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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pr 23. 2021

운전대 잡기가 겁난다

[교통사고 체험기①)]

운전을 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뜻밖의 교통사고는 당할 수 있다!      


‘구기터널’은 은평구 불광동 4거리에서 종로구 구기동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구기터널을 이용해 본 사람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은평구 불광동에서 구기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S자 모양으로 이리저리 몇 차례 굽은 곡선 길을 약 2k 정도를 달려야 터널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나도 한때는 그 터널을 매일 이용했었다. 불광2동이 집이었고, 직장이 삼선교 부근(지하철 한성대 입구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구기터널을 통과한 뒤에 한참 내려가다가 좌회전을 하여 평창동 방향으로 한참 올라가다 보면 다시 북악터널을 또 한 번 통과해야 하는데 그때(터널을 넓히기 전)는 터널이 편도 1차선이어서 출퇴근 시간에는 터널을 통과하기가 여간 짜증이 나고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북악터널을 빠져나갔다 해도 다시 돈암동으로 넘어가는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사방에서 몰려드는 차들이 편도 1차선을 끼어들며 넘어가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치열한 눈치 싸움이요, 출근 전쟁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난 궁리 끝에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북악터널 방향으로 가지 않고 부암동쪽으로 가서 북악스카이웨이를 자주 이용하곤 하였다.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신호도 없고 차도 별로 붐비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1989년 겨울의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그날 나는 마침 당직이어서 아침을 서둘러 먹고 일찍 출발하여 여유롭게 구기터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그날은 자동차도 별로 없고 한적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구기터널에 거의 다 다다랐을 무렵, 저 앞에서 승용차 한 대가 S자로 굽은 길을 제법 속도를 내며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그 차도 1차선을 달리고 있었고 나도 1차선을 아무 생각 없이 여유롭게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속력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만 눈 깜짝할 사이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1차선을 속력을 내며 달려오고 있던 상대방의 차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가 했더니 갑자기 자동차의 뒷부분이 빙 뒤틀려 미끄러져 회전을 하면서 중앙선을 넘어 내 앞으로 돌진해 오는 것이 아닌가!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육안으로 잘 보이지는 않앗지만, 겨울철이어서 도로에 얼음 즉, 블랙 아이스가 잔뜩 깔려있었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무시하고 속력을 내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순간, 난 살아남기 위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핸들을 바짝 꺾으며 피해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항력이며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꽈당! 쿵!”     

상대방의 차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차의 앞쪽 부분을 심하게 받아치는가 했더니 그 순간 내 차는 어느 새 공중으로 붕 뜨며 날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뜻밖의 사고였기에 난 순간 아찔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저 핸들만 있는 힘을 다해 꽉 잡은 채 그대로 차에 앉아서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를 썼다. 

     

그때만 해도 구기터널 입구로 가는 길은 편도 3차선이어서 차도는 꽤 넓은 편이었다. 거기에 갓길까지 합하면 편도 4차선이나 되는 넓은 도로였다.      


그런 넓은 도로였지만 1차선에서 상대방 차와 심한 충돌을 받은 충격으로 내 차는 거짓말처럼 공중으로 뜨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인도에 서 있는 은행나무까지 날아가서 은행나무 가로수를 완전히 부러뜨리고야 말았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은행나무를 부러뜨릴 때 받은 충격으로 내 차는 다시 뒤로 튕겨나가는가 했더니 가속에 의해 다시 앞으로 돌진해 나가더니 또 다시 다른 은행나무 가로수를  ‘쿵!’하고 들이받고 나서야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자동차 뒷바퀴는 차로에, 그리고 앞부분은 인도에 걸쳐 있었다. 그러나 범퍼에 부딪친 두 번째 은행나무는 다행히 가속이 약했던 탓인지 상처만 크게 나 있을 뿐 부러지지는 않았다.  

    

가끔 액션 영화를 보게 되면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흥미롭게 그리고 실감나게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아닌 내가 직접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채 그렇게 공중을 날아보며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자동차가 뒤집히거나 불이 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난 한동안 운전석에 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뒤에 내 몸을 살펴보게 되었다. 다행히 아픈 곳은 없었고 천운이었는지 현재로서는 상처가 난 곳도 없는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사고를 낸 상대방 자동차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여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방 자동차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내 자동차는 본넷은 물론,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지고 우그러들었으며 앞 유리창까지 깨지고 엉망이 된 상태였다.     

 

상대방의 자동차도 분명히 어딘가 심하게 찌그러지긴 했겠지만, 다행히 시동은 꺼지지 않았는지 어느 틈에 흔적도 없이 뺑소니를 치고 말았던 것이다.   

   

1989년, 그때는 CCTV는 물론, 휴대폰도 없었고 좀 가진 사람들만이 자랑스럽게 ‘삐삐’라는 것을 휴대하고 다닐 때였다.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급히 보험사나 카센터, 그리고 집으로라도 연락을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난 한동안 혼자 벌벌 떨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자동차를 그대로 그 자리에 버려둔 채, 가던 길을 되돌아 불광 4거리 방향으로 약 1키로 남짓한 인도로 급히 뛰기 시작했다. 


불광4거리에 파출소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급한 대로 경찰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파출소로 달려간 나는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도움의 손길을 뻗어보았다. 경찰에게 말하면 그런 사고쯤은 친절히 쉽게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경찰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친절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안절부절을 못하며 자초지동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경찰은 전혀 급하지 않다는 듯, 그리고 마치 제 일이 아니라는 듯 그런 태연한 표정으로 거만스러운 태도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경찰이라면 국민들의 어려움을 무엇이든지 친절히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는 고마운 사람들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지만, 그리고 틀림없이 친절히 도와주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는 힘을 다해 허겁지겁 찾아갔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나의 얼굴을 마주 보며 성의껏 설명을 듣는 것도 아니었다.      

의자에 거만스럽게 다리를 길게 뻗고 앉은 채 전혀 급하지 않은 일이라는 듯 느긋하게 등을 보이고 앉은 채 가만히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나에게 그제야 나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지금 사고가 났다는 자동차가 어떤 상태로 있는 거죠?”     


“자동차 앞부분은 인도에, 그리고 뒷부분은 도로에 걸쳐진 채 그대로 걸쳐 있습니다.”     


“그럼 다른 자동차들의 교통 방해가 안 되도록 조치해 놓도록 하세요. 그리고 사고가 난 지  얼마나 지났죠?”     

“아마 10분이나 15분쯤 됐을 것 같은데 그 차 좀 잡아주실 수 없습니까?”     


“에이, 그럼 그 자동차는 이미 시내를 빠져나가도 멀리 도망쳤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고가 난 자동차나 얼른 교통방해가 되지 않게 조치해 놓도록 하세요.”     


 난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찾아간 다급한 사람에게 이럴 수는 없었다. 난 비로소 경찰에 대해 난생처음으로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가끔 다른 때 보면 교통사고가 나기가 무섭게 앵앵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경찰차와 견인차가 잘도 모여들곤 하던데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 마음을 진정한 뒤에 다시 경찰에게 되묻게 되었다.    

  

“그럼 사고가 난 제 차는 어떻게 치워놓아야 할까요?”  

   

“그런 개인적인 일을 일일이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요? 사고를 낸 사람이 알아서 해결해야죠.”     


이런 변이 어디 있을까! 갈수록 태산이었다. 입맛이 씁쓸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경찰은 그날로 당장 파면감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경찰직을 수행하기에 참 편하고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씁쓸한 감정을 억누르며 파출소에서 나온 뒤, 이번에는 파출소 건너편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갔다.      


맨 먼저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를 당해서 직장에 갈 수 없는 형편이라는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우선 안 사람에게 교통사고가 났으니 잠깐 와 달라는 연락을 하게 되었다.     

조금 뒤, 깜짝 놀란 안 사람이 택시를 잡아타고 곧 공중전화 부스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 택시를 세 사람이 함께 타고 다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고 현장에는 내 자동차가 엎어진 채 그대로 있었다. 본넷 부분에서는 여전히 연기인지 수증기인지 모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고 현장의 어지러운 광경을 살펴본 기사는 이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몰라 가슴만 바작바작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런 나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된 기사가 자기가 어딘가 가까운 공업사에 가서 견인해 달라고 말해 줄 테니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더니 어딘가로 급히 달려갔다. 아까 그 경찰에 비하면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한동안 길에 서서 초조하게 기다리다 보니 조금 뒤, 견인차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스럽게 울리며 달려왔다. 그제야 살았다는 생각에 난 눈이 번쩍 띄었다. 견인차 뒤에는 걱정이 되었는지 아까 연락을 해주었던 택시 기사도 따라오고 있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마침내 견인차에서 급히 내린 기사가 내 차를 이리저리 한동안 살펴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 있었다.  


“우와아~~ 이거 대형사고로군!”    

 

그리고 여기저기 조금 더 살펴보더니 다시 한마디 입을 열었다.      


“이 자동차 절대로 견인해 갈 수 없어요.”     


우선 급한 대로 일이 해결될 줄로만 알았던 나는 다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놀란 표정으로 얼른 되묻게 되었다.      


“왜 견인해 갈 수 없다는 거죠?”     


“이렇게 심하게 사고가 난 차를 끌고 가다 보면 10중 8,9는 연료탱크가 폭발하면서 불이 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자신 없어요. 미안합니다.”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걸요.”      


견인차 기사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견인차를 몰고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견인차도 못 끌고 간다는 자동차를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한동안 속이 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택시기사가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말을 걸어왔다.   

   

“저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보아하니 시동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조심스럽게 몰고 공업사로 가는 게 어떨까요?”      

그야말로 나에게는 그보다 더 반가운 뜻밖의 구세주 같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불안한 얼굴로 다시 되묻게 되었다.      


“견인차가 끌고 가더라도 불이 나기 쉽다던데 그냥 끌고 가다가 불이 나면 어쩌려고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불이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몰고 가보겠다는 거죠. 그 대신 저한테 하루 일당은 주셔야 합니다.”      


“아, 그야 물론이죠.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그러니까 아주 조심을 해서 몰아봐야지요. 만일 가다가 불이 나면 다 같이 급히 뛰어내리기로 하고요.”     


택시 기사는 이렇게 말하더니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는 자동차에 조심스럽게 올라타더니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엉망이 되고 찌그러든 자동차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자동차는 삐그덕, 덩컹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옆에 타 보세요.”     


택시 기사는 자신의 택시를 도롯가에 그대로 주차해 놓은 채 나를 바라보며 어서 타라고 권하고 있었다. 요즈음 같으면 그런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만일에 자동차가 가다가 불이라도 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별도리 없이 비장한 각오를 하고 일단 조수석에 올라앉았다. 안 사람은 위험하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나중에 연락할 테니 우선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하고 되돌려 보냈다.       


“덜커덩, 삐그덕……”     


자동차는 여기저기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그런 사고를 당하고도 다시 굴러가고 있다니 참, 명이 질긴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는 그렇게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지만, 곧 자동차에 불이 붙어 ‘펑’ 소리를 내며 폭발을 할 것만 같아 이만저만 불안한 게 아니었다. 만일 그렇게 불이라도 난다면 급히 뛰어내릴 각오를 단단히 하면서……. 


그래서 그런지 택시 기사는 사람의 걸음걸이보다 더 느린 아주 느린 속도로 글러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는 몹시 불안했다. 침이 마를 정도였다. 택시 기사의 표정을 슬며시 바라보니 그 역시 몹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탈없이 굴러가다가 이윽고 불광동 어느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였다. 앞에 적색 신호등이 켜진 상태였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는데도 택시 기사는 그것을 모두 무시하고 그냥 그대로 운행하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깜짝 놀라 기사에게 소리쳤다.   

    

“앗! 멈추세요! 지금 빨강 신호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잖아요!"  

    

그러자 택시 기사가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차는 지금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로 불이 날 것 같아요. 이렇게 천천히 가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차에 치일 일도 없을 거예요.”  

   

난 기사의 대답을 듣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횡당보도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 부서진 차를 몰고 가고 있는 우리들을 흘금흘금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주행하고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더 초조하고 조마조마하였다. 만일에 꼭 멈추어야 할 일이 생기게 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불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그날이 일요일이라서 문을 연 공업사가 별로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기사가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있는 공업사를 알고 있어서 그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마침내 어느 자동차 공업사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 은평구 대조동쯤에 있는 공업사였던 것 같다.   

     

그 공업사에는 일요일인데도 제법 직원들이 많이 나와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이구, 사고가 크게 났군요. 이 차는 너무 파손되어서 폐차할 수밖에 없어요.”     


사장쯤 돼 보이는 사람이 차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폐차를 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차를 거기서 여기가 어딘데, 그리고 위험한데 어떻게 끌고 왔느냐고 책망하듯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난 폐차를 해야 된다는 말에 다시 한번 수리를 해서 운행하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을 해보았다. 그러나 너무 부서져서 절대로 안 된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난 너무나 아까웠다. 새로 구입한 지 2년이 채 안 되는 자동차였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매달려 봐야 아무 소용이 없겠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대로 폐차해 달라고 하였다. 맥이 빠졌다. 


요즘 같으면 폐차를 할 때 단돈 몇십만 원은 받았을 텐데 그땐 그게 아니었다.    

  

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자동차를 그대로 남겨둔 채 공업사를 나오고 말았다. 돈 한 푼 받지도 못하고 그냥 넘겨주기를 그렇게 불안하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 종일 고생만 짤짤히 하고 만 셈이었다. 솔직히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자동차 한 대를 그대로 잃어버리고 만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서운했다.      


공업사를 나온 나는 택시기사에게 우리 집 주소와 이름을 대고 내일이라도 우리 집으로 와 달라고 하였다. 하루 일당을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도 생판 모르는 남의 일을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다니 그렇게 고마운 분이 없었다.    

  

요즈음 같았으면 CCTV나 휴대폰이 있어서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아마 가해 차량을 바로 잡아서 충분한 보상도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참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목숨만 잃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리 조심을 하고 운전을 해도 언제 어느 때 어떤 사고가 발생하게 될지 모른다는 값진 교훈을 남겨준 대형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뒤로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항상 방어운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그 뒤에도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의해 억울하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고 지금도 거의 40년 동안 무사고 운전을 하며 여전히 거리를 달리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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