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난 너를 좋아해

by 겨울나무

꽃샘추위가 차츰 물러가는가 했더니 어느새 새봄이 왔습니다.


앉은뱅이 제비꽃과 민들레 등 갖가지 봄꽃들이 앞을 다투어 기지개를 켜며 봄맞이 준비로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들판에는 어느 틈에 연둣빛 색깔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곱고 예쁜 옷을 갈아입기에 바쁩니다.

양지바른 산기슭에도 진달래꽃들이 하나둘씩 연분홍 색깔의 꽃망울을 터뜨리기는 일로 분주하기만 합니다.


풍경이 아름답기는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울타리마다 활짝 핀 개나리꽃들이 함빡 미소를 짓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복숭아와 살구꽃도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맞이 준비에 한창입니다.


윤숙이는 아까부터 넋을 잃은 채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봄 경치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도 선생님은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지금 윤숙이는 전혀 선생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저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가끔 선생님의 설명이 너무 재미있어서 까르르 웃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조차 꿈결 속처럼 아득하게 들려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바른 자세로 앉아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을 윤숙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수업 태도가 영 엉망입니다.


“윤숙이는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그렇게 한눈을 팔고 있지?”


벌써부터 선생님은 윤숙이의 그런 태도를 눈치챈 모양입니다.


“…….”


그러나 윤숙이는 대답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습니다.


“윤숙아! 내 말이 안 들려?”

“……?”


윤숙이는 그때야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저만치 앞자리에 앉아 있는 성만이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힐끗 바라봅니다.


성만이의 눈이 순간 윤숙이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그러자 성만이의 얼굴이 금세 벌겋게 되면서 급히 윤숙이의 시선을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성만이의 그런 모습을 본 윤숙이는 이번에는 책상 위에 푹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윤숙아, 무슨 일이니? 너 어디가 아픈 모양이구나?”


오늘따라 이상해진 윤숙이의 태도를 본 선생님이 어느 틈에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


윤숙이는 여전히 아무 대꾸도 없이 책상에 엎드린 채 고개만 젓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까지 밝기만 하던 교실 분위기가 금방 어둡게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오늘따라 윤숙이가 왜 저러지?”

“그러게 말이야.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긴 거 아니야?”


아이들도 궁금함을 참다 못해 한 마디씩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 없어요?”


이번에는 선생님도 더욱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윤숙이의 태도가 이렇게 갑자기 달라진 것은 바로 성만이 때문이었습니다.



윤숙이는 약 두 달 전, 도시에서 이곳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윤숙이는 처음부터 여느 도시 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어쩌다 도시에서 전학을 온 다른 아이들을 보면 도시에서 생활했던 이런저런 일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 무슨 큰 자랑거리나 되는 듯 늘어놓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윤숙이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전혀 도시에서 자란 티를 내지도 않았지만, 생김새 또한 그 누구보다도 예뻤습니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착하고 고와서 그 누구와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런 윤숙이였기에 선생님은 물론 아이들 모두가 좋아하고 따르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야! 너 공부만 잘하면 그만인 줄 알아? 그리고 선생님이 특별히 귀여워 해주시니까

이젠 눈에 보이는 게 없지?”


갑자기 성만이가 윤숙이의 뒤를 따라오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윤숙이는 그만 너무나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윤숙이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성만이는 원래 학교에서는 물론 마을에서까지 짓궂기로 유명한 개구쟁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마음씨 곱고 착한 윤숙이어지만 속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습니다. 하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한테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그건 오해야.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나보다도 더 잘할 수 있게 되거든.

그리고 내가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라고 생각해. 우리 선생님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거든.”


윤숙이의 말에 성만이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꾸하였습니다.


“그래, 너 잘났다고. 너 지금 나한테 충고하는 거니? 정말 눈꼴이 시어서 더 이상 못듣고 있겠네. 내 말이 듣기 싫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란 말이야. 알겠어?”


“……!”


성만이는 이렇게 대꾸하고는 어느 틈에 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윤숙이는 정말 너무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도 성만이는 틈만 나면 윤숙이를 따라다니며 짓궂게 굴고 괴롭혔습니다. 그럴 때마다 윤숙이는 참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성만이 말대로 내일이라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랗게 몇일을 보내던 중 바로 오늘 공부 시간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치던 윤숙이의 눈이 금방 접시만큼이나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웬 쪽지 하나가 책갈피 속에 끼어있는 게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성만이가 보낸 쪽지였기 때문입니다. 정말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성만이 이름이 적혀 있는 쪽지였으니까요.


윤숙아, '

그동안 너를 괴롭혀서 미안해.

모든 걸 용서해 줘.

사실 난 너를 처음부터 너무 좋아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너를 더욱 괴롭혔는지도 몰라.

윤숙아, 정말 미안해.

너를 너무 좋아하는 성만이가 '


그날 윤숙이는 학교 공부를 어떻게 끝냈는지 모릅니다.


그날도 윤숙이는 혼자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윤숙아, 너 아직도 화가 안 풀어진 거니?”


그때 갑자기 뒤에서 또다시 성만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성만이의 표정은 몹시 미안하다는 듯 윤숙이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몰라!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창피까지 주더니 이제 와서 사과는 무슨…….”


윤숙이는 보기조차 싫다는 듯 가볍게 눈을 흘기며 성만이를 패했습니다.


“정말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런다고 약속할게. 응? 진짜란 말이야.”


피하고 있는 윤숙이를 계속 가로막으면서 빌고 있는 성만이의 표정이 오늘따라 그렇게 재미있고 우스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푸후훗…….”

성만이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윤숙이의 입에서 그만 웃음이 터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넌 모든 건 다 좋은데 단 한 가지 짓궂어서 그게 탈이란 말이야. 그리고 키도 좀 작은 편이고. 뭘 먹고 키가 그렇게 안 자랐니? 호호호…….”


윤희의 입에서는 그만 큰소리로 웃음보가 터져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 윤희를 보자 성만이도 덩달아 신바람이 나서 크게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하하하……. 키가 작아서 걱정이라고? 그건 조금도 걱정하지 마라. 옛말에 작은 고추가 더 맵다고 하잖았니.”

“호호호 ……. 그래, 그건 그렇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성만이와 윤숙이는 모처럼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의 햇살이 몹시 대견스럽다는 듯 두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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