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Mar 20. 2021

싫은 걸 어떡해!

[사고력신장 창작동화]

즐거운 설날 아침입니다.     


식구들 모두 아침 일찍부터 할머니 댁에 세배를 드리러 가기 위해 분주하게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누난 왜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어? 누난 할머니 댁에 안 갈 거야?”   

  

어느 틈에 한복을 의젓하게 차려입은 동식이가 은주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싫어. 난 알 갈래. 너나 가란 말이야!”   

  

동식이의 말에 은주는 뽀로통해진 얼굴로 톡 쏘듯이 대꾸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소리를 들은 엄마가 나섰습니다.     


“은주야, 너 정말 할머니 댁에 안 갈 생각이니? 얼른 옷 갈아입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대체 왜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느냔 말이야?”     


“난 할머니 댁에 가기 싫다니까 왜 자꾸만 같이 가자고 이 야단이냔 말이야?”     


"아니, 뭐라고? 너 도대체 할머니 댁에 가기 싫다는 이유가 뭐니?”     


엄마는 갑자기 휘둥그래진 얼굴이 되어 물었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말하고 또 말했는데 그걸 몰라서 또 물어?”    


은주는 지지 않고 여전히 톡 쏘는 목소리로 대꾸하였습니다.     


“저런, 망할 것 같으니라구. 아무리 할머니가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좋은 날에도 할머니를 뵙지 않겠다구?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할머니도 점점 더 너를 미워하시는 거란 말이야. 제발 엄마 속 좀 그만 썩이고 좋은 말 할 때 어서 옷이나 갈아입으란 말이야.”     


“싫어! 난 오늘 혼자 남아서 집을 보고 있을 테니까 동식이나 데리고 갔다 오란 말이야, 할머니는 동식이만 귀여워해 주시잖아.”   

  

"아니, 정말 얘가 누굴 닮아서 이러게 고집을 피운담.“     


“치이, 닮기는 누굴 닮아. 엄마가 아니면 아빠를 닮았겠지.”     


“아니 얘 말하는 것 좀 봐. 하이고, 내 참 기가 막혀서…….”     


엄마는 너무 기가 막힌다는 듯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은주가 할머니를 이처럼 싫어하게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은주가 생각하기에 할머니는 참 못마땅하기 그지없는 분이었습니다. 아니, 못마땅할 정도가 아닙니다. 은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은주네 집에 오셨을 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은주네 집에 오시자마자 몹시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자리에 눕자마자 은주와 동식이를 불렀습니다.     


“얘들아, 어이구, 어이구 등살이야! 할미가 등살이 발라 못 견디겠구나. 누가 좀 와서 주물러 다오!”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은주와 동식이가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은주는 할머니의 등을 주무르고, 동식이는 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 그래. 어이구, 시원하다. 어이구 시원해! 그런데 우리 동식이는 시원하게 잘 주무르고 있는데 은주 넌 뭐하는 게 그 모양이니? 그게 주무르고 있는 거야?”     


할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낯을 찡그리며 은주에게 핀잔을 주고 말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주물러 드리면 돼요?”     


은주는 조금 무안하면서도 서운해진 얼굴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쯧쯧쯧……. 그걸 몰라서 묻니? 동식이처럼 살살 주물러야지 계집애가 우악스럽게 그게 뭐냔 말이야.”     

"네, 할머니 알겠어요. 이제부터는 그럼 아프시지 않게 살살 잘 주물러 드릴게요.”     


은주는 할머니의 말이 몹시 서운했지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힘을 덜 주면서 정성껏 조심스럽게 주무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할머니는 갑자기 벌컥 화까지 내면서 은주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야야! 그게 주무르고 있는 거니? 그렇게 주무르기가 싫으면 차라리 그만두렴. 그게 어디 시원하라고 주무르는 거니? 간지럼을 태우고 있는 거지.“     


은주는 그만 무안해진 얼굴로 할머니의 등에서 손을 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쫓기기라도 하듯,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속이 몹시 상했습니다.      


“어이구, 시원하다, 시원해!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복덩이 강아지가 나왔누. 역시 우리 손주가 최고라니까, 호호호…….”     


방 안에서는 여전히 동식이가 귀여워 못 배기겠다는 듯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은주는 그런 할머니가 너무 야속하고 미웠습니다. 공연히 속이 상하고 분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한테 항상 혼자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동식이마저 미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할머니가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치이, 할머니는 도대체 왜 그러지. 맨날 동식이만 좋아한단 말이야. 여자인 나보다 남자가 그렇게도 좋단 말인가?’     


은주는 날이 갈수록 새삼 여자로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고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차별을 눈에 띄게 하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은주가 할머니를 싫어하게 된 것은 지난번에 등을 주물러 드릴 때의 일 뿐만이 아닙니다.  동식이와 똑같은 일을 열심히 해도 할머니한테 늘 칭찬을 받는 것은 으레 동식이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꾸지람을 듣는 것은 은주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마음씨가 착하고 고운 은주였지만 그런 할머니를 좋아하며 따를 리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할머니에게 큰마음 먹고 공손히 인사를 해 봐도 계집애답지 않게 인사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꾸중을 듣기가 일쑤였습니다.      


어쩌다 방을 어질러 놓았을 때도 동식이는 으레 젖혀 두고 계집애가 방을 치울 줄 모른다는 둥, 걸음걸이가 여자답지 못하고 머슴애 같다는 둥, 할머니가 은주를 미워하는 꾸중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곤 했던 할머니였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설날이라고는 하지만 은주가 할머니한테 세배를 하러 갈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던 것입니다.      


“너 정말 할머니 뵈러 안 갈 거라고?”   

  

“싫어! 정말 안 간다니까 왜 자꾸만 귀찮게 물어?”     


은주는 여전히 빽 소리를 지르며 대꾸하였습니다.      


"너 그럼 앞으로는 할머니를 절대로 안 뵙겠다는 거니?“     


“누가 그런댔어?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면 어쩔 수 없이 뵙겠지만, 오늘 같은 설날에 직접 찾아가서까지 뵙기는 싫다는 거지.”     


그러자 엄마가 이번에는 한층 목소리를 낮추어 은주를 달랬습니다.     


"은주야, 그게 아니야. 이런 날은 아무리 할머니가 싫더라도 꼭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는 게 도리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번만은 엄마 말을 좀 들어주렴, 응?“     


그러자 은주는 화가 난 목소리로 톡 쏘며 대꾸하였습니다.    

 

“싫어! 싫단 말이야! 날 보고 마음에 없는 인사를 하라고? 엄마가 언젠가 나한테 말해줬잖아, 인사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때 하는 것이 참된 예의라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 날 보고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억지로 하라는 거야? 난 싫어. 그렇게 하기는 죽어도 싫단 말이야!“  

  

은주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너무나 속이 상하고 화가 났는지 울상이 된 채, 문을 요란스럽게 열어젖히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저, 저 애가……!”     


그런 은주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엄마는 그만 입이 딱 벌어진 채,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                 







             

< 더 생각해 보기 >     


1. 할머니는 남매가 똑같은 행동을 하였음에도 늘 남자인 동식이에게는 칭찬을 하고, 은주에게는 꾸중을 하곤

    합니다. 할머니의 그런 태도에 대해 왜 그런 것인지 생각한 대로 모두 말해 봅시다.     


2. 만일 여러분이 은주였다면 은주처럼 할머니 댁에 세배하러 가지 않는 것이 옳을까요, 싫어도 가야 할까요?

   또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말해 봅시다.     


3. 여러분이 은주의 어머니였다면 할머니 댁에 막무가내로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은주에게 어떻게 달

   래 주었겠습니까?     


4. 인사란 마음속으로부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인사를 해야 하는 거입니다. 그런데 은주의 경우처럼 하기 싫

   은 인사도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도리일까요? 아니면 아예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도리일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자격이 없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