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관 결석 수술 후기(2)

[나에게는 차라리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by 겨울나무

앞에서 ‘요관 수술 후기(1)’에서 설명한 고통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에 설명하고 있는 2회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게 되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피가 마를 것 같은 극악한 고생을 철저히 치르게 되었던 것이다.



새벽 밤 12시가 넘어서 응급실을 무단 탈출한 나는 부채표 활명수 10병을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들여마신 후, 집에 와서 미친 듯이 뒹굴다 보니 다행히도 배의 복수가 차서 남산만큼 커져서 쩔쩔매던 증세가 거짓말처럼 싹 가라앉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매우 무모하고도 미련한 짓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봐도 그것은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어쨌거나 여전히 결석으로 인한 통증으로 인해 잠도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며 잠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은 어김없이 밝아오고 있었다.


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병원 진료시간에 맞추어 세브란스로 달려갔다. 담당 의사에게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하자 엑스레이 촬영 등, 몇 가지 검사를 해보더니 바로 수술을 서둘러야 되겠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바로 수술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 수술하기 위해 예약된 환자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이며, 입원실도 꽉 차 있어서 집에 가서 사흘을 기다렸다가 다시 오라고 하였다.


난 너무 고통스러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빨리 수술을 해줄 수 없겠느냐고 애원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때 아무렇지도 않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는 의사의 한마디는 나를 너무나 웃게 하였다. 의사의 한마디 대답에 그런 막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나의 입이 벌어지며 웃게 만들고 말았다.


“지금 우리 병원 병실마다 배 째고 머리 째고 금방 죽겠다고 누워있는 환자들로 꽉 차 있는 데 그런 환자들을 모두 내쫓고 당신부터 수술을 해달라는 말이요?”


난 그 말에 더 이상 조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시 시간이 나는 대로 한시라도 빨리해 달라는 부탁을 한 번 더 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안정을 취하면서 사흘이란 긴 세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안정이지 여전히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통증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도무지 참기가 어려우면 다시 세브란스 응급실로 가서 주사를 맞기를 여러 번…….


그런데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운이 좋았는지 사흘이 아닌 이틀만에 마침 시간이 나니 수술을 하러 오라는 병원측의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기가 무섭게 다시 병원으로 달려걌다. 그리고 드디어 수술대 위에 눕게 되었다.


하반신만 마취를 하고 하는 수술이었기에 정신은 또렷했다. 수술을 하는 동안 마취를 했기 때문에 그동안 쩔쩔매던 결석의 통증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가림막을 쳐놓고 수술을 하고 있어서 수술 과정은 전혀 볼 수도 없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 그렇게 편안하고 평온할 수가 없었다. 모처럼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한 행복이었다.


수술은 그렇게 약 3,40분만에 순조롭게 끝이 났다. 수술이 끝나자 집도의가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큰 돌멩이를 보기는 쉽지 않다고 하였다.


“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 큰 돌멩이가 박혀 있었으니 안 아플 수가 있겠어요?”


난 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아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의사가 내미는 결석을 고개를 들고 바라보게 되었다. 쾌 큰 돌이었다. 저렇게 큰 돌멩이가 요관에 내려오지를 못하고 박혀 있었으니 안 아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죽을 지경으로 고통을 받게 된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⑴ 첫 번째 고비


수술이 끝나자 난 바로 침대에 실린 채 입원실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수술이 순조롭게 끝났으니 이제 마취가 풀리면 이 정도로 고생은 모두 끝이 난 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2,3일 뒤에는 회복되어 정상적인 일상생활를 하게 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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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나 혼자만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이제부터가 정작 고생이며 일생일대의 가장 고통스러운 날로 기억되는 악몽같은 시작의 시작이었다.


잠시 뒤,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지금부터 딱 12시간 동안 그 자리에 베개도 베지 말고 그대로 꼼짝도 하지 말고 누워있어야 합니다. 만일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였다 하면 큰일납니다. 아셨죠?”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난 깜짝 놀란 표저으로 되묻게 되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되면 어떤 큰일이 벌어지게 되느냐고?

내가 조금 전에 수술을 할 때 맞은 마취 주사는 보통 주사가 아니라 마약성이 있는 주사라고 하였다. 의학상식이 없는 나로서는 그 주사약이 어떤 약인지를 지금도 모르고 있다.


그 주사를 맞은 사람이 머리를 조금 들거나 움직이게 되면 피가 뇌로 올라가면서 뇌출혈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니 꼼짝 말고 12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있으라고 하였다.

이거야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난 원래 베개를 높이 베지 않으면 불편해서 잠을 못 이루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똑바로 누워서 한동안 견딜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왜냐 하면 지난번에 이미 축농증 수술 후기와 코골이 수술 후기에서 설명했지만, 그 수술들 모두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잠깐이라도 바로 누워있게 되면 코가 자꾸 막히고 목이 말라서 그때마다 물을 마시거나 막힌 코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자그마치 12시간이나 그대로 누워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이만저만 고통이 아니었다.


문득 차라리 마취도 하지 않고 단시간에 칼 같은 것으로 살점을 잘라내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니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니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난 의사의 지시대로 꼼짝없이 그 자리에 누워있을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물론 입안이나 목이 마른다 해도 물 한 모금도 마시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의사의 엄명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했다.

어쨌거나 굳은 결심을 하고 12시간을 참아내기 시작했다. 마취는 점점 풀려오고 그건 상태에서 누워있자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혹시 누군가가 옆에 와도 고개를 들고 바라볼 수도 없으니 죽을 지경이었다.

잠이 올 리도 없고 그야말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12시간을 견디라니 죽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꽁꽁 묶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그렇지 않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놓아둔 상태에서 움직이지 말라니 그게 더 고역이며 고문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침내 8시간이 흘렀다. 힘든 것을 참다 보니 나의 온몸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팔과 다리, 그리고 손등에도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의사가 들어왔기에 나는 애원하듯 매달려 보았다. 이제 8시간 참았으니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더 이상 못하겠으니 이제 일어나도 되는 거 아니냐고.

“절대로 안 됩니다. 8시간을 잘 참았으니 이제부터 4시간을 더 견디면 됩니다.”


그러나 의사는 마치 저승사자와 같은 간단한 말만 한마디 남기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도로 병실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난 긴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말았다. 죽을 지경이며 절망이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그 고통스러운 4시간을 더 견뎌내야 한단 말인가. 지옥이 따로 없는 것만 같았다. ( * ) -2회 끝-


- 3회로 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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