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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r 19. 2021

저는 자격이 없어요

[사고력신장 창작동화]

성구는 요즈음 하루하루가 짜증이 나고 불만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성구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벌써 한 달이나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시원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벙어리가 냉가슴을 앓듯,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을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약 한 달 전, 체육 시간의 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모두 같이 편을 가른 다음 축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한 팀이 11명이 아니라 반 전체가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한 팀의 수가 스무 명이나 넘는 엉터리 축구였습니다.     


선생님이 처음에 그런 방법으로 모두 다 같이 축구를 하자는 말씀을 하자, 아이들은 그런 엉터리 같은 축구가 어디 있느냐고 제멋대로 떠들며 소란을 떨었습니다. 특히 못마땅해하며 소란을 피우기는 여학생들이 더 그랬습니다.    

 

“선생님, 세상에 그런 축구가 어디 있어요? 우리 여자들은 안 할래요!”     


"선생님, 축구 대신 우린 여자들끼리 피구 경기를 할래요!”     


“여자들이 남자들하고 같이 축구를 하다가는 우악스러운 남자아이들한테 다칠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남자아이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할 생각에 오히려 신바람이 나는 모양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말씀대로 그냥 해요. 우린 여자아이들을 섞어서 같이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네, 선생님 말씀대로 그냥 얼른 시작하세요!”    

 

아이들이 제멋대로 떠들면서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소리를 한동안 듣고 있던 선생님이 이윽고 엄한 목소리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 자! 선생님도 이제 그만하면 알아들었으까 그만 조용히들 해요. 선생님은 원래 운동이란 남자와 여자를 특별히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반이 다 같이 하는 축구를 해 보면 여학생들도 아마 재미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에요. 


그러니까 특히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하도록 해 줘요. 만일 경기 중에 일부러 여학생들을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폭력을 쓰는 학생이 발견되면 선생님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알았죠?”     

“예, 알겠습니다!”     


“얏호! 신난다!”     


남학생들은 벌써부터 신바람이 나서 큰소리로 함성을 질렀습니다. 여학생들은 고와 반대로 입을 삐죽거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공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바람이 나서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축구를 하기 전에는 그토록 하지 않겠다고 법석을 떨던 여학생들이 오히려 더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모두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동안 경기가 계속되다가 이번에는 마침내 길남이가 공을 단독으로 몰아 마침내 상대편의 골에 슛을 넣을 좋은 찬스를 얻게 되었습니다.     


"쿵! 어이쿠우!”     


그런데 갑자기 슛을 넣으려던 길남이가 그만 그 자리에 나동그라지며 뒹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길남이를 바짝 따라붙고 있던 따르던 영숙이의 발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어디 혹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니?“     


”…….“     


깜짝 놀란 선생님이 급히 달려와서 물었습니다. 그러나 길남이는 여전히 일어나지를 못하고 발목을 잡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신음만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급히 길남이를 등에 업고 양호실로 달려갔습니다.     


“아무래도 뼈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요.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게 좋겠어요.”    

 

양호 선생님이 한동안 길남이의 발목을 살펴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길남이는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뼈에 좀 금이 갔습니다. 당장 깁스를 해야 하겠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한동안 들여다보던 의사 선생님이 말하였습니다.     


그 뒤부터 다리를 제대로 못 쓰게 된 길남이는 발목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쪽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한쪽 팔로는 목발을 짚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된 길남이는 이만저만 불편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길남이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영숙이도 속으로 이만저만 미안하고 괴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성구를 따로 불렀습니다.    

  

“성구야, 좀 미안한 부탁이지만, 길남이를 좀 도와줄 수 있겠니?”     


”…….“     


성구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길남이와의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더욱 애원하듯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힘이 좀 들긴 하겠지만, 착한 일 한다는 생각으로 좀 도와주렴. 더구나 길남이는 아빠나 엄마가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시니까 돌볼 사람이 없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     


”그리고 우리 반에서는 네가 길남이네 집과 가장 가깝지 않니? 그러니까 가끔 가방도 들어주고 부축도 해주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그렇게 해줄 수 있겠지?”     


”…….“     


성구는 워낙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다오. 학교에 오갈 때, 같이 다니면서 책가방이나 좀 들어다 주면 되거든. 알아들었지?”     


”…….“     


성구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자신도 모르게 마지못해 겨우 고개만 약간 끄덕였습니다.   

  

그 날부터 성구는 길남이의 곁을 따라다니며 마음에도 없는 길남이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기껏 돌보는 일이라고는 길남이를 따라다니며 가방을 들어다 주는 일이 전부였지만 워낙에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어서 이만저만 부담이 되고 불만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성구야, 나 때문에 너무 고생이 많지?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다.”     


어느 날, 길남이도 미안했던지 조금 쑥스러워진 표정으로 불쑥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러나 성구는 길남이의 그런 말이 조금도 고맙게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착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엄마나 아빠, 그리고 반 아이들이 가끔 칭찬하는 소리를 들어도 조금도 기분이 좋거나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한 달이 지난 뒤의 어느 날 조회 시간의 일이었습니다.  전교생이 운동장 가득 모였습니다.    


“오늘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하시기 전에 선행 어린이 표창을 먼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이름을 부르면 그 학생은 빨리 앞으로 나오세요. 선행상을 받을 사람은 5학년 2반 주성구!”     


성구는 뜻밖에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두리번거리며 구령대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선행상을 주기 전에 교무부장 선생님이 성구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성구 어린이는 평소에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이번에는 같은 반에 다리를 다친 친구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오갈 때, 하루도 쉬지 않고 가방을 들어다 주기도 하고 또한 친구의 손발이 되어주는 착한 일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다 함께 힘찬 박수를 부탁합니다.”     


“짝짝짝……!”     


교무부장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성구의 얼굴은 마치 벌레를 씹은 사람처럼 우거지상이 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아니, 너 갑자기 왜 그러고 있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교무부장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듯 성구에게 다가서면서 물었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두 눈이 휘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     


그러나 성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교무부장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저 애가 갑자기 어디가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이 매우 뜻밖이라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성구 앞으로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성구야, 갑자기 왜 그러니? 너 어디가 아픈 거니? 뭐라고 대답 좀 해보렴.”     


담임 선생님의 물음에 성구의 입에서는 그만 뜻밖의 엉뚱한 대답이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전 선행상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상 받는 게 싫다니까요.”     


“아니, 뭐, 뭐라고?”     


성구의 엉뚱한 대답에 교장 선생님도, 그리고 모든 선생님이나 아이들도 그만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 더 생각해 보기 >          


1. 만일 여러분이 이 글에 나오는 성구였다면 평소에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길남이의 가방을 매일 들어다

   주었겠습니까? 아니면 선생님의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였을까요?     


2. 만일 여러분이 길남이였다면 매일 가방을 들어다 주는 성구를 어떻게 대하였겠습니까?     


3. 성구는 길남이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돌보면서도 계속 못마땅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성구의 태도에 대

    해 생각한 대로 말해 봅시다.  

   

4. 성구는 학교에서 받게 된 선행상 표창장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성구의 생각은 과연 옳은 것일까요?

    여러분의 의견을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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