잠깐 손가락으로 내 군화의 코를 확인해 보더니 다시 명령했다.      


“응, 이 정도면 괜찮아 얼른 벗어!”     


그리고는 허리를 잔뜩 숙인 자세로 자신의 군화 끈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난 속절없이 군화를 빼앗기게 됐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도 별 도리없이 허리를 굽히고 군화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난 군화를 빼앗기면 절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에 구두끈을 풀다 말고 갑자기 숙이고 있던 그의 가슴을 군화발로 힘껏 걷어찬 다음 죽을 힘을 다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창 도망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군화발에 걷어차여 나동그라진 채 꼼짝도 못할 줄 알았던 그는 생각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역시 가슴을 부여잡은 채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추격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잡히기만 하면 곧 죽여 버리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한 것처럼…….
 
 그 모습을 보게 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 가슴을 진정하면서 조금 전에 우리 일행들과 같이 모여 있던 장소를 향해 더욱 정신없이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컴컴한 어둠, 그리고 난생처음 대하는 생소한 장소라서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죽을 기를 쓰고 36계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젖먹은 힘을 다해 힘껏 달리고 있던 나의 목에 그 무언가가 심한 충격을 주면서 걸리는가 했더니 그 충격에 의해 난 그만 그 자리에서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몹시 고통스럽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지만 그대로 쓰러진 채 신음을 하며 엄살을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내가 무언가에 걸려 쓰러졌다가 급히 일어나서 달리고 있을 때 나를 계속해서 뒤쫓고 있던 일등병 역시 내가 쓰러졌던 바로 장소에 오더니 나처럼 그도 심하게 나동그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그의 쓰러진 모습을 한가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조금 전처럼 또다시 무언가가 나의 목을 가격하는 바람에 난 이번에도 또 별도리 없이 ‘캑’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나를 끈질기게 바짝 뒤쫓고 있던 일등병 역시 내가 쓰러졌던 자리에 오기가 ‘억’소리를 내며 무섭게 나동그라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마 그렇게 대여섯 차례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서고,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나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되풀이되다가 난 마침내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마침내 조금 전에 우리 일행들이 모여 있던 연병장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난 그제야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재빨리 우리 일행들 속으로 무사히 스며들고 말았다.
 
 ‘후유, 십 년은 감수했네!‘
 
 난 여전히 두 방망이질을 하며 마구 뛰고 있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 뒤, 나중에 자세히 알고 보니 내가 죽을힘을 다해 도망을 칠 때마다 가끔 목에 걸렸던 것은 막사 앞마다 빨래를 널기 위해 굵은 철사로 팽팽히 연결해서 드문드문 매놓은 빨랫줄이었다.      


아마 그때 누군가가 우리들이 쫓고 쫓는 숨이 막히고 박진감이 넘치는 광경을 중계방송이라도 했더라면 영화도 그보다 더 숨 막히는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그보다 더 리얼하며 박진감 넘치는 영화도 없었으리라.
 
 아참,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잠깐 내 자랑을 한 가지 하고 넘어가야만 할 것 같다.    

  

난 부관학교 교육을 마친 뒤, 바로 육군본부 부관감실(지금의 삼각지 전쟁 기념관 자리)로 배치를 받아 복무하다가 그 부대에서 전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육군본부에서는 천여 명이나 되는 사병들을 대상으로 체력을 알아보기 위한 마라톤 경기가 있었다. 난 그때 마라톤에 참가하여 2등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때 못 뛰는 사병들만 모여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군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아슬아슬하고 숨 막혔던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평소에 남보다 달리기 체력이 월등했던 덕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 아마 내가 달리기 기능이 좀 부족했다면, 난 그때 일등병한테 잡혀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그에게 잡혀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맞아 크게 다쳐 불구의 몸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아찔했던 그 옛날의 추억을 회상해 보곤 한다.
 
 그러기에 역시 운동 중에 운동은 뭐니뭐니 해도 ’달리기가 최고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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